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이야기2]

미시(微視) 한약학의 필요성

                                                       홍  승  헌
한약사 ·원광대 한약학과

  한약을 논할 때면 항상‘자연’이란 말이 등장한다. 이와 더불어 '음양'이나 '오행'이라는 말도 거의 필수적으로 나타난다. 또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약은 단순한 약이 아니라 그 속에 철학이 들어 있다고도 하고, 한의약은 민족의약이라거나 하나의 전통문화라는 식의 표현도 자주 쓴다. 필자는 아직 공부가 충분하지 못하여 이런 표현들에 일일이 설명할 만한 형편은 되지 못한다. 그러나 짧은 소견이라 하더라도 한약과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서는 무언가 할 말이 조금은 있을 것 같다.

  가끔씩 아득한 원시시대에 살고 있는 내 모습을 그려볼 때가 있다. 책도 없고 글도 없고 오늘날의 우리와 같은 지식도 없었을 그 시절에, 덩그러니 산천과 하늘과 바다를 대하고 있을 자신을 생각해 보면 참 흥미롭다. 그런 상황에서라면 어떤 식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우쳐 나갈까? 눈에 보이는 것은 하늘과 바다요, 나무와 불과 물과 땅이요, 빛에 비친 내 모습에는 그림자가 있고 밝은 낮이 지나가고 나면 어두운 밤이 오고, 어느 때는 추운가 했더니 어느새 더워지고 이러는 가운데 힘도 세어지고 장성해졌다가 시름시름 늙어 갔을 게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것이 음양(陰陽)으로 또 생장화수장(生長化收藏)이나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의 오행으로 후세에 기록 됐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의 문제다. 광활한 자연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또한 자연이 아니고 그 무엇이랴.

  인간이 자연의 일부냐 아니냐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는 방법으로 이와 같은 방법을 생각해 봤다. 자연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병들고 더러는 그 병이 고쳐지고 그러다가 끝내는 죽고 마는 한 마리 토끼나 노루는 아마도 그 자연에 존재할 어떤 법칙에 따라 그렇게 살다 갈 것이다. 만약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로 태어나 살다가 죽어간다면 역시 자연의 법칙에 따를 것이다. 그리고 적어도 태고에 살았을 인간을 생각해 보면 인간이 자연의 한 부분임에 추호의 반론도 제기 하기 싫어진다.

  한약은 자연 속에 살아가는 인간을 치료하는데 있어 자연의 법칙을 적용시켰다고 이해하는 것에 무리가 없을 듯하다. 한약을 공부하다 보면 참으로 소박한 것을 이유로 들어 한약의 약효를 논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그 '소박한 이유'는 여지없이 하나의 자연의 법칙으로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는 것들이다. 예컨대 무게가 가벼운 약재는 쉽게 위로 올라 갈 수 있으니 그 약효 또한 승(乘)하거나 부(浮)한다고 보고 무거운 약재는 역으로 그 약효도 강(降)하거나 침(沈)할 것이라는 식이었다. 무거운 것은 다 가라앉으니 약재도 무거우면 가라앉고 따라서 그 약재의 약효도 가라앉을 것이다라는 식의 발상은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맞다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틀렸다고 할 수도 없는 곤란한 문제다. 실제로 현재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어떤 잇몸치료제(이것은 전통 한약은 아니고 현대에 개발된 이른바 양약의 하나이긴 하지만)는 옥수수가 마치 이빨과 같이 생긴데 착안해서 옥수수에 잇몸을 튼튼히 할 수 있는 약효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 연구한 결과 실제로 그런 성분을 찾아내서 제약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해서 이른 바 자연의 법칙에 근거를 둔 약효에 대한 이와 같은 접근 방식이 언제나 예상한대로 나타나는 것은 물론 아니다. 한의약은 경험의 학문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러한 일반적 법칙에 맞지 않는 많은 경우, 경험으로써 그 약효를 일일이 찾아낸 데서 유래 됐을 터이다. 사실 여기에 한약의 고민이 있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고에서 자연의 법칙에 따라 질병의 치료를 시도했건만, 사실 그 자연의 법칙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알 수도 없는 노릇이다. 또 알고 있는 법칙에 따랐다 해도 예외 적인 것이 워낙 많으니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단순히 자연의 일부라고 단정하는 것이 올바른 판단인지도 의문이 생긴다. 더구나 인류의 문명이 점점 발전해 왔고 마침내 오늘날처럼 과학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고대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상황에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여기에서 필요한 것이 발상의 전환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껏 한약에서 생각한 자연의 법칙은 이른바 거시적(巨視的)인 법칙에 머물렀다고 본다. 물론 이 거시적 관점의 법칙과 그것의 한약에 대한 기여는 말할 수 없이 큰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자연의 법칙에 거시적 관점만 있는 것이 아님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오늘날 말하는 자연과학이라는 것은 상당부분이 미시적(微視的)인 자연의 법칙을 구명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한약이 미시적 관점의 자연 법칙을 받아들이지 말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다. 만약 한약이 이러한 미시적 자연의 법칙을 수용해서 응용한다면 한약의 혁명적 발전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좀더 심하게 말하자면 거시적 관점에 머무르는 한약은 한약의 절반만을 다루는 것이고 미시적 관점을 함께 적용할 때 보다 완성된 한약에 근접한다고 할수 있다. 우리는 '고전 한약학' 내지는 '거시' 한약학의 상대적 개념으로 '현대(現代) 한약학' 또는 '미시(微視) 한약학'의 개념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한약을 이야기함에 있어 가능한 한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함께 염두에 두면서 한약 발전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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