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학연구원 연구위원 세미나 참관기

송   준   식
(진주전문대 교수)

 

  지난 8월 19일에 산청군 시천면 원리에 소재한 덕천서원에서는 제2회 남명학연구원 연구위원 세미나가 열렸는데, 이는 전날의 24회 남명제의 후속 행사라 할 수 있다. 나는 연구위원의 일원으로 기대 속에 이 행사에 참석하게 되었다.

  이날 행사는 오전 9시 30분에 김충렬 원장의 인사와 기조강연으로 시작되었다. 김 원장은 과거 서원은 향사(享祀) 뿐만 아니라 매달 강회형식으로 학술행사가 개최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오늘날 서원은 이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때 그 존재의미가 새롭게 조명될 수 있다고 하였다. 오늘 개최되는 이 세미나는 어제의 남명제와 더불어 옛 서원의 본래적 기능을 회복한다는데 그 의미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앞으로의 남명학 연구와 남명선생의 선양활동 방안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또한 오늘날의 남북문제와 통일문제를 포함한 민족의 미래에 대한 좌표설정에 있어서 전통사상의 중추로서의 유학의 역할의 중요성에 대하여 역설하였다.

 이어서 권순찬 이사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권 이사장은 남명학연구원의 역사와 활동상황에 대한 대체적인 흐름을 설명하였다. 1986년에 남명학연구원을 조직·결성하고, 1994년 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을 설립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열과 성을 다한 김충렬 원장의 노고와 연구원의 설립과 운영에 대한 제반 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한 조옥환 부이사장의 헌신적 노력에 대하여 그 고마움을 표하였다. 또한 권 이사장은 남명학연구가 21세기에 있어서 국민정신교육에 기여하는 바가 있어야함을 강조하였고, 앞으로 1년후의 남명선생 탄신 500주년 기념행사로 남명학국제학술대회와 전국규모의 연극제 및 사적 정비 등을 구상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행사를 통해 남명선생의 정신을 일반 대중에 알리고 나아가 영·호남의 다각적인 교류를 통한 남명학연구의 저변확대를 계획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오늘 세미나에 참석한 전남대의 강정환 교수는 이러한 의미에서 좋은 계기를 만든 경우라고 하면서 강 교수를 소개했다.

 이어서 김경수 남명학연구원 사무국장의 사회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김 국장은 금년부터 연구위원 세미나의 정례화가 확정되었음을 밝혔고, 세미나를 통해 연구위원의 기탄없는 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연구원 운영에 비중있게 참고할 계획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부임한 연구원 전임간사 김영미양의 소개와 더불어 오전 세미나가 시작되었다.

  오전 10시 30분 경에 채휘균 박사(영남대 강사)의 [남명의 교육사상-경과 의의 교육철학-]이라는 주제의 발표가 있었다. 채 박사는 경(敬)과 의(義)를 중심으로한 남명 교육사상의 특징을 고찰함으로써 남명의 교육사상의 원리를 밝히고, 아울러 남명의 교육사상이 현대교육에 주는 의미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연구의 내용구상은 첫째, 경과 의의 개념과 주요기능, 둘째, 남명의 경과 의의 교육사상을 인간관의 특징, 교육목적으로서의 경과 의의 의미, 경과 의의 병진이 주는 교육실천의 원리, 셋째, 남명교육사상의 계승과 영향, 넷째, 남명교육사상의 현대적 의미를 검토하고자 하였다.

  이어서 조남호 박사(서울대 강사)의 [퇴계학파의 남명학 비판-조호익, 이현일, 이만부의 관서문답사기의를 중심으로-]라는 주제의 발표가 있었다. 조 박사는 "조식과 이황은 대립적인 관계에 있었다. 학문상으로나 기질상으로도 그렇다. 이언적을 둘러싼 관계에서도 그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조식은 이언적과 사이가 좋지 않았으나, 이황은 이언적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언적이 [관서문답]을 짓자, 조식은 [해관서문답]을 지어 관서문답에 대하여 비판을 한다. 이것을 정인홍이 간행하고, '회퇴변척문'을 쓰자, 퇴계학파는 이를 다시 비판한다."고 하면서 조호익, 이현일, 이만부 등이 남명학파 전체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하였지만, 개인들에 대해서는 문집의 서문을 쓰는 등 다소간의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면서 논지를 전개했다.

