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의 유교글 읽는 방법에 대한 경험적 서술

구 본 섭
(능인고등학교 교사)

사람들이란 자신의 불확실한 삶에 대하여 불안해 하고, 좀 더 자신의 삶이 분명해지기를 간구한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분명한 이해는 새로운 희망을 낳을 수 있는 법이다. 공맹의 사상은 동양 사상의 중추이다. 그리고 공맹의 사상은 우리들 생활의 이면에 관습처럼 스며들어 있어서 그 뿌리가 깊다. 그러므로 공맹에 대한 이해는 우리들 삶의 이면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맹에 대한 공부는 나에게 유용한 것이었다.

국어국문학과에 입학한 나는 고전문학에 대한 이해를 더할 마음에 한문으로 된 유교글을 공부하게 되었다. 학과내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한문스터디그룹이 있어서 내가 한문공부를 하는 데 결정적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명심보감이며 소학을 보며 옥편을 뒤적였다. 큰 맘 먹고 용돈을 아껴 괜찮은 옥편을 하나 구입한 날은 참으로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어떠한 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도 하기 전에 온갖 책을 사다가 면전에 대령하는 부모님을 둔 요즘의 학생들은 그러한 기분을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까맣게 손때가 묻은 그 옥편이 아직도 나의 면전에서 웃고 있다. 대학이며 논어 맹자 중용을 공부할 때는 여러 가지 해석서를 펴 놓고 많이도 찾아보았다. 한문스터디그룹의 모임시간에 쫓겨 이책 저책 뒤적이며 바쁘게 예습을 하다가 식사시간을 놓친 적도 적지 않았다. 뱃속의 밥통이 호소하는 허기를 메우는 즐거움보다는 공맹의 이야기가 가져다 주는 지적 즐거움이 더 컸다. 그런데 서당을 찾아서 공부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처구니 없는 생각이었지만, 그 때는 서당을 찾을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좋은 해석서들이 시중에 나와 있으니 그 책들을 찾아 읽으면 더 많은 공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을 했고, 서당을 찾을 만큼 경제적으로도 사정이 여의치 못하였다. 그리고 서양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스피노자며 싸르트르 등의 여러 인물들에 대하여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을 시기였으므로 서당을 찾아 오가는 것으로 시간을 흘려버리기에는 그 시간들이 너무나 아깝게 느껴졌던 것이다. 보고 싶은 책들도 많았고 친구들과 하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았다. 그런데 당시에는 가볍게 생각한 문제인데 후에 분명하게 문제가 된 것은 서당을 찾지 않고 거의 독학으로 형성된 나의 한문세계가 막연하고도 모호한 관념의 영역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유교경전을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가슴이 답답해 오는 것을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분명하지 못한 것이 분명히 문제였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교직에 나온 지 5년만에 결혼을 했다. 내가 담임을 한 학생들이 결혼 선물로 그림을 한 장 그려서 주는 것을 받았다. 그림의 내용이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나와 내자가 함께 서 있는 그림인데 신세대로 그려진 내자는 김건모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고 곁에 선 나는 옛날 생원처럼 수염을 조금 기르고 '孔子曰 修身齊家 治國平天下 …….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라고 말하고 있고 나머지 여백은 반 학생들의 싸인으로 채워져 있었다. 세계관이 전혀 다른 두 사람이 만나서 빚어낼 불협화음을 미리 걱정이라도 하는 것인가. 아무튼 수업 시간에 여가가 생기면 공자며 맹자의 생각들이 과거의 고루한 생각들이 아니고 지금도 충분히 유효한 것임을 강조한 것 때문에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의 모습을 이렇게 옛날 사람으로 이미지화 한 것이리라. 부지런하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유가경전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읽다가 스스로의 생각으로 그 언어들에 대하여 점검도 하여보고 가끔은 학생들에게도 말하여 보았다. 敎學相長이라는 말을 빌어서 분명하지 못한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분명히 해 보려고 얼마간 시도도 해보았다. 그것이 수염을 조금 기른 생원 모습의 나였을 것이다. 지금도 그 그림을 코팅해 방문에 걸어두었는데 별로 싫증이 나지 않는다.

이제 교직 경력이 10년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이지만 서당을 찾아 간다. 서당 선생님의 수업이 재미있다. 서당선생님의 해박한 설명으로 그간의 분명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던 것들이 매우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래서 참 기분이 좋다. 언제나 우리들에게 가장 큰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서 나의 삶의 양식이 어떠한가 라는 것이라고 전제한다면, 공맹의 글을 읽을 때에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그들의 사상이 아니라 그들이 살아간 삶의 모습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분명히 이왕의 독서량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혼자서 유가의 글을 볼 때는 볼 수 없었던 공맹의 역사적 삶의 모습이 선생님의 세세한 설명으로 구체성을 얻어 살아날 때, 나에게는 선생님의 수업이 재미있게 느껴지는 것이다. 공맹에 대한 이해는 그들 삶의 이해로부터 출발하지 않으면 딱딱하고 막막한 사상 놀음에 지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대학생 시절에는 서당을 찾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던 내가 동양 고전에 관심이 있다는 친구나 후배들을 만나면 서당이나 향교를 찾아서 공부할 것을 권장한다. 한문을 배우려면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배워야 가장 빠르고 쉽게 배울 수 있으며 다른 방법은 아직은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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