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지금은  慧眼이 필요한 때

金 光 淳
경북대 교수

우리는 얼마전 갑자기 몰아닥친 IMF의 여파로 끝내는 국가가 부도에 처할 위급한 순간에까지 이르게 되었었다. 누구라도 온 나라가 빚더미에 쌓여 통째로 넘어가는 듯한 위기의식을 피부로 느꼈을 것이다. 모두가 국가를 경영하는 위정자와 기업가 때문이라고 야단법석이었다.

20세기초에는 일제에 의한 36년 간 고통을 받더니 20세기를 마감하면서 나라가 또 다시 어처구니 없는 수난과 고통에 빠져드는구나 싶었다. 국민들은 이 엄청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금모으기 운동에 동참했다. 당시 우리는 어린 아이의 돌 반지로부터 약혼 반지, 결혼 반지는 물론, 할머니의 비녀까지 서슴지 않고 내놓았었다.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고마운 마음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우리 국민들은 위기에 대처하는 순발력이 뛰어난 민족이며, 가능성이 있는 민족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이 어려운 고비를 넘겼다고 방심해서는 안될 것이다. 특히 위정자와 기업가는 더욱 긴장을 놓지 말아야 한다. 기업가는 정부가 강행하는 구조 조정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고, 위정자 역시 당리당략에 빠지기보다는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볼 줄 아는 겸허함을 가져야 할 것이다.

선거가 막 끝난 지금 승패의 희비가 엇갈리는 이 순간, 우리 정치인들의 자질을 논할 때마다 떠오르는 분들이 있다. 이 분들은 모두가 자신과 그들의 생활을 되돌아보며 살아간 우리 역사의 이름있는 위정자들이었다.

옛날 윤석보라는 이가 풍기군수로 있을 때 아내인 박씨가 가난에 못 이겨 그가 시집올 때 가져온 비단 옷을 팔아 손바닥만한 밭을 샀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윤석보는 고향에 사람을 보내어 국록을 먹으며 땅을 산다는 것은 사들인 땅만큼 임금님의 덕을 먹어드는 것이라 하면서 즉시 그 땅을 돌려주게 함으로써 자신의 허물을 씻게 하였다.

또한 대제학 김채의 집은 두어 칸밖에 되지 않아 아이들이 거처할 방이 없어서 처마 밑에서 자리를 깔고 자곤 했다. 그런데 장마철이 되어 비가 새어들자 아이들은 할 수 없이 처마를 고쳐 매었다. 감사로 나가 있는 아버지 몰래 아이들이 집 한 칸을 붙여 지은 것이다. 뒤늦게 이를 안 아버지는 이것을 부끄러워하며 다시 헐어버리게 하였다고 한다.

서애 유성룡은 관직에 나아가 40년 간을 일해왔던 명재상이었는데 임란 때는 영의정에 이르러 그야말로 지존한 임금의 바로 밑자리에서 부귀와 공명을 손에 쥐고 막강한 권력을 누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온 그는 청백리로서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우복 정경세가 그의 스승인 서애를 찾아 하회마을에 가보니 평소 존경하던 선생님이 그의 손자와 함께 시래기죽을 먹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보고 읊은 우복의 시는 지금도 인구에 널리 회자되고 있다. 이는 오늘을 사는 위정자들이 한 번쯤은 음미해 볼 만한 것이다.

  성도 팔백 그루의 뽕나무(成道八百桑)란 제갈량이 죽을 때 임금에게 청백리라는 것을 역설하면서 자기에게 남은 것은 뽕나무 팔백 그루와 자갈 밭 열다섯 이랑이 있을 뿐이라며 청빈하게 살았음을 강조하는 데서 유래된 고사이다. 제갈량은 성도에 자갈밭과 팔백상(八百桑)이라도 있었지만 서애는 애비없는 손자와 시래기죽이라도 배불리 먹지 못하였으니 백사 이항복이 서애를 두고 청백리의 첫째로 꼽을 만한 위인으로 본 것은 실로 당연하다 하겠다.

서애는 삶을 마감하면서 자신이 죽거든 나라에서 국장을 치르려 할 터이니 이를 만류하고 간소하게 장례식을 치러줄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조선조 500년 중 가장 어려울 때 영상을 지내며 수많은 공적을 남긴 그에게 송덕비는 물론이거니와 국장을 치르게 하는 것은 당연하였건만 청빈을 스스로 택하여 죽는 순간까지도 허례허식을 거부했던 것이다. 이것은 그의 스승 퇴계가 임종시 자식에게 유언한 것과 비슷한 말이니 그 스승의 그 제자라 할 만하다.

우리에게 서애와 같은 영의정이나 김채, 윤석보와 같은 위정자가 있었다면 과연 나라가 부도의 위기에 놓여, 온 국민이 불안에 떨며 고통 속에서 보내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제 16대 총선도 끝났다. 정치에 몸담게 된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선출한 우리 모두가 앞서간 위정자들의 삶을 거울 삼아 한 번쯤 자신을 되돌아 볼 수 있는 慧眼을 가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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