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週間의 時間旅行

―第2期 南冥學堂 夏季硏修를 다녀와서-


                                                 金  炫  東
慶北大  漢文學科  3學年

 ≪논어(論語)≫의 서설(序說)에서 정자(程子)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지금 사람들은 독서를 알지 못한다. 예를 들어 ≪논어≫를 읽음에 아직 읽지 않은 때에도 이러한 사람이오, 읽기를 마친 후에도 또한 다만 이러한 사람이라면, 이것은 곧 읽지 않은 것이다." 이 말은 글만을 읽어 나가는 것이 독서가 아니라, 책 속의 생각을 느끼고 그 느낌을 자기 것으로 하는 것이 독서임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렇다면 3주가 지난 지금, 난 어떠한 눈을 가지게 되었을까? 역시 나도 독서를 알지 못하는 것일까? 솔직히 나의 변화된 모습을 조금은 느끼면서도 그런 모습을 보이는데 조심스러워진다. 다만 그 곳에서 얻어온 가슴 가운데 뿌듯함을 풀어보고자 여기에 적어본다.

  7월 2일, 찌는 듯한 더위 속에 에어컨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진주행 시외버스는 나의 생각을 온통 '후회'라는 두 글자로 채워주기에 충분했다. 여느 학기와 달리 교육실습 나갔다가  정신없이 기말고사를 치르고 며칠 쉬지도 못한 때라서 또 다른 구속이 될 것 같은 진주행 버스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보다도 훈련소로 가는 입영버스의 생각을 먼저 들게 했다. 그렇지만 논어(論語)를 3주에 다 볼 수 있다는 것은 나 같은 한문전공자에겐 둘도 없는 기회였다. 10년을 공부해도 감을 잡기 힘들다는 한문을 대학에서 공부한다는 것은 참으로 가혹한 일이다. 한문학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사서(四書)만 다 보고 졸업하기에도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보지 못하면 평생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오기도 생겼다. 진주에서 다시 원리(院里)로 가는 버스를 타고 서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작년 고적답사 때 와서 자고 간 곳이어서 그렇게 낯설지는 않았다. 대문에 들어서면 보이는 큰 현판과 푸른 풀들, 그런데 올해는 샤워장과 식당이 있는 것도 알았다. 우리 나라 어디를 가도 이런 시설의 서원이 또 있을까 싶다. 짐을 내려놓고 저녁식사를 하고 경의당(敬義堂)에 모여 경상대학교 한문학과(慶尙大學校 漢文學科)의 최석기(崔錫起)선생님께 이곳에서의 생활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회장과 총무를 뽑고(어쩌다가 대표를 하겠다고 손을 들어 버렸다.), 한 주씩 돌아가면 식사를 맡을 조를 짜고, 방을 배정 받았다. 쏟아지는 벌레비 속에 어색한 첫 날 저녁을 그렇게 보냈다.

  7월 3일에는 오전에 입학식을 가졌는데, 경상대(慶尙大) 선생님들과 남명학연구소(南冥學硏究所)분들, 서원(書院)에 관련된 어르신들, 부군수 그리고 KBS역사스페셜 촬영팀까지 너무나 많은 분들이 참석하셨다. 조용히 공부만 하다가 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셔서 격려를 해 주시니까 어깨가 무거웠다. 남명(南冥) 선생님이 모셔진 사당에 제(祭)를 올리고서야 선생님과의 첫 만남을 가질 수 있었는데, 첫 번째 주는 이상필(李相弼) 선생님께서 ≪논어≫ 6장까지를 강의하도록 되어 있었다. 서원에서의 하루는 대체로 6시에서 7시 사이에 기상해서 주변 청소를 하고 아침식사를 하면, 9시 30분 정도에 오전 강의가 시작된다. 12시에서 2시 30분까지 점심식사를 하고, 5시에서 6시 사이에 강의가 끝나게 된다. 보통 아침, 점심, 저녁 사이에 주어지는 남는 시간에는 모두들 강의의 예습, 복습들을 하였다. 식사는 각 조에서 준비를 하다보니, 시간은 일정하게 맞추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였다. 처음에는 난감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격해 오는 모기들, 양반다리로 인한 다리에 마비와 골반의 통증, 더운 한 낮에 하나라도 놓치기 싫은 말씀들인데, 내 마음도 몰라주고 파도를 치는 졸음…. 지금 생각해 보면 군대 다녀온 남자들도 곤란한 생활을 여학생들이 참 잘도 견뎠다 싶다. 첫 날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는 올 때의 '후회'보다, '참 잘 왔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3일정도 지나니까 사람들과 농담도 하고 새로운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 첫 주엔 진주MBC에서 촬영을 나왔었는데, 토요일 오전에 원리(院里) 주변의 남명(南冥) 선생 유적지 답사에도 함께 했었다. 먼저 남명 선생 생전에 계셨던 산천재(山天齋)에 들러 선생의 한시(漢詩)를 감상하는 시간을 가지고, 신도비의 내용을 살펴보고, 묘소에 가서 준비해 온 음식으로 절을 하고, 가볍게 음복도 하였다. 일요일엔 오랜만에 개인 시간들을 가졌다. 땡볕에서 족구를 하기도 하고, 오후에는 뜻 맞는 사람들끼리 수박을 사 들고 경치 좋기로 유명한 대원사 계곡을 찾아가 지리산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기도 했다.

