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남명원보에 대한 반성적 접근

『南冥院報』가 알리고자 한 "南冥"은?

김 민 숙
경북대 강사

  남명학연구원의 남명원보가 출간되어 모습을 드러낸 지 벌써 5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남명원보를 접하면서 남명 선생이 걸어가신 "내명자경(內明者敬)"하시고 "외단자의(外斷者義)"하신 자취를 흠모하고 선생의 닦으심과 걸어가신 길을 만나기에 세월의 흐름을 잊고 살았습니다.

스스로 이름하시기를 남명(南冥)이라 하셨으니, 그 이름 속에 담으신 큰 뜻을 그 사이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었을까마는 장자(莊子)<소요유(逍遙遊)>의 앞 머리에 있는 "붕새가 바다 기운을 타고 남명으로 가려"한 뜻의 끝자락을 잡고 한낱 매미와 어린 비둘기처럼은 되지 않아야 함을 배웠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붕(大鵬)을 구만리 장천으로 날아오르게 할 남명을 천지(天池)라" 하였으니, 대붕이 웅비(雄飛)하기 위한 남명의 그 크고 우람함으로 자호(自號)하신 까닭을 확인할 수 있어 기쁘기 짝이 없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무릇, 세상 일이란 겉으로 보아 간단한 것일수록 속으로는 더 번잡하고 힘든 얽힘이 있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원보를 출간하는 일 또한 겉보기처럼 쉬운 것만이 아닐 것임을 생각합니다. 그러하기에 그간 원보를 간행해온 편집진들의 노고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5년의 긴 세월에 좋은 글과 가르침을 주신 필자와 엮어 모으는 힘든 일에 쉼 없이 애써온 편집인들에게 다시 한번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남명학연구원의 일취월장한 발전을 눈 여겨 보며 배움의 길에 들어선 한 사람으로서 이를 기뻐하며 보다 나은 남명원보가 되는데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자 감히 무례함을 알면서도 이 글을 씁니다.

 '남명학 발전의 새로운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권순찬 이사장님의 축간사나, '많은 분들의 참여를 기대하는' 김충렬 원장님의 발간사를 보면서 창간 당시의 이러한 바램이 얼마나 바르며 당연한 것인가를 생각해 봅니다. 무릇, 보(報)란 두루 알리고[告也], 하나로 합해 감[合也]의 뜻을 가지고 있는 까닭에 두 분의 이같은 바램―이 둘을 아우러 가는 길―은 곧 남명원보를 만드는 취지가 이 같았기에 17집까지 지속적으로 간행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먼저 편집되어 간행된 지금까지의 모든 원보를 전체적으로 창간 의도에 맞추어 살펴보겠습니다. '남명학 연구원 구성원간의 결속을 보다 긴밀히 하는' 기틀이 되고자 하는 출발점의 편집 구성은 '학회 소식'이나 '연구원 소식' 등의 '회원 동정(動靜)'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밖으로는 널리 일반인에게 남명학을 선양하고 홍보하는 데 기여할' 등불이 되기 위한 것은 야심찬 기획 시리즈를 통해 힘찬 걸음을 내딛었습니다.

