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확대 되어야할 '出世'의 개념

李   洧   植
(문학평론가·배화여자대학교수)

 

  내년이면 남명선생 탄신 500주년이 된다. 평생을 처사로서 학문과 제자 가르치기에 몸 바친 그 유덕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겐 시사하는 바가 많다.

  오늘날 흔히 우리가 말하는 출세관의 개념에 대한 반성도 해보는 계기가 되며 또 살아서 당대의 광영은 무엇이며 죽어서도 영구한 광영은 무엇인지 또 더 나아가 정신적, 문화적 유산의 중요성도 새삼 반추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고도 있다.

  '출세'의 사전적 풀이는 '좋은 자리에 올라 잘 됨'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이 말은 어떤 권력있는 지위나 높은 직위 또 큰부자가 되었을 때에만 곧잘 쓰이는 것 같다. 가령 어느 누가 국회의원이나 장관, 장군이나 총장 또는 판검사가 되었다 하면 부러운 듯 '출세했군'이라 한다. 또 나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찍 승진했다 하면 역시 '출세했군'이다. 뿐만 아니라 빌딩사장이나 큰 회사의 사장, 회장이 되었다면 역시 '출세했군'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어느 누가 교수나 박사가 되었거나, 이름 있는 작가나 도예가, 서예가가 되었다거나 또는 어느 누가 국전에 당선되었다 하면 '출세'란 말의 사용에는 은연중 완강한 거부감을 보인다. 그저 '잘 되었군' 정도에서 끝난다.
  이는 단적으로 권력지향적, 직위나 지위지향적, 부지향적 가치관에서 비롯된 관습적 말버릇이요 입버릇이 되어 있다는 증거다. 허나 냉정히 한번 뒤짚어 생각해 보면 꼭 그런것만이 출세가 아니란 점이 금방 드러난다. 그것은 좁은 개념이요 적용이지 크고 넓은 개념은 결코 아니다.

  가령 조선왕조 500년 동안을 한번 생각해 보자.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 이른바 삼상(三相)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366명이다. 평균 한 자리에 122명이 거처간 셈이다. 그래서 영상의 재임기간을 평균 5년으로 보면 대충 잡아 100여명이 그 자리에 올랐다고 상정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일반 지식인의 입장에서 막상 생각나는 사람은 불과 10여명 안팎이다. 태조조에 영상급의 지위에 오른 정도전을 비롯하여 정인지, 신숙주, 최명길, 유성룡, 이항복이 쉽게 떠오르고, 그 다음 다시 곰곰히 생각해 보면 황보인, 한명회, 박원종, 윤원형 정도가 떠오른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학자나 문인들은 먹물만 좀 들어갔다고 하면 누구나 기억하고 있다. 문인쪽을 보아 그들이 올랐던 최고 관직을 보면 정1품 좌의정의 송강 정철, 정3품 동부승지의 고산 윤선도, 종4품 수군만호의 노계 박인로, 정2품 좌참찬의 교산 허균, 정2품 대제학의 서포 김만중, 종3품 부사의 연암 박지원 등을 둘 수 있다. 그리고 학자 쪽을 보면 종1품 좌찬성의 회재 이언적, 종2품 대사성의 주세붕, 정2품 대제학의 퇴계 이황, 정2품 대제학 우참찬, 판서를 지낸 율곡 이이, 정3품 대사간의 고봉 기대승, 정1품 좌상의 우암 송시열 등을 둘 수 있다.

  문인이건 학자였건 이들 모두는 관직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남긴 글(문학)이나 학문세계로 말미암아 후세에 길이 남고 있다. 영의정을 지낸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문인 쪽의 정철, 학자 쪽의 송시열만이 그나마 좌상을 지냈다. 그렇다면 100여명의 조선조 영의정을 불과 10여명 안팎 기억하고 있는데 그보다도 낮은 관직에 올랐던 사람 모두를 우리가 지금 기억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그들이 남긴 정신적, 문화적 족적이나 유산 때문이라는 점은 쉽게 드러난다.

  남명선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선생은 중종조에 1번 명종조에 5번 선조조에 1번 도합 일곱번이나 관직을 제수 받았다. 그러나 작정한 자기완성의 길이 있기에 모두 물리쳤다. 선조조에 내린 정4품 전첨이란 벼슬은 말년이라 예외로 하고 가령 명종 재위시 선생 연치 54세 때에 내린 종6품 단성현감 자리를 덥석 받았다고 가정해 보자. 아니 사후 선조조에 추증한 정3품 대사간 자리까지 올랐다고 가정해 보자. 아니 더 나아가 광해군 때에 추증한 영의정 자리까지 또 올랐다고 보자. 명상(名相)이 되지 않는 한 선생을 기억할 사람은 밥의 미일 것이다.

  그러나 벼슬을 마다하고 오로지 일생을 학문과 제자 기르기에 전념한 그 결과가 다름 아닌 오늘의 남명을 있게 한 그 근거다.  이것이 바로 정신문화의 가치요 존귀성이다.

  사실 우리는 이런 점을 너무 간과하고 현실의 실리주의에서만 생각해 누가 큰 자리를 하나 얻거나 부자가 되었다면 '출세했다'고만 해왔다. 그것은 지나고 보면 '반짝 출세'요 '반짝 광영'이니 모두가 문자 그대로 화무십일홍이다.  부나 직위, 권세란 당대의 일시적 사유재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학문이나 예술 기타 정신문화는 공유재산이요 공유유산이 되기 때문에 영속성이 있다. 당대의 일시적 출세의 길과는 달리 오히려 영구한 출세의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하겠다.

  사실 출세개념의 범주에 드는 당대의 직위란 물러나면 그만이다. 대통령도, 장관도, 국회의원도 물러나면 '전'이고 '총장'도 물러나면 '전'이다. 그러나 정신문화나 예술문화의 타이틀은 '전'이 없다. 여기서 비록 보잘 것 없었던 본인의 조그마한 감투였지만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자리를 물러나니 '전'이다. 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교수직도 물러나면 '전'이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 본인에게 늘 따라 다니는 문학평론가란 타이틀은 지금은 물론 죽어서도 '전'자가 붙지 않는 그 타이틀 그대로일 것이다.

  그렇다고 권력이나 직위 또는 부를 평가절하 하자는 논리는 결코 아니다. 그런 면도 물론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가령 정신적 작업이나 문화예술에서 상당한 업적을 쌓고 또 그럴 가능성이 있다면 당연히 '출세했다'는 외경심을 동등히 가져야겠다는 것이 본인의 속뜻이다. 지금은 힘없고 별 볼일 없는 것 같은 그들의 노력과 업적들이 오히려 후세에 정신적 유산이나 문화적 유산으로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해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그들에게 '기(氣)'를 심어주어야 할 일이다. 그래야만 그들도 살맛이 생길 것이고 또 더욱 더 자부심을 갖고 자기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알다시피 15세기 이태리 문예부흥운동이 돈 많은 메디치가(家)의 적극적 보호아래 꽃이 피지 않았던가. 만약 메디치가의 사람들이 거부로서만 만족했다면 오늘날 '르네상스'란 말은 역사에서 아예 찾아 볼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정신문화나 예술문화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당대에 '반짝 출세'한 사람들 못지 않게 귀히 여기고 존중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앞으로 제2의 남명이, 제2의 고산 윤선도가, 제2의 추사 김정희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태어나 우리의 정신문화나 예술문화를 더욱 살찌우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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