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3호/2001년 8월 1일]

[남명선생탄신 500주년기념 선비문화축제]

인    사    말

발행인:김충렬/편집인:김경수/발행처: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주소:경남 진주시 봉곡동 14-21 /전화:(055) 741-9765

 

  오늘 우리 모두가 추앙하는 南冥 曺植 先生 誕辰 500周年을 맞이하여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江湖諸賢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선생은 1501년 합천 삼가에서 탄생하셔서 1572년 이곳 산청 덕산에서 세상을 떠나실 때까지 평생 山林에 은거하며 性理學을 연구하여 敬과 義로 集約되는 實踐儒學으로 독보적인 학문체계을 이룩하여 士林의 宗師로 추앙 받았던 분입니다.

  선생은 혼탁한 時流에 영합하지 않는 엄격한 出處觀을 견지하여 평생을 處士로 지내면서도 爲民政治를 力說하여 수차 上疏를 올려 國政을 바로잡고 士林의 言路를 열고자 헌신하였습니다. 또한 선생은 제자의 자질에 따른 교육으로 수많은 英才를 길러 내어 우리 敎育史에 큰 획을 그었습니다. 그 결과로 壬辰倭亂이 일어나자 선생의 遺志를 받든 50여 명의 제자들이 義兵將으로 분연히 떨쳐 일어나 國難克服의 초석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나라 儒學史에서 혁혁한 업적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그 훌륭한 업적은 仁祖反正으로 인하여 정계에서 소외되고 이후 黨爭에 의한 참변으로 소외되어 거의 매몰되다시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근래 南冥學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많은 학문적 성과를 일구어 냄으로써 국내외에서 크게 주목을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와 같이 선생의 학문적 업적이 세상에 널리 드러나게 된 것은 先覺的 여러 학자들과 후손들을 비롯한 여기 모이신 여러분들의 정성어린 노력의 결과라고 믿습니다.

  그 결과 오늘 우리들이 탄신 500주년을 맞아 유덕을 기리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이 자리가 단순히 선생의 지난 業績을 기리는 자리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00년을 되돌아보는 자리인 동시에 앞으로 500년 후의 미래를 내다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지나온 500년의 역사를 반성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삶의 자세를 가다듬게 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우리 後學들에게 민족의 精氣를 일깨우고 새 천년의 시대 정신에 접목하려는 계기를 제공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南冥精神'을 이 시대에 맞게 보다 알기 쉽게 재정립하는 일은 매우 시급합니다. 이 시대 후학들에게 단순히 지식습득만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으로 세상을 일깨운 선생의 삶이 정신적 지주가 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선생이 겨레와 後代에 끼친 가장 큰 功績은 무엇보다도 '선비정신'의 확립에 있습니다. 나라가 어지러울 때 목숨도 초개같이 버릴 수 있는 사람이 선비입니다. 굳이 '丹城疏'를 말하지 않더라도 선생은 선비정신의 전형을 우리들에게 가르친 분입니다.

  이러한 선생의 선비 정신의 發露는 곧 평생, 學問 요체로 강조해 온 敬과 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러한 敬과 義는 오늘날 가장 요긴한 시대 정신이기도 할 것입니다.

  南冥선생을 500년 전의 偉人으로 머물게 하지 않고 500년 후에도 길이길이 변함없는 偉人으로 남아 있게 하기 위해선 선생이 평생 강조하신 '敬義思想'을 보다 알기 쉽게 재정립하는 일이 오늘 이 자리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끝으로 남명선생 탄신 500주년 행사를 위해 힘쓴 대회장 金爀珪 道知事, 金容鈞 地域 國會議員 그리고 權炅錫 推進委員會長, 權淳纘 執行委員長과 權淳永 山淸郡守를 비롯한 집행위원 여러분, 그리고 산청군 관계자 여러분과 後孫 여러분들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2001년  8월  18일

         德川書院 院長      李      賢     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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