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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 45. 손천우(孫天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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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827회 작성일 03-10-2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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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손천우(孫天祐, 1533∼1594)의 자는 군필(君弼)이고 호는 무송(撫松)이며, 본관은 밀양(密陽)으로 수곡(水谷)에 거주하였다. 그는 1533년(중종 28년)에 아버지 광후(光後)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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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문 : 손천우는 남명선생이 삼가(三嘉)에서 덕산(德山)으로 옮기자 그는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이에 남명선생은 그의 원대한 뜻을 헤아리고 『소학』, 『근사록』 등의 각종 성리서를 가르쳤는데, 이를 열심히 익힌 그는 부귀 현달을 구하기 보다는 평생 동안 자기 수양을 위한 학문에 정진하였다. 그는 자주 ‘깊은 학문의 경지에 나아가기 위해서는 가까운 데부터 착실히 배워야 한다’고 하면서, 과정을 뛰어 넘거나 거만하게 굴지 않고 차근차근 공부에 매진하였다. 이를 본 남명선생이 기특하게 여겨 훗날 자신의 뒷일을 부탁하기도 하였다(『德川師友淵源錄』, 卷3, 「門人」 孫天祐).
손천우의 하루 생활은 아침에 닭이 울면 일이나 세수하고 옷을 정제하고 가묘(家廟)를 참배한 후, 바로 앉아 종일토록 책을 읽는데 남이 보나 안보나 상관없이 조금도 태만하지 않았다. 당시 선비들은 이를 보고 감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형제간의 우애 또한 돈독하여 하나 뿐인 동생 천뢰(天賚)와 음식과 침식을 함께 하였다.
39세(1571년)에는 퇴계선생의 부음(訃音)을 듣자 남명선생은 ‘이 사람이 죽었으니 나도 이 세상에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라고 하고는 선비의 장례에 필요한 요점을 뽑은 「사상례절요(士喪禮節要)」라는 책을 그와 하응도, 유종지 등에게 주면서 자기가 죽으면 그 책에 따라 장례를 치룰 것을 명하였다. 죽음이 임박했음을 안 남명선생은 제자들에게 장례 절차를 당부하였던 것이다.
서원창건활동 : 손천우는 남명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심상을 3년 하고, 장례절차는 남명선생이 생전에 남긴 「사상례절요」에 따라 진행하였다. 그는 하항(河沆), 최영경, 이광우, 이천경, 이로, 이조, 유종지, 하응도 등과 함께 덕천서원을 창건하는 일에 참여하였고(『竹閣集』; 『桐谷實紀』), 44세(1576년) 8월에는 덕천에 남명선생의 서원이 세워졌다.
행실 : 손천우는 어릴 때부터 부모을 섬기는 데 효성이 지극하여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부모의 상중(喪中)에는 산소 곁에서 하루 세 번 음식을 올렸으며, 아무리 더워도 상복을 벗지 않았다. 임진왜란을 당해서는 부모의 신위(神位)를 상자에 모시고 피난을 다니면서 양식을 빌어 죽을 끓여 음식을 올렸으며, 함경도 땅까지 피난을 가면서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이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자 함경도 사람들이 이를 보고 감복하여 그가 세상을 떠난 후 화조사(花鳥祠)라는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기도 하였다.
향사 : 손천우가 세상을 떠나자 대각서원(大覺書院)이 창건되어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가 모셔졌다.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李光友, 『竹閣集』 2권 1책.
李 晁, 『桐谷實紀』 1책.
『民族文化大百科辭典』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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