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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83. 강서(姜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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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350회 작성일 03-10-27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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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강서(姜瑞, 1510~1540)의 자는 숙규(叔圭)이고 호는 매곡(梅谷)이며, 본관은 진양(晋陽)이다. 그는 1510년(명종 5년)에 태어났으며 모암(慕庵) 우(瑀)의 아우이다.
급문 : 강서는 일찍이 남명선생의 문하에 드나들었는데, 그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남명선생이 만사(挽詞)를 짓고 다음과 같은 묘표(墓表)를 지었다.

강진사(姜進士) 숙규(叔圭)가 세상을 떠났다. 그 죽음은 슬프지만 영광스러우며, 그 가계(家系)는 성대하지만 끊어지게 되었다. 아! 가문에는 물려줄 선(善)이 있어야 하고, 종통(宗統)은 세계(世系)를 이을 사람이 있어야 한다. 강군 같은 사람은 가문에서 선을 본받고 세계를 이은 사람이니, 그 또한 물려받은 바가 있을 것이다.
강군의 세계는 성대하여 국사(國史)에 전해지고 사람들 입에 회자되고 있다. 우선 그 세계별 종통(宗統)을 차례대로 살펴보기로 한다. 봉산군(鳳山君) 군보(君寶)가 시조이고, 삼세(三世)를 내려와 소윤공(少尹公) 안수(安壽)는 추은(推恩)으로 호조 참판(戶曹參判)이 되었다. 군수공(郡守公) 모(某)가 이 분의 아들이고, 감찰공(監察公) 효정(孝貞)이 이 분의 손자이다. 이 분이 모(某)를 낳았으니 바로 진사의 아버지이다. 이 분은 벼슬하기를 즐겨하지 않아 세상에 나아가지 않았는데, 문인(門人)들도 그 영향을 받았다. 어머니의 나이 90세가 되도록 낯빛을 살펴가며 봉양하기를 오롯하고 지극하게 하였으며, 그러한 효성이 쌓여 집안이 교화된 것이 여러 해가 되었다. 부인 이씨(李氏)는 의천군(義泉君) 승은(承恩)의 딸이다. 몸가짐이 가지런하고 유순하며, 밝게 살펴 마치 가문(家門)을 온전히 이끌어가는 큰 선비 같았으니, 부인의 행실이 문밖에까지 나오지 못한 것이 아깝다. 아들을 두었는데 우(瑀)는 진사이고, 다음이 무(珷)이고, 다음은 진(瑨)인데 진사이다.
공은 세째 아들로 휘는 서(瑞)이다. 겨우 이를 갈 무렵에 어머니가 세상을 버렸고, 맏형도 죽었다. 둘째 형인 무(珷)는 온유하고 문아(文雅)한 행실이 있어 공을 어려서부터 기르고 가르쳤다. 공은 성장하여 가정(嘉靖) 정유년(중종32, 1537)에 진사시에 합격하였다. 경자년(중종35, 1540)에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죽만 먹고 거적을 깔고 자다가 병이 들어 여막(廬幕)에서 죽었다. 마을 사람들이 그 사실을 위에 알리자 담당 부서에서는 정려(旌閭)의 은전(恩典)을 내리려 하였다. 대개 그의 효제(孝悌)하고 돈목(敦睦)한 행실은 어려서부터 익혀서 그리 된 것이다. 불행히도 일찍 죽었는데, 만약 하늘이 그에게 몇해를 더 살게 해 주었다면 인(仁)에 뜻을 두고 도(道)를 향해 나가는 정성이 가이없었을 것이다.
대사헌(大司憲) 성세순(成世純)의 아들 참봉(參奉) 수근(守瑾)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뒤를 이을 자식이 없었다. 성씨(成氏)가 괴롭게 울부짖으며 밥을 먹지 않고, 기절하였다가 다시 살아났다. 여러번 자결하려 하였는데, 집안 사람들이 구호하여 화는 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두고 두 가지 아름다운 이야기로 일컫는다.
아! 형 진사 우(瑀)가 평소에 유술(儒術)과 효도를 잘 실천하여 사람들에게 소문이 났었는데,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 탕약을 마련하느라 허둥대다가 어머니를 뒤이어 죽었다. 아우 진사군(進士君)은 행실을 스스로 가다듬어 당시의 훌륭한 선비가 되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슬퍼하고 사모하다가 몸을 상하여 역시 아버지를 뒤이어 죽었다. 형은 어머니 때문에 죽고, 아우는 아버지 때문에 죽었으니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있단 말인가?
만약 이 사람이 죽지 않았다면 그 집안을 크게 일으켰을 것이다. 아름다운 난옥(蘭玉)이 잘 자라다가 완성을 보지 못하고 말았으니, 명교(名敎)를 가지고 말한다면 그 죽음이 영광되지만, 강씨 문중으로 보자면 그의 죽음은 슬픈 것이다. 또 선조의 입장에서 보면 그 세계(世系)가 성대해진 것이지만, 이 사람으로 말하면 그 세계가 위축된 것이다. 그 선대부가 전해 준 두 가지 아름다운 행실과 형제들이 가정에서 함양해 온 것은, 본디 전해져 내려오는 바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자기는 선조를 잘 계승하였는데 자기의 세계는 끊어졌으니, 장차 그가 잘 계승하였던 것도 아울러 없어져버릴 것인가? 가문이 성대해지는 것도 천명(天命)이요, 위축되는 것도 천명이다. 그 슬픈 죽음 역시 천명이니, 군에 대해 어찌할 수도 없는 것이다. 다만 사람들이 군에게 칭찬을 돌리는 것만은 천명이 아니고 자신에게서 말미암은 것이다. 군이 처신을 잘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영광되게 여기는 것이다. 내가 여기에 쓴 것은 단지 사람들의 말을 기록한 것일 따름이다(文貞公南冥曺先生植撰, 「墓表」).

그는 28세(1537년)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부친상을 당해서는 슬픔이 지극하여 35세(1544년)에는 정려를 받았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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