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호/2001년12월15일]

[서평]
         남명선생 문인자료집
        (김경수·사재명 편저, 남명학연구원 출판부, 2001)

최  영  성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관리학과 교수

발행인:김충렬/편집인:김경수/발행처: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주소:경남 진주시 봉곡동 14-21 /전화:(055) 741-9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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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이후로 남명학에 대한 학계의 관심이 높아지고 연구가 꾸준히 이어짐으로써, 이제는 남명학이 퇴계학·율곡학과 함께 한국유학의 고봉(高峯) 가운데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남명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연구소·연구원의 설립에 이어 작년 11월에는 일반 학회인 '남명학회'까지 창립됨으로써,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로 역사의 뒷전에 밀려나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해왔던 남명학은 이제 바야흐로 제 위상을 확립할 호기를 맞고 있다. 게다가 올해는 남명 탄신 5백주년을 맞아 크고 작은 기념행사가 경향 각지에서 계속 베풀어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명의 탄신을 기리는 의미 있는 책도 출판되어 남명학에 관심 있는 이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참으로 일대 성사(盛事)라 하겠다.

  화제의 책은 바로 김경수·사재명 공편, 남명선생 문인자료집이다. 남명학파가 3백 수십년 동안의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그 명맥이 단절되지 않고 연면히 이어져 올 수 있었던 학문적 연원을 이 한 책에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 책은 1997년 6월에 기획된 뒤, 약 4년여의 적공(積功) 끝에 빛을 본 소중한 업적이다. 편자들은 기존의 남명선생 사우록 7종에 대하여 이모저모 면밀하게 검토하고, 그 장단점을 예의(銳意) 분석하여 이 책에 반영하려고 애썼다. 전체적인 구성은 남명사우록 가운데 맨 후대에 편찬된 덕천사우연원록(德川師友淵源錄)을 토대로 하였다. 추가로 확인된 문인들은 별록(別錄)을 베풀어 따로 실었으며, 이밖에 남명 및 문인들의 주요 연보라든지 서원(書院)과 사우(祠宇)를 부록으로 덧붙였다. 146명에 달하는 각각의 인물들에 대해서는 개인의 신상기록인 약전(略傳) 및 세계(世系)를 먼저 싣고 이어서 급문(及門) 및 교육활동, 학문, 과거, 관직, 의병활동, 교유관계, 저술활동, 스승 추존활동, 서원창건 활동, 후대의 평가, 기타사항, 향사(享祀) 여부 등 다양한 내용을 순서에 따라 자세하게 정리하였으며, 말미에는 해당 인물과 관련된 각종 참고자료 및 최근의 연구논저를 제시하고 있다. 책 내용을 일별할 때, 편자들이 자료조사와 정리작업에 쏟은 노력이 어느 정도였을지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고, 또 남명학과 남명학파에 대한 절절한 애정, 그리고 향모심(嚮慕心)을 가슴 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편자에 의하면, 이 책은 "남명의 문인들에 대한 일반적인 기록의 성격을 가질 뿐 아니라, 오늘날 남명학파의 연원가(淵源家)를 찾고자 하는 의도와, 앞으로 남명학 연구에 있어 일차적인 자료집의 성격을 갖출 수 있도록 하자는 목적에서 집필되었다"고 한다. 종래 여러 문인·후학들에 의해 편찬되었던 '사우 연원록(師友淵源錄)'과는 그 성격을 약간 달리하여 연구 자료집으로서의 구실까지도 하는 데 중점을 두었음을 짐작케 한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그 가치를 평가할 만하다. 종래의 '사우록'에서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또 수백년 동안 누락되어 왔던 남명의 문인 및 종유(從遊) 인물을 새로 발굴하여 12명이나 추가한  것은 이 책에서 가장 값진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또 사우·문인들을 입전(立傳)함에 있어 당색(黨色)과 문벌(門閥)에 따른 편향적 시각으로부터 초탈하여 공정하게 서술하고자 노력하였고, 특정 개인에 대한 편파성 시비로 이어질 수 있는 분량 안배 문제에 특별히 주의를 한 것으로 보인다. "분량 안배쯤이야…"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을 것이지만, 기실 이 책의 성공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잣대 가운데 하나가 분량 안배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또 각 개인에 대한 소개에 이어 덧붙인 참고문헌이야말로 이 책이 그저 문인록이나 사우록에 그치지 않고, 자료집으로서의 구실까지도 충실히 해낼 수 있으리라는 전망을 하게 한다.