  두 번째 주, 아침 일찍 황의열(黃義冽) 선생님께서 들어오셨다. 첫 주의 이상필(李相弼) 선생님께 너무나 좋은 수업을 들어서 황의열 선생님께선 어떤 좋은 말씀을 해 주실지 궁금하였고, 마지막 주의 최석기(崔錫起) 선생님에 대한 기대도 극에 달했다. 황의열 선생님께서는 ≪논어≫ 7장에서 12장까지를 맡아서 우리에게 강의하셨다. 2주에는 내가 식사조에 속해 있어서 다른 주보다 힘이 들었던 것 같다. 거의 30인분의 식사를 끼니마다 다르게 준비하려니까 가정주부처럼 식사준비 때가 다가오면 '오늘은 뭘 해서 먹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의 사모님께서 직접 양념하신 주물럭으로 포식하기도 하고, 금요일 저녁에는 같이 있는 학생의 부모님께서 찾아오셔서 삼겹살도 참 맛나게 먹었다. 어째 둘째 주는 식사당번이어서 그랬는지 밥 생각이 가장 많이 떠오른다. 금요일 저녁에는 진주MBC에서 맥주를 사들고 와서 간단한 간담회도 가졌는데, 촬영이 끝난 방송국 사람과도 많은 얘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원래 둘째 주 토요일에는 산청군(山淸郡)에서 지원해 주는 이 지역 답사와 법계사에서 일박하는 지리산 산행이 계획되어 있어서 KBS2에서 촬영을 나왔는데, 금요일부터 쏟아진 폭우로 부득이하게 변경되었다. 토요일 오전에 남명학원구소장(南冥學硏究所長)으로 계시는 허권수(許捲洙) 선생님의 특강을 듣고, 오후에 버스를 타고 면화시배지와 지역의 유명한 고택들과 구형왕릉 등을 답사하였다. 답사 후에 촬영팀의 요구로 지리산 등정하는 모습을 조금 담기로 하고, 중산리 자연 학습장 방향으로 해서 수해로 길이 끊어진 곳까지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마지막 주가 되었다. 최석기 선생님께서 사모님이 준비해 주신 밑반찬들을 가져 오셔서 맛깔스런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마지막 주는 13장부터 20장까지 범위도 많고, 서원에 온 이후로 가장 더운 주여서 힘들법도 했지만, 모두들 처음 갖고 왔던 다짐들을 되새기며 열심히 했다. 세심정에서 다른 지역, 다른 학교에서 온 동학들과 많은 얘기도 나누고, 수업이 마치고는 강에 나가 물놀이도 하고, 뒷산에 올라 계곡 물에 발을 담궈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그 곳 덕천서원(德川書院)에 동화되고 있었다. 21일 금요일 ≪논어≫를 끝 마치고, 3주간 지낸 서원 곳곳을 청소하고, 저녁에는 남명학연구소와 경의청년회(敬義靑年會)에서 후원을 해 주셔서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과 마지막 밤을 즐겁게 보냈다.

  지난 3주간의 시간여행에서 나를 비롯한 30여명의 학생들은 2천 5백여년 전의 성현(聖賢)의 말씀을 1576년부터 그 이름을 이어온 덕천서원에서 들었다. 인문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이 2000년대에 한 때 우리나라의 성리학을 대표하는 남명(南冥) 선생의 넋이 깃든 곳에서 나는 그 인문학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을 보고 배웠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가수의 노래를 듣기 위해 비싼 돈을 내고 줄을 선다. 내겐 이렇게 우리에게 열정을 가지고 좋은 말씀을 해주시는 이 시대의 석학들이 HOT고 핑클 같은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분들이 자신의 이익을 생각지 않고, 순수한 열정으로 학생들에게 희망을 걸고 계시는데, 감히 우리 학생들이 무엇이 힘들다고 투정을 부리고, 선생님들의 그 업적의 맥이 끊어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겠는가. 비록 전국 각지에서 서로 다른 학문을 하고 있지만, 3주가 지난 지금은 남명학당 제2기로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예전에 남명 선생께서 이름난 학자들과 친분을 갖고, 생각을 나눴던 것처럼 우리도 후에 그렇게 되자고 약속하고, 우리의 뒷날 모습에 웃음 지었다. 지난 3주간의 시간여행을 가슴 속에 새겨, 적어도 그 곳에 다녀가기 전의 모습과 달라지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앞으로 많은 후배들이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길 바라며, 마지막으로 좋은 기회를 주신 여러분들께 감사 드린다.


경상대학교 남명학연구소에서는 지난 7월 3일 부터 22일 까지 3주간 덕천 서원에서 제2기 남명학당 하계연수를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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