  오전에 두 편의 발표가 끝나자 김 원장을 좌장으로 한 토론이 시작되었다. 채 박사의 발표에 대해서 한상규 박사(동주대 교수)의 토론이 이어졌다. 한 박사는 남명의 교육사상에 있어서 교육방법론은 퇴·율과의 차이점으로 부각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과 더불어 자해자득론에서 경과 의가 다른 교육자와 구별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나는 평소의 지론대로 동양의 교육 특히 유학자의 교육사상을 연구함에 있어서 교육(敎育), 교학(敎學), 공부(工夫), 위학(爲學) 등의 용어 사용에 보다 세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채 박사의 논문은 남명의 교육에 관한 사상이라기 보다는 남명의 공부론이나 위학론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리고 개항이후 일본인이 서양의 문물을 번역할 때 사용한 용어나 개념을 우리가 그대로 사용하는 것은 현상이나 사실에 대한 바른 인식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에 개념 규정에 있어서 보다 정치한 분석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 점에 관해서 채 박사 역시 풀어야 할 고민거리이라고 토로하였다.

  김 원장은 중국에 있어서의 '교육'이라는 말 자체의 유래에 대한 설명과 더불어 교학상장에 관한 의미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유학 전체에 있어서의 교육이 차지하는 역할과 기능 그리고 주자의 수양공부론에 대한 천착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두 번째 주제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여기에는 권인호 박사(대진대 교수)가  토론자로 지정되었는데, 그는 사상(思想)을 다룸에 있어서 시대적 배경에 대한 인식이 선행되어야함을 강조하면서, 이현일, 이만부, 조호익 등이 어떠한 이유에서 전시대의 인물 그것도 북인정권이 정치적으로 소멸된 시기에 남명에 대한 평가를 재론하는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한명기 박사(서울대 규장각)는 광해군 시대의 상황과 이현일, 이만부, 조호익 등이 남명에 대한 평가가 재론되는 상황에 관한 설명과 인조반정의 평가문제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여기서 김 원장은 철학에서 시대적 배경이 소홀히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는 이 들의 논지에 동의하면서, 역사를 다룰 때 철학을 이해해야 하고, 철학을 할 때 역사를 이해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그는 과거에는 주자의 정맥이냐 아니냐가 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였는데 남명에 대한 평가도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고 보았다. 오늘날에는 한국 유학의 정맥에서 남명에 대한 평가를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리고 최근의 유학 연구의 동향에 대해서도 설명하였다.

  한편, 박홍식 박사(경산대 교수)는

 남명사상의 육왕학적 성격에 대한 질문을 하자, 김 원장은 어느 면에 있어서는 육왕학적 성격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피력하기도 하였다. 이는 문묘배향의 거부라든가, 인조실록의 자료를 통해서 볼 때 어느 면에 있어서는 양명학적 경향을 무시하기는 어려운 점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였다.
  잠시, 쉬는 시간을 이용하여 세미나에 참석한 이들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있었는데 여기에 참석한 사람들은 아래와 같다.

권순찬(남명학연구원 이사장), 김충렬(남명학연구원 원장), 조옥환(남명학연구원 부이사장), 한명기(규장각 특별연구원), 한상규(동주대 교수), 정기철(내암 본손·향토사학자), 조회환(한국외국어대 교수), 김일근(건국대 명예교수), 강정환(전남대 교수), 권인호(대진대 교수), 한상덕(중국무한대 박사), 오이환(경상대 교수), 조남호(서울대 강사), 설석규(경북대 강사), 주월금(중국사회과학원 교수), 이상원(남명학연구원 연구위원), 박홍식(경산대 교수), 송준식(진주전문대 교수), 정우락(영산대 교수), 채휘군(영남대 강사), 사재명(경상대 강사), 이규호(경북대 학생)

  점심 식사후 오후 행사가 시작되었다. 먼저 한명기 박사(서울대 규장각)의 ['재조지은 체제론'을 통해 본 명청교체기 조선 내정과 외치의 추이]라는 논문발표가 있었다. 한 박사는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형성된 '재조지은'이라는 변수가 명청교체기 조선의 내정과 외치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필자의 생각을 정리하면서, 조선의 명의 관계를 '사대관계'라는 다소 막연한 개념 보다는 '재조지은'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통하여 접근하려고 하였다.

