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호/2001년 8월 1일]

[특별기고]
           새로운 도약 -남명선생의 뜻을 우러러

배  정  희
울산경의고등학교 교사

발행인:김충렬/편집인:김경수/발행처: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주소:경남 진주시 봉곡동 14-21 /전화:(055) 741-9765

 

  누구에게나 삶에는 전기(轉機)가 있다. 그것은 때때로 의도와 상관없이 찾아오기도 하고 혹은 의도적으로 만들어지기도 하며, 사소하게 보이는 것이 크게, 크게 생각되는 것이 대수롭지 않게 작용하여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많은 경우의 수를 열거하더라도 우리 학교에 있어 '교명 변경'은 다분히 의도적이었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마련된 일이었다. 또한 이곳에 몸담고 있으면서 학교와 교육의 장래를 걱정했던 모든 사람들의 고민과 의지가 담긴  결정이었다.

  우리 학교는 현재 법인의 강종식 이사장이 지역 청소년들에게 향학의 기회를 마련해 주기 위해 1948년에 설립한 상북고등공민학교로 출발하였다. 당시 3학급 150명의 학생을 수용하여 중학 과정의 교육을 실시하였으나 6·25전쟁이 일어나자 학생 90여명, 교사 3명이 출전하게 되어 임시 휴교 조치가 이루어졌다. 1951년 다시 학생을 모집하고 개교하였으나 졸업 후 학력 인증 등에 불이익이 많아 강종식 이사장은 이를 정식학교로 승격시키기 위해 1952년 10월 고등공민학교의 전 재산을 법인 설립에 출연하고, 지역 면의회 의원 유지들에게 협력을 호소하여 상북 면유림 150정보를 기증 받아 1953년 3월 3일자로 재단법인 상북학원이 설립되었다. 상북면민들의 후학 양성을 위한 의지를 모아 콩 한 자루, 보리 쌀 한 되를 내어 설립한 면민학교였다.

  현재의 울산경의고등학교는(구 상북고등학교)는 상북학원 내 운영학교로 1953년 상북중학교가 개교한 이후 중학과정을 마친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1966년 3월 10일 개교하였다. 당시 울산에는 고등학교로는 울산여자상업고등학교와 울산고등학교뿐이어서 중학과정을 마친 후 타 지역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상북지역민들에게 상북학원은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해결해 주는 교육의 장이었으며 그들에게 자식들의 장래는 상북학원의 장래와 연결되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 후  공업지역으로 울산이 성장함에 따라 울산은 급증한 인구와 교육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학교설립이 절실히 요구되었다. 그런 중에 1976년 현대학원이 설립되고  1980년대 후반 인문계 고등학교들이 대거 설립됨에 따라 울산시 외곽에 위치한 상북고등학교는 일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상북 지역민 가운데서도 생활 수준이 향상되자  울산시내 학교를 선호하게 되었으며 자연히 학교는 도시 외곽의 주목받지 못하는 학교로 명맥을 유지하는 정도였다. 2000년 울산의 고교평준화가 실시되기 이전까지 상북고등학교는 시내 학교에 합격하지 못한 학생들이 대거 몰렸고, 지역내에서도 시내 학교에 입학하지 못한 학생들이 남게 되는 학교라는 인식이 팽배했었다. 열패감으로 가득 찬 학생들과 대학진학을 위한 입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은 그야말로 힘겨운 전투였다.

  사람들의 편견은 지독했고, 우리들의 노력은 늘 새로운 방향에서 모색되었다. 그 노력의 일환으로 계획된 것이 교명변경이었다. 현재와 미래를 위해 계획된 획기적인 단안이었지만 지난 날 상북고등학교에서의 추억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많은 이해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들 학교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교명을 변경하는데 동의하였고 많이 고민하였다. '울산서고등학교' '고헌고등학교' 등등 지역성을 고려한 이름들이 우선적으로 거론되었지만 지역성을 탈피하자는 원 취지를 고려하여 결국 채택되지는 못했다. 게다가 '울산'이라는 명칭이 지역성을 띠므로 거기에다 다시 지역성을 띠는 명칭을 정한다는 것은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의도를 많이 제한하는 감이 없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이 '경의(敬義)'였다.

  敬義, 蔚山敬義高等學校. 평소 남명 선생의 뜻을 흠모해오던 강종식 이사장의 결정이었다.  당시 학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남명의 사상과 교육이념을 학생들에게 전달하였다. 몇 줄 간추린 것이 남명선생의 뜻을 어찌 다 드러낼 수 있겠는가마는 학생들에게 이해되는 바가 컸으리라고 생각한다.

      1.조식(남명)선생(1501-1572): 자는 건중, 시호 문정, 본관 창녕
      2. 敬義:남명 조식선생의 교육이념
         ① 敬:마음을 오로지하여(全一) 학문에 정진함.
         ② 義:올바른 생활, 정의, 의리
         ③ 敬義 二字: 如日月不可廢(敬義 두 글자는 해와 달과 같아서 하나도 폐하지 못할 것이다.)
         ④ 敬은 일신의 주체요 義는 만행의 준칙이다.
      3. 교육적 인간상:實踐 躬行人
         -학자는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실천하지 못하는 것을 오히려 근심해야 한다.
     4. 교육방법
         ① 개인차 고려:재능에 따라 교육
         ② 自解自得: 주입식 교육 반대, 스스로 깨닫는  방법 중시
         ③ 博文約禮:포괄적 지식 공부 중시(학문을 널리 알고 예절을 지키는 교육 중시)

  학생들이 그 뜻을 얼마나 이해하였는지 알 수 없지만 경의와 관련된 모든 이들에게 경의는 적어도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새로운 의미였다. 경의고등학교를 졸업한 젊은이들에게 남명선생은 가르치지 않았으나 더 큰 가르침으로 남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학생들에게 그들의 재능에 따른 교육을 해야 하는 것은 선인의 시대에도 그러했겠지만 지금도 요구되는 교육적 사명이다. 그들에게 한갓 머리 속의 지식이 아니라 실천하는 자율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깊은 철학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혼탁한 시대에 우리 교육자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수행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쉽게 시류와 타협하며 의리를 외면하는 기성세대들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은 무감각하게 세태를 이해하고 그 속에 젖어들어 그들 또한 그러한 어른들의 모습을 닮아가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왜 남명선생께서 칼과 방울을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는지를 이야기해 주어야겠다.  고독한 처사로 지내면서 한시도 나라와 백성을 잊어본 적이 없는 강인한 선비를 그리며 이번 여름은 지리산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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