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호/2001년 6월 20일]

서평

<정인홍과 광해군>
개혁에 앞장선 실천적 지식인

조 성 일
문화일보기자

발행인:김충렬/편집인:김경수/발행처: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주소:경남 진주시 봉곡동 14-21 /전화:(055) 741-9765

 

  이름조차 입에 올리는 것이 금지되던 한 인물이 다시 태어난다.  정인홍이 그 주인공.  수 차례 벼슬을 내렸어도 스승처럼 사양했던 실천적 지식인이자 남명의 수제자였던 정인홍, 보수 세력의 고착된 성리학을 비판하며 실학을 이념으로 대개혁을 추구했던 정인홍은 누구인가.

  올해로 나란히 탄생 500주년을 맞는 동갑내기 대학자인 퇴계 이황과 남명 조식은 조선 중기인 16세기 조선 유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큰 봉우리이다.

  퇴계 이황이 경북 안동을 중심으로 제자를 키워내고 있을 때 남명 조식은 합천을 중심으로 인재를 기르며 독특한 학풍을 세운 것으로 유명하다.

  이론화에 치중하는 이황과는 달리 실천을 중시한 조식은 성리학에 얽매이지 않고 천문 지리, 의학, 노장 사상 등을 두루 섭렵한다.  훗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제자들이 서부 경남 각지에서 의병을 일으켰는데, 그 가운데서도 정인홍, 곽재우, 이로, 오운, 조종도 등은 그 이름이 꽤 유명한 이들이다.

남명의 수제자

  특히 정인홍은 조식의 수제자로서 이이첨 등과 함께 광해군을 도와 사회 개혁에 나서다가 인조반정 이후에 역적으로 처형된 인물이다.

  이 책「정인홍과 광해군」(조여항 지음·동녁 펴냄)은 바로 이 정인홍에 대한 평전인 셈이다.  정인홍은 당시 6품 이하의 벼슬이 세 번만 내려져도 3징사(徵士)라 하여 대단한 명예인데, 정1품인 우의정을 열 다섯 차례, 좌의정을 한 차례, 영의정을 세 차례나 사양했던 인물이다.

  하기야 조선시대를 통틀어 학자들 사이에 율 곡 이이와 더불어 '2 선생(先生)'으로 추앙 받는 퇴계 이황의 동갑내기 '1 처사(處士)'이자 그의 스승인 남명 조식 역시 중종과 명종 선조대에 걸쳐 세 임금이 열 두번의 벼슬을 내렸지만 모두 사양한 인물이잖은가.  시쳇말로 그 스승에 그 제자인 셈이다.

  그러나 광해군 10년인 1618년 인목대비 폐모론이 일자 반대의사를 분명히 밝혔던 그는 여든 일곱의 나이에 일어난 인조반정 후 오히려 폐모론을 주장했다는 날조된 죄명으로 처형된다.

  이후 400여년 동안 정인홍은 이름은 물론이거니와 업적 등에 대한 것을 절대로 입에 올릴 수 없는 패륜아만도 못한 대접을 받게 된다.

  훗날 단재 신채호가 정인홍을 주목하여 대단히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정인홍에게서 사회개혁의 정신을 찾으려 하던 단재는 건강이 악화된 후 벽초 홍명희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체적으로 구상중이던 <정인홍 약전(略傳)>이 자신의 죽음과 함께 땅에 묻히는 것을 매우 애석해 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그나마 조식과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정인홍에 대한 연구는 자료 부족은 물론 아직까지 지속되는 학파와 가문의 문제로 인해 거의 없는 상태이다.  인조반정 후 역적으로 처형될 때 그의 저술이 불태워지거나 유실됐음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정인홍 연구 단초 제공한 평전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일단 정인홍 연구의 단초를 제공하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특히 글쓴이 조여항은 남명과 정인홍과의 특이한 인연(?)까지 갖고 있는 터여서 정인홍 평전 쓰기를 하나의 사명으로 여기는 듯하다.

  글쓴이는 친구로부터 들은 전설 같은 얘기 - 조식 학통 이은 명문가 딸이 시집가던 날 고갯마루에서 퇴계 쪽 사람과 맞닥뜨렸는데 서로 길을 비켜주지 않고 사흘동안 대치했다는 사실 - 도 그렇거니와 존경하던 자신의 할아버지가 한 서원에서 조식과 정인홍을 내세웠다가 유생들로부터 내침을 당한 경험이 그렇다.

  이 책은 글쓴이가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오랜 기간에 걸친 자료조사와 철저한 답사가 밑바탕이 됐고, 조선 중기의 역사를 정인홍과 광해군 등 진보파(대북파)를 중심으로 재조명한다.

  이황, 이이, 유성룡, 정철, 이항복, 이덕형 등이 보수파로 분류돼 신랄한 비판과 공격을 받고 조식, 정인홍, 정여립, 이이첨, 이지함, 허준, 허균 등이 진보파로 분류돼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어쨌든 이 책은 권력을 둘러싼 술수와 암투, 임진왜란과 의병항쟁, 광해군의 개혁과 좌절 등이 소설처럼 펼쳐지면서 한 편의 역사 드라마를 읽는 느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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