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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67. 김신옥(金信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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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692회 작성일 03-10-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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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김신옥(金信玉, 1534∼1598)의 자는 공서(公瑞)이고 호는 쌍봉(雙峰)이며, 본관은 선산(善山)으로 안음(安陰)에 거주하였다. 그는 1534년(중종 29년)에 아버지 부호군(副護軍) 세렴(世琰)과 어머니 진사(進士) 김식(金軾)의 여(女)인 정선(旌善) 김씨(金氏) 사이에서 안의현(安義縣) 마리면(馬利面) 영승리(迎勝里)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문인053.jpg

급문 : 일찍이 김신옥은 남명선생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동문 수학한 벗으로 오건, 조종도, 김효원, 김우옹, 정구(鄭逑), 박제인 등이 있다. 가까이로는 갈천(葛川)선생, 정유명(鄭惟明) 등으로부터 영향을 받았고, 정온(鄭蘊), 성팽년(成彭年) 등과는 종유함이 깊었다.
과거 및 벼슬 : 김신옥은 31세(1564년)에 사마시(司馬試; 식년 생원 3등)에 합격하여 생원(生員)이 되었고(『司馬榜目』), 35세(1568년)에는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등과(登科)하였다.
그는 문과에 급제한 후 홍주교수(洪州敎授), 송화현감(松禾縣監), 칠원현감(漆原縣監)에 임명되어 굶주리고 고생하는 백성을 위한 행정을 베풀어 칭송이 자자하였다.
의병활동 : 1592년(선조 25년)에 왜란이 일어나자 김신옥은 관장(官長: 경상감사, 경상병사, 김해부사 등)들이 무기와 군량을 버리고 각자 도망치기에 급급하므로 백성들은 왜적에 의해 무참하게 살륙되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분을 참을 수가 없어 안음, 거창 일원에서 성팽년, 정유명 등과 함께 창의하여, 거창 의병대장 김면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물리치는 데 공을 세웠다. 조정에서는 통정대부 절충장군(通政大夫 折衝將軍)에 임명하였지만 사양하였다.
그는 학문과 덕이 높아서 세인의 추앙을 받았고, 1598년(선조 31년)에 65세의 일기를 마치고 세상을 떠났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安義邑誌』.
『石谷文集』.
『松菴實紀』.
郭敬烈, 「壬辰嶺南忠義錄」, 『壬辰嶺南義兵史』, 壬亂護國嶺南忠義壇保存會, 200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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