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호/2001년12월15일]

[서평]
        남명설화 뜻풀이
    - 기록과 일화의 조각들을 모아 구성한 남명의 참 모습 -

신  병  주
서울대 규장각
학예연구사

발행인:김충렬/편집인:김경수/발행처: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주소:경남 진주시 봉곡동 14-21 /전화:(055) 741-9765

 

1. 왜 남명을 주목하는가? 구입을 원하시면 그림을 클릭하세요.

  출생 500주년을 맞은 영남의 거유(巨儒) 남명 조식(曺植:1501-1572)의 참 모습을 다양한 기록과 일화를 통해 한 눈에 찾아볼 수 있는 저술이 출간되었다.
  남명은 16세기의 시작과 함께 출생하여 퇴계 이황과 함께 영남학파의 양대산맥을 이룬 학자였다. 일생을 비판자의 위치에 있는 처사(處士)로 머물면서 시대의 부조리와 모순을 과감히 지적하고 그 시정을 요구한 전형적인 실천적 유학자였다. 그러나 그의 학문을 계승한 후예들의 주류가 북인(北人)의 입장을 고수하다가, 1623년 인조반정으로 정치적으로 완전 몰락하면서 그의 명성 또한 어느덧 역사의 시간속에 잊혀졌다.

  그러나 최근들어 그의 학문과 현실 정치를 날카롭게 지적했던 모습에 대해서 역사, 문학, 철학 분야의 연구들이 진척되면서 남명이라는 인물은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하였다. 정치적 이유로 묻혀진 그의 이름과 학문이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면서 조선 역사에도 이러 선비 학자가 있었구나 하는 놀라움과 함께 참다운 선비상에 대한 또 다른 모델이 제시되고 있다.

  2001년은 남명이 출생한 지 500년이 되는 뜻 깊은 해. 도대체 500년 전의 인물이 남긴 행적이 어떠했길래 수많은 기록과 일화들에서 그의 모습이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2. 일화와 기록의 조각에서 찾아진 남명의 모습  

  남명설화 뜻풀이는 문학적 접근에서 출발하여 줄곧 남명에 대해 체계적인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국문학자 정우락 교수가 쓴 책이다. 남명이라는 인물에 관련된 각종의 기록을 통해 그의 인물평, 학문평, 현실관 등을 흥미롭게 밝히고 있다. 저자의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남명이라는 걸출한 인물의 주변에서 벌어진 다양한 이야기 보따리를 쉽게 풀어가고 있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최근에도 정치인이나 연예인 등 유명인사들에 대해서는 적지않는 소문이나 스캔들이 꼬리를 물고 있는데, 이런 일화들을 보노라면 500년전의 인물 남명 또한 유명세를 톡톡하게 치루고 있는듯한 느낌이 든다.

  이책은 크게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신이한 탄생, 그리고 죽음까지, 2장은 자유로우면서도 절제된 정신, 3장은 남명과 퇴계 사이, 4장은 정인홍과 남명학파의 운명, 5장은 못 다한 이야기로 소제목을 달고 있다. 1장에서는 남명의 가계와 출생, 그리고 죽음에 얽힌 일화들이 나타난다. 남명의 출생에 얽힌 신이한 이야기라든가 부친 조언형이 연산군대에 권력에 아부한 강혼과 절교한 사실을 들어 남명의 기개가 가풍(家風)에 기인했다는 것, 남명의 가난에 대한 이야기, 요절한 자식 이야기 등이 실려있다. 2장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남명의 여색에 대한 생각'이라는 소재이다. 여기에서 남명은 일찍이 문인들에게 천하제일의 관문은 '화류관(花柳關:여색을 의미함)'으로 이 관문은 쇠와 돌도 녹여버릴 수 있다고까지 말했다 한다. 이외에 남명을 사모하여 구렁이가 된 처녀의 일화 등에서는 엄격하고 완고하게만 보이는 선비 남명 또한 여색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음을 느끼게 한다.

  3장은 남명의 가장 큰 학문적 라이벌이었던 퇴계와 관련된 일화들로 구성되어 있다. 둘은 기질과 학풍, 현실관 등에서 분명한 입장 차이를 드러내 종종 비교의 대상이 되었다. 실학자 이익(李瀷)은 '상도(上道)는 인(仁)을 숭상하고 하도(下道)는 의(義)를 주로 하며 퇴계의 학문이 바다처럼 넓다면 남명의 기질은 태산처럼 높다'고 표현하여 양인을 함축적으로 대비시켰다. 퇴계가 온건하고 합리적인 기질의 소유자로 성리학을 이론적으로 심화 발전시켜 간 모범생 유학자라면 남명은 서릿발같은 강한 개성의 소유자로 실천을 중시한 유학자였다. 칼을 찬 모습하며, 과격하고 직선적인 언어로 조정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강한 캐릭터는 그를 특징짓는다. 이러한 남명에게 퇴계의 이론 중심적인 성리학이나 온건한 현실관은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다. 각종의 일화들에도 퇴계와 남명이 대비되는 모습을 선명히 보여준다. 그런데 숫돌장수 남명과 솥장수 퇴계의 구비전승처럼 대부분이 남명을 중심에 둔 일화이기에 남명이 퇴계보다 우위에 서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인조반정이후 학문적, 정치적 주류에서 밀려난 남명과 이들 학파에 대한 안타까움을 일화를 통해서나마 반전시키고 싶어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겨진 것은 아닐까?

