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호/2001년 6월 20일]

한약이야기 (5) -

감기(感氣)

홍 승 헌
한약사 / 원광대강사

발행인:김충렬/편집인:김경수/발행처: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주소:경남 진주시 봉곡동 14-21 /전화:(055) 741-9765

 

  한동안 봄 감기가 기승을 부리고 지나갔다. 겨울 한철 용하게 잘 넘어갔던 사람들도 추위가 다 지나간 마당에 한바탕 호된 감기로 고생하면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감기란 것이 꼭 추워서 걸리는 것만은 아닌가 보다. 남극 대륙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은 그 추운 곳에서도 감기는 모르고 산다고 한다. 언뜻 생각해보면 남극처럼 추운 곳에서는 감기를 달고 살 것 같은데 오히려 그 반대라니 신기한 노릇이다. 감기는 가장 흔하게 앓는 병이면서도 잘 모르는 병이기도 하다. 이번 호에서는 감기에 대한 몇 가지 상식을 살펴보자.  

  감기(感氣)라는 단어의 한자표기를 가만히 보면 재미있다. 기(氣)에(또는 기를) 감(感)하다. 기(氣)란 용어는 참으로 다양하게도 쓰이고 그만큼 그 뜻이 모호하기도 하다. 필경 감기에서 말하는 기는 좋은 기는 아닐 것이다. 좋은 기에 감(感)하는데 사람들이 그렇게 고생할 리가 없지 않은가. 옛날 동양에서는 사기(邪氣) 즉 사악한 기(氣)라는 것이 있다고 믿었고 외감성 질환의 주된 원인은 이 사기라고 보았다. 우리 몸은 이러한 외부의 사기에 저항하기 위한 기(氣), 이른바 정기(正氣)가 있어 평소 외감성 질환에 걸리지 않고 건강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몸의 정기가 외부의 사기 즉 외사(外邪)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하면 그 외사가 몸 속으로 침입해 들어오고 마침내 외감성 질환에 걸리게 된다고 한다. 이렇게 된 상태가 기(氣)에 감(感)한 상태 즉 감기라고 보면 그다지 틀림이 없다.

  오늘날의 지식으로 보면 감기는 바이러스성 질환이다. 그런데 감기에 대한 오늘날의 설명을 살펴보면 옛날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가 않다. 감기 바이러스를 비롯한 온갖 미생물은 우리가 접하는 외부 공기나 음식물 등에 항상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 몸의 면역기능은 평소에는 이러한 미생물로부터 몸을 잘 보호 해준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그 면역기능이 인체에 침입한 외부 미생물의 창궐을 감당해 내지 못하면 몸은 병을 앓게 된다.

  왜 일반적으로 추우면 감기에 잘 걸린다고 믿고 있고 또 실재로 갑자기 날씨가 추워지거나 추운 환경에 장시간 노출되어 있으면 감기에 잘 걸리게 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로 설명이 가능하겠는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한두 가지만 들어보자. 그 하나는 온도와 습도와의 관계다. 온도가 내려가면 대기 중에 함유할 수 있는 수분의 양이 줄어들고 따라서 공기는 상대적으로 건조한 상태가 된다. (이런 상황에서 실내에 히터를 작동시키면 공기는 더욱 건조해진다.) 건조한 공기 속에 있는 먼지나 바이러스는 우리 몸이 호흡할 때 습한 상태에 있는 그것에 비해 코털 등을 비롯한 상기도의 여러 장애물들을 쉽게 통과할 수 있다. 더구나 건조한 공기는 인체의 기도내부도 건조하게 하여 한번 부착된 외부 유입 이물질의 배출도 곤란해진다. 이러한 조건은 평상시 이상의 외부침입자가 상기도 부위에 모여있게 하고 이것은 곧 감기라는 증상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 외에 체온의 저하에 따른 신체조건 변화도 추위와 감기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다. 그런데 왜 남극대륙에는 감기가 없는지 궁금해진다. 그것도 기온과 관계가 깊다고 한다. 미생물들도 자신들이 살아남고 번식하기에 적합한 조건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남극은 감기 바이러스가 활동을 하기에는 너무 열악한 조건이란다. 따라서 감기를 유발하는 바이러스가 없고, 감기의 원인이 없으니 감기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치다.

  한의약에서는 기후와 연관지어 감기를 설명 할 때는 크게 풍한(風寒) 감기와 풍열(風熱) 감기로 나누어서 생각하고 있다. 여름에서 가을로 또는 가을에서 겨울로 가는 길은 차가운 사기(邪氣) 즉 한사(寒邪)에 노출되기 쉽고 따라서 풍한감기에 걸리기가 쉽다고 본다.

 한편 겨울에서 봄 또는 봄에서 여름으로 갈 때는 열사(熱邪)에 노출되기 쉽고 그에 따라 이른바 풍열감기에 걸릴 가능성이 높다. 두 경우 모두 온도와 습도의 변화와 무관하지 않은 것 같지만 오늘날의 지식과 일치시켜 이해하기는 쉽지가 않다.

  이제 곧 여름의 문턱으로 들어설 시점이다. 오뉴월 감기는 개도 걸리지 않는다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여름의 에어콘이나 겨울의 히터와 같은 인공적 냉난방 기기는 계절의 질서를 교란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하루에도 여러 번 계절차 이상의 기온 변화를 경험하게 만들고, 또 역으로 계절이 바뀌어도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여름에도 한사(寒邪)에 위협받고 겨울에도 열사(熱邪)에 노출되는 헷갈리는 세월이다. 이런 요인들 때문에 현대인들은 의약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감기로 고통받는 지도 모른다. 이제 자연의 순리대로 세상을 살아가기는 불가능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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