전자(前者)는 여느 회보지(會報紙)에서나 볼 수 있는 기사체(記事體)의 내용 전달이었고, 지나간 일만을 모아 놓은 역사기(歷史記)로서의 모습이 보입니다. 물론 '시론'이나 '열린 글터' 또는 '자유기고'들은 연구원이나 구성원들의 지향성이나 합목적성에 이어지는 밑거름이 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대체로 일관되고 지속적인 연계선 위에 있는 것이었고 아울러 글의 성격상 일회성이 강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후자(後者)는 3대 기획물인 '남명학파 고문헌 소개'(8회) '남명 연원을 찾아서'(13회)와 시리즈로 나온  '남명선생 사전'(8회), '남명선생 평전'(11회), 및 '남명연원을 찾아서'(13회), '남명연원사숙인물고'(11회), '서원탐방(7회)'으로 알차고 무게 있는 내용을 담은 학술적인 무게가 다분한 연재물이었습니다. 이들은 남명선생의 실천궁행(實踐窮行) 정신을 만나게 하는 연구원의 설립에 부합하는 편집이었고 남명학의 폭을 넓히고 남명선생의 위업을 선양하는 뛰어난 기획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학술적인 성향이 높은 글들이어서 일반인들에게 쉽게 다가서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고문체(古文體)의 딱딱한 문장 표현이나 전문성이 높은 어휘를 통한 기술(記述) 방식은 "이 회보를 통해서 강우학파(江右學派)의 후예들이면 누구나 자기동일성(自己同一性)을 가슴으로 만날 수 있도록 할까 합니다"라는 의욕있는 선언에 얼마나 부응하였는지 자못 의심스럽습니다. 오히려 '남명문학 현장답사'(17회)나 '시론(時論)'(12회) 등과 같은 시의적(時宜的)이고 가벼운 소개의 '편한 알려줌'이 일반인들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고 또 이해를 돋우는 빠른 길임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딱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크게 가름해 보아 이러한 주제들이 연구원 내부의 구성원를 향한 것이라면 전문성이 오히려 부족하고 연구원 구성원 밖을 향한 것이라면 쉽게 읽혀지는 글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위의 예들은 글의 본질적인 성격이 딱딱하고 고풍스러움이 배어 있는 것 일 수 있지만, 그러할수록 보다 쉽고 편하게 해 줌으로써 독자들에게 남명학을 접하는데 보다 큰 이바지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뿐만 아니라 필진이 고정되어 있어서 다양한 측면에서 여러 가지로 다양한 견해를 드러내어 이루어지는 남명학의 기획이 아니고, 일방적인 통로를 통한 교술적(敎述的) 내용의 전달이라는 학술적인 기획물로서의 성격이라는 인상도 남습니다. 남명학 저변 인구의 확대와 구성원들의 화합의 장이라는 '두 마리의 토끼'를 단번에 잡아내기란 결코 싶지 않습니다만 무엇보다 출간 당시의 '초발심(初發心)'이 흩어지거나 흔들려서는 아니 되겠기에 속 좁은 노파심에서 나온 생각입니다.

다음으로 원보의 편집 전반에 걸친 특성을 "잡지로서의 기능"에 맞추어 두드러진 것 서너 가지만을 살펴 보겠습니다.

먼저, 필진이 지나치게 고정되어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남명학 연구의 성과가 축적되고 연구 인력의 저변화가 이루어졌다면 이러한 문제는 애당초 생기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짐작하건대 필진이 기획시리즈 물에서 몇몇 사람으로 고정된 것은 글의 일관성이나 색깔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점이겠지만 기획시리즈를 제외하더라도 전체적으로 필진이 다양하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이는 독자들에게 다양한 시각과 신선함을 제공해 주지 못하게 됨으로써 남명학을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그리하여 자칫 편집 의도와는 달리 독자들이 받아들이기에 교조적(敎條的)인 느낌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앞으로는 독자의 참여를 유도하고, 시의에 맞고 공동의 관심이 되는 분야―시론, 특별기고, 논평 등―의 필진을 다양하게 넓혀 갔으면 합니다. 남명학 연구자들을 포함한 강우학파의 후예들이나 일반 독자층은 모두 독자이면서 필자가 될 수 있다고 본다면, 나아가 남명학의 저변을 확대할 목적을 성취하려면 더욱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남명학연구원과 관련 있는 주변인이 아닌 전국적인 층위에서 남명학 뿐만이 아닌 다른 학술분야의 사람들까지 필진으로 선정하여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들의 글을 실음으로써 남명의 세계를 '안에서의 드러냄'은 물론 '밖으로부터의 두드러짐'을 통해 계도(啓導)와 수용(受容)이라는 측면에서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양한 필자의 구성은 원보를 통한 남명학 저변 확대와 남명 사상의 고취를 위한 가장 손쉽고도 빠른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편집 기술상의 문제를 들고 싶습니다. 원보를 받아 보면, 오늘날 흔하게 발간되는 기업체의 회보나 유사 기관의 정기간행물과 다른 점이 드러납니다. 이는 바로 현시대적 편집감각이 부족한 듯하여 마치 평면적인 마을 회지와 같은 구태의연함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학술단체의 간행물이고, 전문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연구원의 원보라는 점이 이해되지 않은 바는 아닙니다만 너무나 평이한 편집 구성과 판짜기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복잡하고 많은 원고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꽉 짜여진 답답한 지면과 복단 구성의 똑같은 글자체, 너무 좁은 문단 간격과 행간, 너무 많은 한자 표기 등이 주는 시각적 피곤함을 벗어 던질 수가 없습니다. 욕심을 부린다면 신선함은 물론 세련됨을 갖춘 편집이 된다면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데 더욱 큰 기여를 하리라 생각합니다.