  4장은 정인홍과 남명학파의 운명에 관한 기록들로서 퇴계와 남명에게 남아있던 앙금이 후대의 문인들에게 이어졌다는 내용들로 채워져 있다. 남명의 학통을 이은 집안과 퇴계의 학통을 이은 집안이 '가마고개'에서 자존심 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두 집안 딸 모두가 자결한 구전설화와, 정인홍의 죽음과 남명학파의 몰락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정인홍의 몰락이 남명에게까지 미쳤다는 이야기들은 역사적 기록에도 자주 언급되는 부분으로서 역사적 평가가 설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는 점이 주목된다.

  5장은 '못다한 이야기'라는 제명하에 남명에게서부터 유래된 각종 지명 이야기를 비롯하여, 역대의 인물에 대한 남명의 논평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남명의 인물평에는 당대를 살았던 인물에 대한 논평이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그가 살았던 시대를 보다 선명하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 외에 이 책의 말미에는 부록으로 이이(李珥), 이제신(李濟臣), 권별(權鼈)이 쓴 세 편의 남명약전(南冥略傳)과 설화에 나타난 남명 형상의 양상을 수록하여 남명과 남명설화에 나타난 내용들을 보다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3. 충실한 남명 안내서

  이 책은 치밀한 고증과 현장답사를 통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남명에 관한 각종 기록과 일화들을 거의 망라하여 남명의 인품, 학문, 교유관계 등을 아주 생동감있게 접하게 한 저술이다. 또한 남명과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 대부분이 함께 조연으로 등장하는 것도 무척이나 큰 즐거움이다. 퇴계 이황, 화담 서경덕을 비롯하여, 이지함, 이언적, 곽재우, 송익필, 성운 등 16세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학자들이 무척이나 개성적인 모습으로 나타나 시대적 분위기를 접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이책은 잘못된 사실에 대해 적절한 지적도 가하고 있다. 예를 들면 퇴계가 정인홍을 문하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정인홍의 인품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었다는 식의 지적은 정비석의 퇴계소전(退溪小傳)에 실린 내용에서 광범하게 유포된 것으로 전혀 역사적인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전체적으로 이 책은 다양한 기록들에 나타난 남명의 편린(片鱗)들을 모아 이를 해설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역사적 인물 남명에 대한 안내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여겨진다.    

 4. 일화 속에서 더욱 유명해진 남명

  우리 역사에서는 수많은 인물들이 명명해 갔지만 남명 처럼 강한 개성을 지니고 엄격하게 자신의 학문을 실천하면서 적극적으로 삶을 살다간 인물도 흔치 않다. 무엇보다 50년간 지속된 사화(士禍)의 시기를 경험하면서 숨막히는 정치현실에 대해 철저한 비판자의 눈으로 자신의 삶의 원칙을 지켜나가면서 현실에 대응하였다. 그리고 성리학자에게는 금기시된 책인 장자(莊子)를 인용하여 자신의 호를 남명이라고 한 것이나, 방울과 칼을 찬 무인적(武人的)인 이미지, 문정왕후를 '과부'라 표현할 만큼의 강단과 직선적인 기질 등이 어우러지면서 남명은 조선중기에 새로운 지식인의 모습을 또렷이 심어 놓았다. 나아가 강한 기질과 개성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그의 학문을 계승한 후예들은 조선시대 최대 의 의병장으로 활약하면서 남명의 진가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이러한 남명의 기질과 학풍은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에도 세인들에게는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남명의 행적은 점차 인구에 회자(膾炙) 되었고 각종의 일화와 기록을 통해 그는 거듭 태어났다.

  작은 돌들이 모여 큰 성이 완성되듯이 남명 주변의 다양한 이야깃거리들이 하나씩 모이면서 남명이라는 인물은 서서히 그 실체를 드러내었다. 이책에는 남명이라는 인물을 중심에 두고 벌어졌던 각종의 기록들이 종합적으로 정리됨과 함께 그 기록들이 전하는 역사적 배경과 교유관계 등이 폭넓게 설명되면서 인간 남명의 참 모습, 그리고 그가 살았던 시대가 보다 생동감있고 입체적으로 우리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처럼 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다양하게 펼쳐진 기록의 조각 조각들을 차곡차곡 모아 그의 참모습을 구성해 보는 작업은 학문 연구의 또 다른 가능성과 함께 즐거움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나 남명과 같이 독특한 개성과 학문적 능력을 기반으로 자신의 자취를 선명하게 심어놓고, 후대에도 강한 여운을 남겨주는 올곧은 선비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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