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문학 현장답시기(20)-함벽루]

 아아, 자유여! 아득함이여! 그러나

                                                                    정  우  락
(영산대 교수)

                               둑이 없는 강이 있겠는가? 자유는 오로지 속박 속에서만 산다. -  L. 긴즈버그

  

   함벽루(涵碧樓)는 행정구역상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 합천동 203번지에 위치하며 현재 문화재자료 제59호로 지정되어 있다. 합천읍 남쪽 5리 지점의 대야성 발치에 있는 이 누각은 뒤로는 응봉산(膺峰山) 암벽이 우뚝하고, 앞으로는 남정강(南汀江)이 흐른다. 가야산, 해인사, 홍류동계곡, 황계폭포, 남산제일봉, 황매산모산재, 합천호 및 그 벚꽃길과 함께 합천 8경의 하나로도 유명하다. ≪합천군읍지≫와 ≪함벽루지≫에 의하면 이 누각은 1321년(충숙왕 8)에 김 아무개가 처음 세웠는데 연대가 오래되어 이름을 알 수 없다고 했다. 1467년(세조 3)에 군수 유륜(柳綸), 1681년(숙종 7)에 군수 조지항(趙持恒), 1871년(고종 8) 군수 조진익(趙鎭翼) 등에 의해 거듭 보수되고 새로 세워졌다는 것도 기록해 두고 있다.
  현재 함벽루에 대한 기문은 여섯편이 전한다. 안진(安震), 강희맹(姜希孟), 송시열(宋時烈), 조지항(趙持恒), 이채(李采), 그리고 나에게 시를 가르쳐 주신 스승 춘산(春山) 이상학(李相學) 선생 등의 글이 그것이다. 기문이 대체적으로 그러하듯이 이들의 글에서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서술해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간혹 감흥을 일으켜 자신이 쓰고 있는 글의 의미를 극대화시키기도 한다. 안진은 함벽루에 대하여 '한 채의 누각이 처마와 기둥이 날며 춤추고 단청과 그림이 눈부시고 빛나서 봉황새가 반쯤 공중으로 날아가는 듯'하다고 하면서 누각 자체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묘사하는가 하면, 춘산 선생은 처마물이 바로 강물에 떨어지는 것을 특기하면서 날아가는 듯한 누선(樓船)이 포구에 정박한 것 같다며 강과 누각의 기묘한 조화에 대하여 묘사하였다. 이와는 또 달리 강희맹은 강담수(姜淡搜)의 말을 빌어 함벽루 주위의 경치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다.

    함벽루가 군청의 남쪽 4리쯤 되는 곳에 있는데 절벽을 등지고 맑은 내에 다달아 남쪽으로 바라보면 뭇산이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서쪽 바위 곁에 옛 절이 있어 새벽 종소리와 저녁 북소리가 은은하게 구름밖에서 들려온다. 누각 동쪽 삼십 보쯤 되는 곳에 통행하는 네 거리와 강을 건너는 나루가 있어서 나그네의 왕래하는 모습과 옷을 걷고 물 건너는 사람들을 굽어보노라면, 구불구불한 모양이 마치 개미 떼가 개미둑으로 기어가는 것 같다. 이것이 함벽루의 대개이다.