  이 책은 현대에 들어 초유로 시도된 현대판 '남명문인록'으로서 앞으로 남명학 연구에 있어 길잡이의 하나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고 할 것이다.

  본서의 가치와 의의에 대해서는 지면 관계상 대강만 말해두고, 미진한 대목은 돋보기를 가지고 좀더 세밀하게 들여다보기로 한다. 이는 편자들이 애써 편찬한 이 책의 가치를 내려 깎으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보다 나은 책이 되기 위해서는, 더 나아가 남명학의 발전을 위해서는 칭찬보다 고언(苦言)이 더 필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평자의 용훼(容喙)가 오직 책비(責備)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먼저 책의 제목에 관해서이다. 제목을 '남명선생 문인 자료집'이라고 할 때 이의가 없을 수 없다. 총 146명 가운데 순수하게 남명의 문인이라고 할 만한 이들이 대다수인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만, 단순히 남명의 학덕을 흠모하고 종유(從遊)하였던 인물들도 꽤 실려 있다. 문인이라기 보다 남명과 교유 관계에 있었다고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되는 이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명확한 구분이나 전제 없이 146명 모두를 남명의 문인인 양 오해의 소지를 남겨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 선인들은 '문인'이라는 말을 매우 엄격하고 신중하게 사용하여 왔다. 한 예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학파에서 우암의 문인이라고 일컫는 농암(農巖) 김창협(金昌協)의 경우, 자신을 문인이라고 일컫는 것에 대해 거부하고 '후학'이라고 애써 강조하였던 사실을 우리는 간과할 수 없다. 이 책의 대본이 되었던 여러 사우록의 명칭이 거의 '○○사우록' 또는 '○○사우연원록'이라 한 것을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현대적 감각을 살리면서도 명실(名實)이 서로 어긋나지 않는, 그런 책이름에 대해 더 고민하였으면 한다.

