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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55. 하락(河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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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507회 작성일 03-10-27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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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하락(河洛, 1530∼1592)의 자는 도원(道源)이고 호는 환성재(喚醒齋)이며, 본관은 진양(晋陽)으로 수곡(水谷)에 거주하였다. 그는 1530년(중종 25년)에 아버지 인서(麟瑞)의 아들로 진주 수곡리(水谷里)에서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문인045.jpg

그가 남긴 문집은 『환성재집(喚醒齋集)』이 전한다.
급문 : 하락은 27세(1556년)에 아우 하항(河沆)과 같이 남명선생을 찾아가 『심경』, 『근사록』 등을 읽었고, 『주역』, 『예경』 등을 깊이 탐구하기도 하였다. 그는 남명선생에게 수학하면서 ‘경의(敬義)의 가르침은 밝기가 해와 달 같다(『南冥集』, 「編年」 56歲條; 『德川師友淵源錄』, 卷3, 「門人」 河洛)’고 하면서 이를 심복하였다.
과거 및 벼슬 : 하락은 39세(1568년)에 진사시(증광 진사 1등)에 장원을 하고, 생원시(증광 생원 2등)에도 합격하였다.
그는 조정에 있으면서 이이(李珥), 성혼(成渾) 등과도 친하게 지냈었는데, 54세(1583년) 때에 이이, 성혼 등이 삼사(三司: 사간원, 사헌부, 홍문관)의 탄핵을 받게 되자 임금께 상소를 올려 이들의 죄 없음을 주장하였다. 당시 온 조정이 이이, 성혼을 벌주자고 탄핵하였는데, 그 부당함을 상소로 올린 그의 대범함에 모두 놀랐다고 한다. 이 때 임금에게 올린 상소가 「대신소(大伸疏)」로서 그의 문집에 전한다. 이로부터 그의 이름이 온 조정에 알려지게 되었다.
의병활동 : 1592년(선조 25년)에 왜란이 일어나자, 당시 상주목사 김해가 상주성을 지킬 계책을 논의하려고 하락을 성으로 불렀다. 당시 하락은 ‘내가 마땅히 국난을 당하여 떨쳐 일어서야 되나 나이가 많고 힘이 없어 어찌할 수도 없었는데, 마침 목사가 성을 지키는 일을 의논하고자 하니 이는 내가 목숨을 바쳐 나라의 은혜에 보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하고는 장정 20여 명과 상주성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북문에 막 다다랐을 때 왜적의 기습을 당하여 장정 20여 명이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 이 때 하락은 아들 경휘(鏡輝)를 불러

‘이 곳은 내가 죽을 곳이다. 너는 속히 빠져나가 가족들을 보호하거라’ 라고 하면서 아들에게 피할 것을 당부하였다. 이 때 아들은 ‘아버지가 죽음에 처해 있는데 저 홀로 살아서 어디를 가겠습니까?’ 하고는 통곡하였다. 이어 왜적이 칼로 환성재의 몸을 치려 하자 아들이 아버지의 몸을 감싸 막았다. 이렇게 하여 왜적의 칼에 부자가 함께 숨을 거두었다.

고 한다. 왜적이 이를 보고 감탄하면서, 성문 곁에 묻어 주고 목책에다 ‘효자의 무덤’이라고 썼다고 한다.
1609년(광해군 즉위년) 11월 27일조의 실록의 기록에 의하면, 광해군이 하락 등의 집안에 후히 돌보아 주는 은전을 시행할 것을 다음과 같이 전교하였다.

옛날 내가 대군으로 있었을 때 사부였던 하락(河洛)·박광전(朴光前)·민응기(閔應祺)·정운룡(鄭雲龍)·권우(權宇) 등이 모두 지도의 수고가 있었는데, 불행히 세상을 떠났다. 세시(歲時)에는 그 고을 수령으로 하여금 그 집안을 찾아 위문하고 제물(祭物)을 주어 후히 돌보아 주는 은전을 시행하라고 경상도와 전라도 감사에게 글을 보내도록 하라(『光海君日記』 즉위년).

실록의 기록에는 잠저시의 사부 하락, 박광전 등에게 증직하고 삼가 현감 윤영현은 승진토록 전교하면서,

내가 잠저 시의 사부 중에 고인이 된 하락(河洛)·박광전(朴光前)·성호(成浩)·민응기(閔應麒)·정운룡(鄭雲龍)·권우(權宇) 등에게 각기 원래에 받은 직책 위에 당상의 실직을 제수하고, 이국에게는 찬성을 추증하되, 각기 교서를 만들고 관리를 보내어 제사지내게 하라. 삼가 현감(三嘉縣監) 윤영현(尹英賢)은 승진시켜 서용하도록 하라(『光海君日記』 2년).

고 하였다. 또한 『현종실록』에는 집의 신명규(申命圭), 장령 박지(朴贄), 지평 이우정(李宇鼎) 등이 조식의 문집에 대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영남 진주의 선정신(先正臣) 조식의 서원에 조식의 문집이 있는데, 문집 속의 부록은 모두 적신 정인홍(鄭仁弘)이 선정신 이언적(李彦迪)·이황(李滉)을 비방하거나 혼조(昏朝) 때 흉적들이 인홍을 숭상하는 내용입니다. 수십 년 전에 한 선비가 이를 분하게 여겨 그 문집의 판본을 가져다가 쪼개버렸는데, 이에 이의를 품은 하락(河洛)·하달원(河達源)·윤승경(尹承慶) 등이 도리어 판본이 훼손된 데 대해 깊이 원망을 품고 서원 안에 들어가 공인을 불러 다시 새기고 또 그 판본을 훼손한 선비를 벌하였습니다. 먼 지방의 인심이 진실로 지극히 한심합니다. 도신으로 하여금 조식의 문집 가운데 인홍 등 여러 역적들의 패악한 내용을 속히 잘라내고 아울러 흉적을 받든 하락 등의 죄를 다스리게 하소서 …… (『顯宗實錄』 11년).
향사 : 그는 1592년(선조 25년)에 세상을 떠난 후 좌승지에 추증되었다.

□ 참고자료

『宣祖實錄』 16년.
『光海君日記』 즉위년~2년, 9년, 13년.
『仁祖實錄』 7년.
『顯宗實錄』 11년.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河 洛, 『喚醒齋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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