  이 글에는 함벽루의 위치 및 주위의 풍경, 함벽루에서 내려다 본 풍경 등이 정겹게 묘사되어 있어 마치 직접 보는 듯하다. 송시열은 그의 기문에서 함벽루는 조물주의 힘에 의해 자연스럽게 건립된 것임을 강조하였다. 지난 장마에 큰나무 몇 그루가 상류에서 떠내려와서 강언덕에 걸렸으니 들보와 기둥을 할만 하였고, 모래쇠가 강가에 쌓여 못을 만들만 하였다고 한 것이 그것이다. 이채 역시 이를 기이하게 여기고 그의 글에서는 함벽루 곁에 있는 연호사에 대한 언급도 잊지 않았다. '누각 서쪽 바위 모퉁이에 난야(蘭若)의 옛 터가 있으니 세상에 전하길 연호사라고 한다. 다시 남은 재목(材木)과 힘으로 아울러 창건하니 옛터가 기울고 좁아서 돌을 파고 땅을 넓혀 함벽루 곁으로 약간 옮겼다.'고 한 기록이 그것이다. 함벽루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름을 짓기도 했다. 동쪽으로는 달을 먼저 바라볼 수 있다고 해서 망월암(望月巖), 뒤쪽으로는 그 모습이 피리를 부는 형상이라 하여 취적봉(吹笛峰), 그 위쪽으로는 바람을 타고 허공을 능가한다고 해서 능허대(凌虛臺), 연호사를 지나 서쪽으로는 소동파의 <적벽부>에서 그 이름을 딴 망미대(望美臺) 등이 그것이다.
  아름다운 누각에 올라 시인들은 감흥이 없을 수 없었다. 함벽루에서 시를 남긴 사람은 참으로 많지만 현재 게판되어 있는 경우를 중심으로 거명하면 다음과 같다. 정이오(鄭以吾), 표근석(表根碩), 이황(李滉), 조식(曺植), 조준(趙俊), 권시경(權時經), 김시영(金始英), 조진익(趙鎭翼), 조두순(趙斗淳), 민치순(閔致純), 이범직(李範稷), 허사렴(許士廉), 이중하(李重夏), 상집(尙集), 김영헌(金永憲), 김대형(金大馨), 문경종(文璟種), 최익현(崔益鉉), 송병선(宋秉璿) 등이 그들이다. 이들은 어부의 피리소리와 차가운 하늘 기운을 노래(표근석)하기도 하고, 공명의 굴레에 벗어난 여유로움을 읊기도(이황) 하였다. 가만히 구양수의 취옹정(醉翁亭)에 견주는 사람(권시경)이 있는가 하면, 함벽루를 중수하고 난 다음의 풍경과 연회를 묘사한 사람(조진익)도 있었다. 시대를 오르내리며 많은 시인들이 이곳에 와서 저마다의 흥취를 다할 때 우리의 스승 남명 선생은 이 함벽루에 올라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들보에 걸려 있는 <함벽루>라는 오언절구를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잃은 것을 남곽자같이 하지는 못해도,    喪非南郭子,
    강물은 아득하여 앎이 없다네.               江水渺無知.
    뜬 구름같은 일을 배우고자 하여도,       欲學浮雲事,
    높은 풍취가 오히려 깨어버리네.           高風猶破之.

  이 작품의 이해를 위하여 ≪장자≫ <제물론(齊物論)>에서 제시된 장자의 은미(隱微)한 이상에 대하여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장자는 <제물론>에서 모순과 발전에 대하여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실의 모순은 매우 심하고 복잡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수많은 갈래 속에서 헤매게 한다. 장자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하는 현실적 모순들에 대한 정신적 고통을 깊이 체득하였다. 그가 현실을 벗어나고자 안간힘을 쓴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것은 그가 일체의 인간과 사물이 모순의 존재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장자 사상에 모순을 인정하고, 그것의 운동과 발전이라는 변증법적 요소가 있다는 말이 된다. 어쨌든 스승이 제1구에서 '상비남곽자'라며 탄식하였으니 조금 장황하기는 하나 다음의 글을 통해 스승이 장자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남곽자기가 책상에 기대고 앉아 하늘을 우러러 길게 한숨을 내쉬면서 멍청하게 앉아 있는 모습이 마치 짝을 잃어버린 듯하였다.
    안성자유(顔成子游)가 그 앞에서 모시고 섰다가 물었다.
    "어찌된 일이십니까? 얼굴은 진정 마른 나무와 같으며, 마음은 진정 죽은 재와 같습니까? 지금 책상에 기대고 있는 분은 예전에 책상에 기대 있던 그 분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자기가 말했다.
    "언(偃)아! 네 질문이 훌륭하구나. 이제 나는 나를 잃었는데 너는 알겠느냐? 너는 사람의 음악은 들었으나 땅의 음악은 듣지 못했을 것이며, 비록 땅의 음악은 들었다 하더라도 저 하늘의 음악은 듣지 못했을 것이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자유가 묻자 자기가 대답했다.
    "대개 이 땅덩이가 뿜어올리는 기운을 일컬어 바람이라고 한다. 이것이 일지 않으면 몰라도 한 번 일기만 하면 온갖 구멍들이 성을 내어 부르짖는다. 너는 그 윙윙하고 멀리서 불어오는 소리를 듣지 못했느냐? 우뚝 솟은 산림의 백 아름드리 큰 나무에는 코같기도 하고, 입같기도 하고, 귀같기도 하고, 장여같기도 하고, 고리같기도 하고, 절구통같기도 하고, 연못같기도 하고, 웅덩이같기도 한 구멍이 있다. 바람이 불면 그것들은 부딪치는 소리와 윙윙거리는 소리, 질책하는 듯한 소리, 절규하는 듯한 소리, 흐느끼는 듯한 소리, 재잘거리며 속삭이듯 내는 소리, 애절한 소리 등등의 소리가 난다. 앞소리를 부르면 뒷소리가 화답한다.  작은 바람에는 작게 화답하고 큰 바람에는 크게 화답한다. 그러다가 바람이 한 번 지나간 뒤에는 그 구멍들은 텅 비게 된다. 그때 너는 그 나무들이 살랑살랑 흔들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느냐?"
    자유가 또 물었다.
    "땅의 음악은 수많은 구멍이 그것이요, 사람의 음악은 퉁소가 그것인 줄 알겠습니다. 그러면, 하늘의 음악이란 무엇입니까?"
    자기가 말했다.
    "대개 그 불어내는 바람소리는 수만 가지로 다른데, 그것들이 모두 제멋대로 불도록 하는 것이 하늘의 음악이다. 그렇다면 모든 소리는 다 그들 스스로가 내는 것이니, 정말로 성내어 부르짖도록 하는 자가 누구란 말이냐?"