  둘째, 종래 아전인수격(我田引水格)의 사우록에서 완전히 탈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는 남명과 학문적으로 그다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아직도 실려 있다. 한 예로 이산해(李山海)와 윤근수(尹根壽)의 경우, 소개된 내용을 다 읽어보아도 남명과의 인간적·학문적 관련성이 한 줄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서경덕(徐敬德)의 문인인 사암(思菴) 박순(朴淳)의 경우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남명사우록에서는 그를 급문제자(及門弟子)로 기록하고 있지만, 사암집과 연보를 보면 그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는 보이지 않는다. 단지 남명이 별세했을 때 만사(挽詞)를 지어 그의 죽음을 애도했던 것이 전부이다. 물론 세 사람 모두 덕천사우연원록 등에 그 이름이 올라 있는 만큼, 이들 인물을 자료집에 넣은 것이 편자들의 독자적인 판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사우록에서의 오랜 전승을 하루아침에 깎아 없애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학문적으로 관련성이 없는 인물들을 문인록에 등재시키는 것은 학문적 권위를 내세우고 세(勢)를 과시하려는 것 이외의 것이 아니다. 23세 때 도산(陶山)에 찾아가 퇴계와 며칠동안 도(道)를 논하고 돌아온 것이 전부인 율곡(栗谷) 이이(李珥)가 도산문인록에 버젓이 문인으로 등재되어 있음을 보라! 이러한 아전인수격의 문인록이 오늘에 얼마나 의미가 있겠는가. 앞으로 이 점에 대해 더욱 숙고하고 자료를 정밀하게 고찰하여, 문인이라고 볼 수 없는 이들은 주저 없이 삭제함으로써, 문인록이 조금이라도 불신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역대 실록(實錄) 등 많은 관련 자료들을 섭렵하고, 이 가운데 가장 신빙할 만한 중요 대목을 뽑아 실은 것은, 인물 소개에 있어 자칫 초래하기 쉬운 공정성 시비를 없애는 데 적지 않은 기능을 한다고 보겠다. 다만, 인용된 기록들이 중요 자료로서의 구실을 제대로 하려면, 원문에 대한 정확하면서도 알기 쉬운 번역이 선행되어야 하고, 또 이를 보다 확실하게 증명하는 의미에서 상세한 주석은 말할 것도 없고 정확한 출처에다 원문까지 실어주는 성실성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본서에서는 이 점에 상당히 미진한 것 같다. 사소한 예 하나만 들어보자. 정탁(鄭琢)의 졸일기사(卒日記事)를 실록에서 뽑아 인용한 것 가운데 "뒤에 호성공(扈聖功)으로 숭품(崇品)에 오르고"(P.81) 운운한 대목이라든지, 이창(李昌)의 경력을 소개하면서, "65세 봄에 예빈부정아천봉상첨정(禮賓副正俄遷奉常僉正)을 배(拜)하였고 66세 겨울에는 통정위선공감정력군자감정(通政爲繕工監正歷軍資監正)이 되었다"(P.219)고 한 것은 일반인이 도저히 알기 어렵다고 본다. 이는 마땅히 "뒤에 호성공신으로 종1품 숭록대부(崇祿大夫)에 오르고"라 하고, 또 "65세 봄에 예빈시(禮賓寺) 부정(副正)으로 있다가 얼마 안되어 봉상시(奉常寺) 첨정(僉正)으로 옮겼으며, 66세 겨울에는 통정대부(通政大夫)로서 선공감 정(正)이 되고 군자감 정을 거쳤다"라고 풀어서 소개해야 할 것이다. 전반적으로 인용된 번역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매끄럽지 못하며, 실록에서 인용한 경우는 그 정도가 심하다. 전공자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이 적지 않은 것은 '일반인 누구나 읽기 쉽게 서술한다'는 편찬 취지에 반하는 것이다.

  넷째, 이 책은 성격상 남명학 연구에 있어 참고자료로서 결정적인 구실을 할 것인 만큼, 소개된 내용에 정확성을 기하여야 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인명이나 자호(字號)·본관·관직명까지도 하나 하나 세심한 배려를 하여야 할 것이다. 문장이 부드럽지 못하고 전후 맥락이 잘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없지 않으며 오자와 탈자도 상당하다. 이러한 것을 사소한 결점이라고만 보기는 어렵다. 또 내용에 있어서도 의심될 만한 대목이 꽤 있다. 예를 들어, 최력(崔 , 1522∼?)의 벼슬을 설명하면서, 인조 초에 유일(遺逸)로 천거되었다고 한 대목(P.72)을 보자. 인조 1년은 1623년이다. 이 때 최력의 나이 102세가 된다. 상식선에서 보더라도 납득하기 어렵다. 또 "김면(金沔)은 처음 집안에서 부리는 종 7백명을 이끌고 기병(起兵)하였다"(P.177)고 한 대목도 마찬가지이다. 일개 한사(寒士)의 집안에서 사병(私兵)도 아닌 종을 7백 명이나 부렸다고 한다면, 누구나 의아해 할 것이다. 정확한 내용 서술을 위해서는 철저한 고증이 더욱 필요하다고 본다.

  전체적으로 볼 때, 4년 남짓한 짧지 않은 작업기간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조금 더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완벽을 기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명선생 탄신 5백주년에 맞추어 발간하려다 보니, 시간에 쫓겨 얼마간의 미진함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은 된다. 앞으로 더욱 고증과 자료수집에 힘써 재판 때에는 완벽한 '문인록' '사우록'이 다시 나오기를 기대해 마지않는다. 재삼 편자들의 노고를 높이 평가하며 건승(健勝)을 빌어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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