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이야기1]

<한약(韓藥)이야기>를 시작하며

                                        홍  승  헌
 한약사·원광대학교 한약학과 연구원

  역사(歷史)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세기가 변화하는 시기에는 크고 작은 사건이 유난히 많았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가까이 우리 나라의 예를 봐도 1900년도를 전후하여 갑오경장, 을사 보호조약, 한일 합방 등 실로 겉잡을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2000년도를 맞이하면서도 수 십년간의 군사독재의 종식에서부터 IMF 구제금융시대, 역사상 최초의 여야간 정권교체 등 구 한말 못지 않은 대변화(大變化)가 있었다.

  그러나 변화는 이러한 정치적인 데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의약(韓醫藥) 계에도 엄청난 변화의 물결이 있었고 그 변화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의약계의 변화의 조짐은 1990년을 전후하여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1994년에 시작된 한약분쟁은 그 변화의 가속화 요인 중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당시의 문제는 한의(韓醫) 측과 이른바 양약(洋藥) 측간의 분쟁이었지만, 그 분쟁이 묘하게도 한약학(韓藥學)이라는 새로운 이슈를 탄생시켰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한 일이다. 당시 한약분쟁의 조정 수단으로 제시됐던 한약학과의 설치안은 1996년 일부 종합대학교에 한약학과가 신설되면서 현실화되었고 그 4년 후인 금년 2000년에는 그 첫 결실로 '한약사(韓藥師)'라는 새로운 직종이 탄생하였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비 당사자에게는 그다지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한의약계에 몸담고 있는 당사자의 입장에서 볼 때는 실로 시대의 변화를 대표할만한 큰 사건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단순히 '한약학과'라는 새로운 학과의 신설이나 '한약사'라는 새로운 직종의 탄생이라는 의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국민보건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사회적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의약 분야에서의 통상적 관점은 이러했다. 즉, 한의약은 의(醫)와 약(藥)을 분리해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학문적으로 한의약에서 한약이 분리되어 대학에서 하나의 새로운 학문 분야로 독립했고, 또 사회적으로 한의사와 구별되는 한약사가 출현했다는 사실은 고전적 한의약의 개념에서 보면 하나의 개벽과도 같다. 심하게 말하자면 이제 고전적 개념의 한의약은 이 땅에서 막을 내렸으며, 2000년대라는 시대적 변화의 도래와 더불어 새로운 개념의 한의와 한약이 이미 그 싹을 내밀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한의(韓醫)와 한약(韓藥)에 있어서 그 차이점은 무엇일까. 한의든 양의든 의(醫)의 본질은 진단과 치료라는 행위(行爲)이다. 이것에 비해서 약(藥)은 그 치료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구체적 물질(物質)이다. 따라서 지금까지는 행위로서의 한의와 물질로서의 한약이 일체가 되어 있었는데 이제는 행위와 물질이 각각 분리되어 별개의 것으로 존재하게 된 것이다. 한약과 한의가 분리되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이것을 단정적으로 이러하다고 정의를 내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처럼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으로 한약(韓藥)과 한의(韓醫)는 각기 보다 전문적이고 보다 깊이 연구가 가능해졌다고 보는 데는 이의가 없으리라고 생각된다. 궁극의 목적인 건강의 유지나 질병의 치료라는 측면에서 각각 분리된 한약과 한의는 그 단독으로는 완전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이 한약과 한의가 분리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될 수 없다. 오히려 각기 독립적으로는 완전하지 못한 두 분야가 서로 보완적으로 협력할 때는 보다 완전해질 수 있다고 본다. 완전하지 못한 두 개체가 한 몸으로 있을 때는 그 한 몸이 더욱 불완전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측면에서 보면 한의와 한약의 분리는 발전적 해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한의약의 변화의 소용돌이는 당사자의 측면에서 보면 이렇듯 적지 않은 의미를 지니고 있고, 필자는 이러한 소용돌이 속에서 탄생한 '한약사' 중의 한 사람이다. 한약사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귀중한 지면을 채워나가게 된 데 대해서 설렘과 더불어 두려움을 느낀다. 어쩌면 이 두려움이 이처럼 장황한 서론을 쓰게 한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필자는 본 지면을 채워 나감에 있어 '한약'의 이야기에 충실하고자 한다. 고전적인 이야기나, 현대적인 이야기, 더러는 실험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이야기나 개인적인 경험담, 또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바램이 있다면 이런 이야기들이, 이미 세간에 넘쳐 나듯 많은 여러 한방 건강 이야기와는 조금이나마 달라서, 독자 제위에게 새롭고 신선한 첫 경험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 원보의 새로운 필진으로  홍승헌 (한약사, 원광대 한약학과 연구원)선생을 모셨다.
홍선생은 <한약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잘 못 이해하고 있거나 꼭 알아두어야 할 한약관련 건강상식을 전해 줄 것이다.
특히《남명집》을 비롯한 유학자 문집에 더러 제시되어 있는 한약에 대한 용도와 기능을 소개함으로써
저자 및 관련 인사들의 건강을 이해하는 새로운 접근 방식이 기대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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