  장자는 남곽자기와 안성자유의 대화를 통해 나와 너의 완전한 화합, 완성과 훼손의 일치, 사물과 자아의 평등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생사를 초월하여 스스로가 자신의 삶의 참 주제자가가 되기를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곽상(郭象)은 여기에 대하여 '하늘과 사람이 같아지고, 너와 내가 균등한 까닭에 밖과 더불어 기뻐할 것이 없으므로 망연하게 몸을 잊은 것이 마치 짝을 잃은 것 같다'고 하면서 남곽자기의 '사상기우(似喪其 )'를 풀이하였다. 이 '잃음(喪)'의 상태는 마른 나무나 죽은 재와 같이 적막하여 정(情)이 없으며, 모든 것을 자연에 맡겨 현실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시비를 잊은 것이므로 천진(天眞) 그것일 뿐 다른 무엇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스스로 나를 제대로 잊을 때 비로소 나를 비롯한 천하의 모든 사물들은 스스로의 의미로 다시 살아난다. 나를 제대로 잊을 때 내가 지닌 어떤 시각으로 사물을 이해하는 편견에서 벗어나 사물 그 자체가 왜곡되지 않은 채 자신의 온전한 몸으로 나에게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하여 장자는 남곽자기에게 사람과 땅과 하늘의 음악을 이야기하게 했다. 여기서 말하는 하늘의 음악은 특별한 하나의 사물이 아니다. 땅이 지닌 여러 가지 구멍과 사람이 만든 악기들이 생명있는 것과 접촉하여 하나의 천(天)을 이루게 된다. 이것은 모든 사물이 자생(自生)하는 것이지 어떤 주재자가 있어 강제(强制)에 의해 사물을 성립시킨다는 일체의 사유를 부정한다. 이를 장자는 '자연'이며 '천연(天然)'으로 보았던 것이다.
  하늘이 사물을 시켜서 자신의 지시를 따르게 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은 이야기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장자는 하늘도 또한 스스로 있을 수 없는 것인데 하물며 사물을 있게 할 수 있겠는가 라며 반문한다. 하늘이라고 하는 것은 수많은 사물의 총명(總名)이어서 하늘 아닌 곳으로 나아갈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며, 이 때문에 누군가가 주재자가 되어서 사물을 사역시킬 수도 없다는 논리이다. 이같은 장자의 생각을 스승은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현실세계가 지니고 있는 시비를 모두 벗어나 나의 존재까지 망각한 '잃음(喪)'의 경지를 그리워하였던 것이다. <함벽루> 제1구에서 '남곽자'를 부른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제2구에서처럼 함벽루에 높다랗게 올라 시비를 버리고 아득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다보면서 자신 역시 그 세계에 의식이 닿아 있음을 보여준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제3구에서 대전환이 일어난다. '잃음'의 경지를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승은 여기서 '부운사(浮雲事)'를 배우고자 했음을 실토한다. 이 '부운사'에 대한 이해는 간단하지가 않다. 이를 현실의 시비를 뜬 구름과 같이 보는 세계관이라고 볼 수도 있고, ≪논어≫ <술이>에서 공자가 제시한 것처럼 부귀와 같은 현실세계의 공명을 뜬 구름으로 보는 세계관이라 볼 수도 있다. 이 양자 가운데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스승의 작품 <함벽루>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즉 전자로 보면 현실세계에서 없을 수 없는 있음과 없음, 옳고 그름을 떠난 자유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이고, 후자로 보면 현실세계에서 말하는 도리의 반대편에 있는 부귀를 부정하고 질서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전자는 현실을 부정하는 데서 출발하고 후자는 현실을 긍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여기에 따라 제4구의 '고풍'도 의미를 달리하게 된다. 