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補藥은 재탕 삼탕도 해야 한다

金  一  根
 건국대 명예교수

  원보 18호를 받고 우선 반가운 것은 그 편집방향과 제작과정이 아주 새로워졌다는 점이다. 당사자들의 수고에 감사할 따름이다. 또한, 18호에서 全敎授님의 기고 <武陵桃源>은 종전에 다소 소홀했던 문학분야에서도 특히 국문학 시가부문의 소재를 대상으로 삼아, 南冥과 退溪의 비교되는 微視點을 파헤쳐서 그 정곡을 찔렀음에도 찬사를 보낸다. 그런데, 소재로 제시한 남명의 <頭流山歌>의 초장에,“頭流山 兩端水를 예듯고 이제보니"(중종장 생략)에 대해서 一考를 할 수밖에 없다.

  필자는 거년 4월 진주에서 치룬 남명학 연구발표대회에서, <曺南冥의 國文詩歌에 대한 深層硏究 - 頭流山歌의 作者와 定本考>란 제목으로 발표를 하였고, 그 내용은 ≪南冥學硏究論叢≫ 제7집(1999.4.10.발행)에 게재되었다.

  그 결론을 요약하면, ① <두류산가>는 남명이 1561년(신유, 61세) 봄 頭流(智異)山下 德山洞(현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사리)을 흐르는 兩堂(兩塘, 양댕이) 溪上에 山天齋를 짓고 강학복거하면서 지은 시조 작품임이 결정적 논거(兩堂水 라는 固有名詞)에 의해서 재확인 되었고, ② <두류산가>의 원본은 靑丘永言 大學本(六堂本)이 가장 가까운 것이나, 초장 제2구의 誤傳된‘兩湍水'를‘兩堂水'로 교정하여 정본으로 삼을 타당성이 명증되었으며, 他本에는‘頭流山'으로 되었으나 이것은‘百頭東流'에서 온 한자식이고 고유어인 두리(周·圓)의 표기인‘頭里山'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고,

라며, <두류산가>의 정본설정을 제의한 바 있다. 이 연구는 1987년부터 시작하여 10년이 넘어서 얻은 결실이다.

  1983년에 ≪國定高等國語1≫에 실렸던 南冥作 <西山日落歌>가 金應鼎 작으로 판명됨으써 더욱 증거를 보완하고 定本까지를 설정하여 연구원에 비로소 정식논문으로 제출하게 된 것이다. 이 여파로 현재까지도 국어교과서와 기타 참고서에 이 <두류산가>가 채택되지 않고 있다. 이것은 남명학연구사업의 중대한 문제이다. 중고교 학생과 젊은 세대에게 남명의 誠敬義·出處 등 철학사상보다도 교과서에서 <두류산가>라는 시조 작품으로 접근함이 더욱 용이함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작자와 定本에 문제가 있으면 편수당국도 경원하게 된다. 교과서에서 삭제됨에 편승하여 1987년에 <두류산가>도 남명작이 아님이 학계의 통설이 되고 말았다. 그 뒤로부터 국어교과서 또는 학습서에까지 이 <두류산가>는 소외를 당하고 말았다.

  필자는 이에 분격하여 문헌과 실지를 섭렵하여 전래된 작품상의‘兩端, 兩湍水’가 실지로는‘兩堂水'라는 고유지명임을 고증함으로써, 앞에서 제시한 결론을 얻고 절대로 남명작임을 주장하는 발표를 전국 국어국문학 연구대회(1995), 한국시조학회(1996)에서 시행하였고 통설로 검증을 받았다. 본 연구결과에 의해서 이러한 결격조건이 없어졌으니 본 연구원과 딴 학계와 협력하여 교과서에 <두류산가>채택을 교섭해야 할 것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덕천서원 앞 兩堂水 변에‘산청두류청년회'가 세운‘남명선생시가비'가 있는데 여기의 <두류산가>내용이 역시‘兩端水'로 되어있다. 남명선생이 보시고 내가 지은 원래 시조는‘頭里山 兩堂水'라고 질정을 하실 것이니 참으로 송구스럽다. 무엇인가 방법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마침내 하나의 묘안이 있으니, 명년 선생의 500주년 탄신기념사업으로 산천재 경내에 더욱 규모있고 정성스런 남명선생문학가비(國漢)를 건립했으면 한다.‘전국문학가비동호회'가 있으니 25년의 역사와 100명의 교수급 회원이 있다. “선비가 선비를 대우하지 않으면 누가 하랴?”가 사업 綱領이다. 작년에 경북 청도의 자계서원 마당에 역시 500주년 탄신기념으로‘탁영김일손문학비'를 세운 것이 본 회의 43차의 사업이었다.

  남명선생이 449년전 어느 봄날 산천재 마당에서 멀리는 천왕봉과 가깝게는 兩堂水를 관상하시면서 지은 <두류산가>를 원작 그대로를 돌에 새기는 것이다.

  본 동호회에서는 그전부터 남명선생 문학비 건립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마침 500주년 기녑사업에 동참하기를 바라고 있으니, 본 연구원 측에서만 찬동하면 전국적 사업으로 추진될 것이다.

  필자는 省庵선생의 후예로 咸陽에서 生을 얻고 晉州高校(14회)에서 글을 시작하여 명색이 국문학을 연구한답시고 지금에 이르렀다. 혈연 지연 학연을 거스를 자가 누구인가? 남명학(及門人 포함) 중에서 국문학적 접근을 나의 연구 몫으로 삼고 남은 생을 정진하려 한다.

 “보약은 재탕 삼탕도 해야 한다.”는 명언에 힘입어 <두류산가>에 대하여 중언 부언 늘어 놓았으나 남명학을 사랑하는 동학들에게도 일조가 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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