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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遊覽이란?

姜  求  律
경북대 강사

한반도 남쪽에 위치한 민족의영산(靈山) 지리산(智異山)! 지리산 하면 남명(南冥) 선생이 생각나고 남명 하면 지리산이 연상되리 만치 남명 선생과 지리산은 고기와 물과의 관계와 같다고나 할까? 15세기 조선의 위대한 지성(知性)! 남명 선생은 지리산보다도 더 높은 학문과 경륜, 정신세계를 소유하였으나 끝내 시대를 만나지 못해 이 산 아래에서 영원하고 진정한 처사(處士)로 일생을 마감한 것은 우리나라 반만년 역사의 아쉬움이자 선생 개인에게도 대단히 불행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역사에서 가정법이 통할 이치가 만무하지만 선생이 시대를 만나 소 잡고 용 잡는 칼을 한 번 휘둘러 난마(亂麻)처럼 얽혀있던 당대의 현실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게 되었던들 우리 민족의 명운(命運)과 역사가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선생을 생각할 때마다 갖게 되는 것은 아마도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이러한 역사에의 미련을 조금이나마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선생의 진면목을 제대로 파악해 내고 이것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병용(變容)시켜 실천해 나가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이 길만이 역사의 간격을 뛰어넘어 선생의 정신을 오늘 이 시대에 되살리는 유일한 길이자 우리 후학들의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우리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자세에 대한 일대 점검과 반성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고 그것은 선생의 다음과 같은 목소리를 통하여 하나의 준칙(準則)을 삼아야 한다는 당위성일 것이다. 화로의 불을 담아 붓는 듯한 염천(炎天)에 산과 바다로 내달리는 수많은 군상(群像)들을 대할 때마다 진정한 유람과 휴식의 모습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된다. 그저 먹을 것만 잔뜩 챙겨 산과 바다로 내달리는가 하면 산과 바닷가에서 자연이 주는 무한한 의미를 망각한 채 화투(花鬪)와 방가(放歌)로 지새는 사람들, 자연 속에서 온갖 추잡스런 세상 이야기를 늘어놓는 등 바람직하지 못한 양태(樣態)를 도처에서 목도(目賭)할 수가 있다. 또한 네가 유람(遊覽)가니 나도 나선다는 무분별하고 무절제한 유람제일주의 또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시점에 경남 안의(安義)에 있는 옥산동(玉山洞)에서 놀며 지은 시에 담긴 준엄한 선생의 목소리는 우리 현대인들의 몰상식과 몽매를 일깨우는 하늘의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작품은 빼어난 자연의 품에 안겨 산수자연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 놓아도 다 못하는데 하물며 아름답지도 않은 욕망 추구의 인간 이야기야 할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일부 몰지각하게 자연을 대하는 잘못된 태도에 대해 정문(頂門)에다 돌침을 놓는 일격(一擊)이다. 다음은 무분별하게 자연을 찾아 나서는 남망(覽荒)에 대한 따끔한 지적이라고 하겠다. ≪서경(書經)≫ <오자지가(五子之歌)>편(篇)에 보면 총애하는 여색에게 미혹되고 사냥을 지나치게 하는 것을 색황(色荒), 흉황(禽荒)이라 했는데 오늘날 우리들의 지나친 유람을 남황(覽荒)이라고 명명하여 그 문제점을 냉정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쁘게 세상을 살다보면 여가가 잘 나지 않는 것이 보통 우리 인간들의 삶이어서 한 번 유람을 나선다는 것은 큰 마음 먹고서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선생은 모처럼, 그리고 소박하게 나선 유람에서 자신의 이런 행동이 혹시라도 호사가(好事家)들의 사치스러운 놀음놀이라는 오해를 받지 않을까 우려하는 듯한 신중한 자세를 보인다. 선비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한 흐트러짐 없는 자기 점검의 주도 면밀성을 또한 볼 수 있다. 이런 자세는 무분별한 유람제일주의에 매몰되어 있는 현대의 우리들에게 귀감(龜鑑)이 될 수 있고 마땅히 귀감으로 삼아야 할 태도라고 하겠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조선 제일의 준비된 지성으로 우뚝하게 자리 잡은 남명 선생의 목소리는 원칙을 상실하고 가치를 망각한 현대인들이 하나의 모범과 준칙으로 삼을 수 있는 의미 있는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혼란과 방황의 원인을 규명하고 그 해결책을 스스로 모색하는 민족은 격랑의 세계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자격과 능력을 갖추었다고 할 때 역사 속의 남명 선생을 오늘에 모셔와서 우리 민족의 영원한 스승으로 받들고 가르침을 받으려는 자세가 오늘 이 시점에 와서 더욱 현명하게 보이고 절실하게 느껴진다는 것은 그 만큼 우리가 심각한 처지에 있다는 방증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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