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인 134. 조차마(曺次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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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전(略傳)
조차마(曺次磨, 1557∼1639)의 자는 이회(二會)이고 호는 모정(慕亭)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그는 1557년(명종 12년)에 남명선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문인090.jpg](http://nammyung.org/man/in/%EB%AC%B8%EC%9D%B8090.jpg)
그의 벼슬은 칠원현감을 지냈고, 만년에 남명선생의 묘소 가까운 곳에 집을 짓고 모정(慕亭)이라고 편액하였다. 남명선생의 유문(遺文)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손수 문인록의 간략한 초고를 쓰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는 1568년(선조 1년) 봄에 박인(朴絪)이 덕산으로 오자 남명선생의 「연보」와 및 「사우록」을 부탁하였다(『无悶堂集』, 「年譜」 46歲條).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朴 絪, 『无悶堂集』 7권 4책.
조차마(曺次磨, 1557∼1639)의 자는 이회(二會)이고 호는 모정(慕亭)이며, 본관은 창녕(昌寧)이다. 그는 1557년(명종 12년)에 남명선생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그의 세계는 다음과 같다.
![문인090.jpg](http://nammyung.org/man/in/%EB%AC%B8%EC%9D%B8090.jpg)
그의 벼슬은 칠원현감을 지냈고, 만년에 남명선생의 묘소 가까운 곳에 집을 짓고 모정(慕亭)이라고 편액하였다. 남명선생의 유문(遺文)이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손수 문인록의 간략한 초고를 쓰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
그는 1568년(선조 1년) 봄에 박인(朴絪)이 덕산으로 오자 남명선생의 「연보」와 및 「사우록」을 부탁하였다(『无悶堂集』, 「年譜」 46歲條).
□ 참고자료
『德川師友淵源錄』 6권 2책.
朴 絪, 『无悶堂集』 7권 4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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