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호/2001년 8월 1일]

南冥 先生 誕辰 500주년에 부쳐
    時代精神과 憂患意識의 表象

권인호(權 仁 浩)
대진대 철학과 교수,
본원 상임연구위원

발행인:김충렬/편집인:김경수/발행처: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주소:경남 진주시 봉곡동 14-21 /전화:(055) 741-9765

 

  올해 2001년은 조선시대 유학자 남명 조식(南冥 曺植, 1501-1572)선생이 태어나신 지 5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유학이란 시대에 필요한 학문으로 곧 시대정신(時代精神)이며, 유학자란 왜곡된 그 시대를 걱정하여 지나온 과거의 역사와 사상을 온축하여 현재를 분석비판하여 미래를 대비조망하는 우환의식(憂患衣食)을 지니는 사람이라고 할 때, 남명 선생은 그 생애와 학문을 고찰하면 바로 그 표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돌이켜 보건대 현 정부의 교육정책은 세계화라는 미국 중심의 가치관과 신자유주의 그리고 시장논리를 학교에 끌고 들어와 갈팡질팡 우왕좌왕의 표본이 되어 미래가 불투명한 지경에 이르렀다. 역대 정권에서 현 정권에 까지 대입제도를 수시로 변경하면서 네세우는 논리는 지나친 입시경쟁으로 학생의 공부부담과 학부모들의 사교육비 이른바 과외비 부담을 줄인다는 명분이다. 그러나 결과는 항상 그 반대로 나타나 실력과는 무관한 이른바 고액의 쪽집게 과외를 한 학생이 이른바 일유대학에 입학하고 대학 전체의 수학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되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고려 때 사학(私學)의 발달과 조선조 서원(書院)의 융성에 다른 학문발전과 인재교육과는 반대로 최근 세계최저 비율의 사립대학 재정보조와 자율이 없는 이 시대 교육은 1600여년의 대학역사를 가진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이번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열리는 G8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730여 NGO들의 구호 '세계는 파는 물건이 아니다'라는 말은 한국의 사회와 교육현장에서 더욱 절실하다. 대학과 대학원입시와 입사나 승진에서 영어(미국어)가 실력의 기준이고 사회에서는 인간의 능력까지 재려한다. 모든 분야에서 획일화하고 다양화하지 못하는 가치인식과 교육현장에서 미래는 없다. 학부제로 순수 인문과학분야인 철학과 역사학 그리고 순수 자연과학 분야에는 학생이 오지도 않는다. 대학강좌가 영어회화와 컴퓨터 학원이 아닌가 의심스럽다. 서울대와 고려대를 시발로 외국인 교수 대거채용과 많은 월급을 예고하였다. 학문후속 세대로서 대학의 동료(연구, 교육)인 4만 여 젊은 대학강사들이 그들의 전공분야 학문연구보다 생계비에 허득이며 학문외적 노동에 시달이고 있는 한 우리의 미래는 없다.

  남명 선생이 살았던 조선조 중기 시대에도 학자선비들이 유행하던 성리학에만 매몰되고 과거에 몰두하여 조정과 지방의 관리를 하던 그들이 과연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국난을 극복했던가 백성을 돌보았던가? 그들이 친일매국하여 망국의 원흉이 아니었던가? 남명 선생은 당시의 성리학 뿐만아니라 학문분야가 다양하였고 이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실제에 크게 쓰일 수 있는 많은 영재를 길러낸 결과, 1592년 임진왜란을 당하여 남명문하에서 일당백(一當百)의 병법에 밝은 의병장들이 나와 민중을 이끌고 창의토적(倡義討賊)하여 전쟁을 수행함으로써 마침내 국가를 누란의 위기에서 구해내는 공헌을 하게 되었고 조선 후기 실학의 학문적 토대와 학파의 형성에 크게 기여 하였다. 그리하여 일찍이《조선교육사》를 쓴 이만규는 '조선조 유교 교육에 있어서 가장 성공한 교육자가 바로 남명 선생'이라고 특기하는 것은 새롭게 재조명 되어야 한다.   

  남명 선생은 연산군에 이어 중종과 명종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거듭되는 사화(士禍)로 조정이 선비들의 호응과 지지를 잃고 독선과 혼미에 빠지고, 사림(士林)은 의기가 꺾여 구심점을 잃고 각기 산야로 흩어졌고 백성은 도탄에 빠져 희망을 잃고 도적이 될 수밖에 없는 지경이나 왕공귀족은 더욱 호화사치에 여념이 없었다. 그리하여 남명 선생은 국가민족의 존망을 국왕(國王)이나 조정에 나간 벼슬아치들에게만 맏길 수 없고, 그 궁극적이고 실제적인 책무와 역량은 오직 백성으로부터 나오고 그들을 정신적으로 지능적으로 선도할 수 있는 선비들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는 것을 확신을 가지고 항상 민생과 사림(士林)의 편에 서서, 부패무능한 조정을 비판하고 시급하게 바로잡아 할 구체적인 개혁대안을 제시하여 재야세력을 형성하고 민본사상(民本思想)을 고취시켰다.