전자에 근거하면 현실부정적 세계관이 깨어진다는 것이니 고풍은 유가적 의미 안에 존재하게 되고, 후자에 근거하면 부귀가 있는 현실긍정적 세계관이 깨어진다는 것이니 고풍은 도가적 의미 안에 존재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심각한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시비를 완전히 잃어버리고 현실을 초월하여 자유를 구가한 도가적 세계의 소유자로 스승을 볼 것인가, 아니면 시비를 따져 현실에 질서를 부여하는 유가적 세계의 소유자로 스승을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 둘의 문제는 스승을 이해하는 데 있어 당대부터 항상 따라다니던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하여 나는 일찍이 스승의 의식 속에 세계에 대한 두 지향이 있으며 이같은 모순은 상호운동에 의해 발전적 세계를 성취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면서 스승의 의식구도를 설명한 적이 있다. <함벽루>에서 이것은 요약되어 있는 바, 제1구와 제2구에서 보여주었던 '잃음'의 경계가 제3구의 '부운사'에 의해 전환이 마련되고, 결국 제4구에서 '고풍'을 등장시켜 깨어버리면서 차원을 달리한 현실, 혹은 초월이 내포된 현실로 되돌아 나오는 과정을 나타낸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스승은 유가적 세계를 지녔으되 통상의 유가는 아니었고, 도가적 세계에 관심을 두었으나 흔히 아는 도가가 아니었다. 스승은 장자와 같이 완전한 포기가 완전한 획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아득히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방기(放棄)는 이룩하였으나 세상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다른 곳에서 '바람에 떨리는 나무를 생각하고(卽懷風振木), 의리를 지키다 억울하게 당한 사람을 생각한다네(曾 義寃人)'라며 슬피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자연 속에서 바람이 일어나 나뭇가지가 흔들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사화로 죽은 친구들의 목숨을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자연 속에서 현실의 시비를 잊고 초월적 삶을 영위하고자 하였으나 스승은 마침내 세상을 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는 개인의 자유보다 현실의 질서가 더욱 중요하다는 유가적 논리에 입각한 것이라 하겠다.
  피(彼)가 있다는 것은 차(此)가 있다는 것이며, 차(此)가 있다는 것은 곧 피(彼)가 있다는 것이다. 이같이 피차는 서로 모순되지만 한편으로 서로 통한다. 쌍방이 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네가 있으며 피차가 서로 운동하며 전화(轉化)하는 것을 긍정한다. 스승은 피차 혹은 시비의 한계를 단순히 부정해버리지 않았다. 여기에 대한 고백이 <함벽루>이기 때문에, 이 작품은 스승의 사유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마지막 귀결점을 보여주면서 세상의 소리를 듣게 한다. 아우성이 있는 세상의 소리. 정면 3칸·측면 2칸·2층으로 된 누각, 5량 구조·팔작지붕의 목조와가, 그 함벽루 위에서 서 있으면 스승의 현실을 향한 아픔이 바람속에 묻어 있음을 안다. 스승이 떨리는 나뭇가지를 보면서 친구의 목숨을 생각한 것처럼 세상엔 극복해야 할 엄청난 모순이 있다. 나는 이 가을 단풍이 아름다움만이 아니라는 것을 이로써 안다.

  필자주: 이 번호에 실린 사진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다. 필자가 답사팀을 인솔할 때 함벽루에 들러 사람들에게 남명과 퇴계의 시를 비교해 보이기도 하고, 남명사상에서의 도가사상의 위치 등을 설명하기도 했지만 누각을 제대로 찍어 둔 사진이 없었다. 그리하여 합천고등학교 국어교사 노일준 선생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함벽루와 그 주변사진을 찍게 했다. 노선생은 이를 위하여 사진을 찍다가 남정강 푸른 물에 몸을 내맡기는 등 여러 가지 고난이 있었다. 이 자리를 빌어 노선생의 노고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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