  이어서 주월금 박사(중국사회과학원 교수)의 [한강 정구 철학사상 연구-한강과 남명학파의 사상-]이라는 논문 발표가 있었다. 주 박사는 심경발휘는 남명의 경의정신으로 퇴계의 심학을 해석한 것이며, 그 두 가지을 융합한 것이라고 보았다. 한강에 대해서는 남명학파설, 퇴계학파설, 남명·퇴계학파설이 존재한다고 주장하였다.

  오전과 마찬가지로 두 논문의 발표가 끝나자 토론이 시작되었다. 한 박사의 발표에 대하여 조회환 박사(한국외국어대 교수)의 제목과 관련하여 숭명반청의 이데올로기에 대한 질문을 했으며, 박홍식 박사(경산대 교수)는 논문 제목으로 등장하는 '재조지은'(再造之恩)이라는 용어가 비록 당시에는 통용되던 용어라 해도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문제가 있는 용어라고 지적했고 여기에 관련한 여러 가지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는데, 설석규 박사(경북대 강사)는 '재조지은'이라는 용어가 역사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라고 부연하면서 이에 대한 보완설명을 하였다.  

  주월금 박사의 발표에 대해서는 정우락 박사(경산대 교수)는 한강 정구의 심경발휘와 남명과의 관계 및 한강 정구의 지방지 편찬에 관한 남명의 영향 등에 관한 질의를 하였다. 나는 평소 한강과 그의 심학에 대하여 관심이 있어온 터라『심경』· 심경부주 ·『심경후론』· 심경발휘』에 대한 계통과 주 박사의 견해 그리고 중국유학사에서의 『심경부주』의 위치와 근사록과의 관계 등에 대한 질의를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명확한 주 박사의 견해를 들을 수 없어서 아쉬웠다.

  질의토론이 막바지에 이르자, 김일근 박사(건국대 명예교수)는 임란중의 민중의 동향을 엿볼 수 있는 자료를 소개하였는데 학봉 김성일이 산음에서 진주로 오는 도중에 쓴 한글편지와 선조 때 남부지방에서 부역자에게 탈출을 권유하는 포고문이 그것이었다. 이 자료는 현재 진주박물관에 소장되고 있다고 친절한 안내를 빼놓지 않았다.

  오후 5시쯤 되어서야 행사를 마칠 수 있었다. 김 원장은 폐회사에서 고전의 정확한 해석의 중요성과 젊은 소장학자의 학문적 역량을 확충해 나가야 할 것 등을 이야기하였다. 권 이사장은 내년의 남명선생 탄생 500주년 행사는 모든 이의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인사에 대신하였다.

  내가 생각하기는 이번 행사는 대체적으로 보아 알찬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준비과정에 있어서 행사에 대한 홍보를 철저히 하여 남명학에 관심을 가진 보다 많은 사람의 참석을 유도했으면 좋을 것 같았다. 비록 연구위원 세미나라고 하지만 연구위원이 아닌 사람들의 참석을 유도하는 것도 남명학 연구의 저변 확대를 위한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한다. 그리고 외국인을 발표자로 선정했을 때는 발표자와 같은 영역을 공부한 사람을 통역으로 선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경의청년회에서 준비한 간단한(?) 요기를 마치고 세심정 아래 덕천강으로 내려가 탁족을 하였다. 탁족을 하기에는 덕천강의 물은 너무나 맑았다. 탁족이 점점 탁신(濯身)으로 발전 되었다. 내 몸을 흐르는 물 속에 담그니 남명선생의 시(詩) 욕천(浴川)이 나의 머리를 가슴을 아프게 때렸다

사십 년 동안 더렵혀져 온 몸     
천 섬 되는 맑은 못에 싹 씻어 버린다
만약 티끌이 오장에 생긴다면
지금 당장 배 쪼개 흐르는 물에 부쳐 보내리라               

全身四十年前累  千斛淸淵洗盡休                   
塵土당能生五內  直今腹付歸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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