  이로 인해 당시의 왕권과 왕권옹호자들의 미움과 시기를 사 국가로부터 당연히 받을 수 있는 일체의 특전과 예우에서 소외되어 문묘배향(文廟配享)을 거부당하였고, 그후 선조(宣祖) 말년과 광해군(光海君) 시대에 강직한 제자들의 적극적인 개혁 노력이 당쟁과 인조반정(仁祖反正, 궁정 쿠데타)로 좌절되자 남명선생 및 남명학파에까지 연루되어 근 400년동안 국가적 냉대는 물론 당파와 학파들의 폄억을 받아 역사의 그늘에 묻혀 버리는 비운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경상우도의 선비와 민생들은 무신의거(戊申義擧)에서부터 진주농민항쟁 그리고 3.1 운동을 거쳐 우리 시대 반독재 민주화 운동에 이르기 까지 항상 의로움에 앞장 섰던 것이 어찌 우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  

  유학을 공부하는 선비나 학자는 끊임없이 배운 학문으로 세상을 맑게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즉 민중과 사회를 위해 청의(淸議)로서 올바른 여론형성하고 나라의 정치와 사회 풍속을 감시하고 잘못 되었을 경우 탄핵하고 교화해야 하는 것이다.

  학문을 공부하는 자는 항상 민본사상과 출처사상(出處思想)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데 남명 선생과 그 제자(弟子) 사숙인(私淑人)들은 그 표상이었다. 민본사상은 《맹자(孟子)》에 보면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社稷, 국가)는 그 다음이고 임금은 가볍다"라는 말도 있고, 《순자(荀子)》에서도 "임금은 배고 서민은 물이다. 물이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엎기도 한다"고 하였다. 남명(南冥) 선생도 《민암부(民巖賦)》에서 이를 재확인하고 있다. 하물며 왕조시대(王朝時代)인 당시에도 남명 선생의 고제(高弟)인 내암(來庵) 정인홍(鄭仁弘)은 '손상익하(損上益下)'를 말하였는데, 최근 이 나라의 '부익부(富益富) 빈익빈(貧益貧)'하는 시대흐름은 20대 80의 사회로 이른바 '동물의 왕국'으로 약육강식하는 시장의 논리로 치닫는데 더욱 절실한 주장이고, '의관지도(衣冠之盜)가 있은 연후에 간과지구(干戈之寇)가 있다'는 말은, 즉 나라 안의 관리와 잘사는 자들의 부패횡령과 세금포탈이 있은 다음에 나라의 국방이 무너지고 망국에 이른다는 것은 조선왕조 말기에 역사로 증명되었고 이는 동서고금의 보편적 진리가 아닌가 한다.

  민본사상의 구체적 모습은 '여민동락(與民同樂)'이 그 시발점이라고 맹자는 말하고 있다. 백성(국민, 인민, 민중)과 더불어 함께 즐기지 못하는 정치가는 과연 무엇인가? 최근 작년 추석에 북한의 김정일이가 대남비서인 김용순을 통해 우리 국정원에 북한산 송이버섯 10kg 짜리 300상자(1kg에 약 30만원 = 약 9억원 어치)를 보내와 고위 정치인과 관리인들이 나눠 먹은 모양인데, 과문의 탓인지 몰라도 방송과 신문보도 그 어디에서 그 누구 한사람도 추석 때 그 송이버섯을 외롭고 서러운 양노원과 고아원에 가져가서 같이 구워먹었다는 것을 보고듣지 못했다. 일찍이《삼국사기(三國史記)》에 보면 고구려 태조왕 때(100년) 이미 '환과고독(鰥寡孤獨)'을 찾아 위문했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지금 서민들은 IMF 사태 때보다 더욱 어렵다고 아우성인데 대통령을 위시한 정치인들이 보다 국민 더불어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어도 희망을 가지고 노력할 터인데…….   

  현재 나라에서 학문사상과 인간정신은 죽었는데 입시와 교육개혁 이야기를 한다고 사회와 교육이 바로 서는가? 일찍이 내암(來庵)이 말한 '세상을 속이고 명예를 도적질(欺世盜名)'하며 이익을 좋아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무리(嗜利無恥)'들이 성공하고 출세한 것으로 되는 우리 사회가 아닌가? 이 때 여민동락을 이야기하고 이웃과 함께 살아야 미래가 있다는 인간교육을 말하는 것이 과연 시대에 뒤떨어진 우활한 헛소리인가? 남명 선생의 학문정신과 함께 지금 시급하게 생각할 때가 아닌가? 감히 생각해 본다.

  철학이란 '시대정신(時代精神)의 정화(精華)'라고 한다면 그 시대의 인물에 대한 학문정신과 출처에 대해 올바른 포폄(褒貶)이 없이 어떻게 가능한지 의문이다. 그렇다면 더더욱 이 시대 이겨레의 어려움과 고통을 생각할 때, 남명 선생의 훌륭한 학문사상과 출처에 합당한 생애는 탄신 5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재조명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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