본 원보의 주독자층이 연세가 많으신 분들이고 고전학을 하시는 분임을 압니다만, 앞으로 남명학을 이끌어 나갈 학문 차후세대들이 아직 젊은 층임을 생각해 본다면 자라나는 젊은 세대의 감각과 그들의 인식구조에 부합하는 판짜기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남명학의 세계를 접하고자 하는 독자층 확대라는 점에서 곰곰이 생각할 문제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건대 지금의 편집구성은 다른 학술연구소들의 회보들과 차별성을 얻기 힘든 판짜기이므로 앞으로 차별화하기 위해서라도 좀더 많은 신경을 써야 할 분야라 생각합니다.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를 위해 다른 기관의 회보와는 차별화를 기하고, 오늘날의 대중적 기호에 부합하는 참신성을 보완하는 길은 본 원보의 세련미를 돋보이는 길이 될 것입니다. 이는 편집인들의 보다 열린 시각이 있을 때 가능한 것으로 생각되기에 자세 전환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한편, 남명원보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자리한 표지의 남명 관련 유적들의 사진 자료들은 앞으로 얼마나 지속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화보인지 궁금하면서도 발간 취지에 부합하는 바른 접근이며 그 의도는 돋보이는 편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좀더 관심을 써주신다면, 이 표지 자료와 편집된 내용과의 상관성을 염두에 두면서 제시되었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나치게 활자 중심으로 되어 있어 시각적 참고자료의 부족을 느낍니다. 두번  째의 지적과도 연계되는 점이긴 합니다만 시각적으로 필요한 사진이나 영상자료, 그래픽 등의 도표자료 등이 있어 충분한 이해를 도와주고 나아가 잡지로서의 "읽을 만한" 호기심을 북돋아 주어야 하겠습니다. 위의 예들은 남명학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에 대한 봉사적 자세이기 때문에 좀더 새로운 마음가짐만 있다면 가능합니다.

아울러 어려운 고문투나 한문식 표현은 학술적인 부분은 예외로 하더라도 그렇지 않은 부분에 있어서는 가능한 한 지양하여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배려를 독자에게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자라나는 청소년이나 지금의 청년층은 한문이 새로운 외국어인 세대들이고 그들의 대상 인식 방식이 한문화 구조와는 다른 까닭에 언어적 이해 곤란으로 남명학의 세계와 거리를 두게 된다면 이는 원보를 간행하는 일차적 목적과 동떨어지게 됩니다. 원고를 청탁할 때에 이같은 의견을 필자에게 제시하여 쉬운 글쓰기가 되도록 힘쓰야 하겠습니다.

아울러 10집이 간행된 이후 편집체제에 그전까지 유지되었던 일관성이 다소 흐트러져 있는 감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는 아마 편집 구성에 있어 어느 정도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내는데 힘이 달렸거나 기획력에 있어서의 한계성이 드러났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오랜 기간(3년 여)동안의 편집에서 오는 힘부침이라고도 생각합니다만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편집진을 구성하여 새바람을 불어 넣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둑 장기 등을 둘 때나 경기를 관전할 때 경기에 임하는 사람보다 옆자리에서 관전하는 사람이 훨씬 훈수를 잘 두는 것이 우리의 세상살이입니다. 직접 편집에 참여하여 고충을 나누지 못한 국외자로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많았습니다만 너그러이 이해하고 용서해 주시리라 생각하며 단견을 늘어 놓아 보았습니다.

그간 5년여 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편집진들과 남명학연구원 구성원 여러분들의 발전을 빌며 글을 마칩니다.


남명원보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아낌없는 질책을 해 주시는 독자 여러분에게 먼저 고마운 말씀을 전합니다. 이 모든 비판이 본 원보를 아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기에본 원보의 편집진은 더욱 분발하여 독자여러분 곁으로 다가 가겠습니다.  -편집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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