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유교의 유효기간은 끝났는가?

宋  準  湜
(晉州專門大 敎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전환점이다. 이 현재는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머금고 있다. 과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현재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요, 미래에 대한 관심의 일환이다. 현재를 바로 보고 새로운 미래를 열기 위해 과거를 뒤돌아본다. 우리의 과거에는 자랑스러운 긍정적인 면도 있고 부끄러운 부정적인 면도 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연속선상에서 그 부정적인 면과 긍정적인 면이 혼재한다. 그 부정적인 면을 극복하고 긍정적인 면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것이 새로운 미래를 여는 현재의 과제이다.

  종종 과거는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의 편견과 무지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시대 사상의 주류인 유교, 특히 성리학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이 바로 그러한 경우의 하나가 아닐까 생각된다.

  현재에 있어서 일반인들 사이에서는 성리학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역사는 대체로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한 인식은 물론 국권 상실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그 사회를 지배한 사상이라는 관점에서 생겨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제의 지배를 받으면서 민족적인 자기반성의 한 형태로 대두된 이같은 인식은 비단 일반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민족운동을 하였던 지식인들조차도 이러한 경향을 견지하고 있었다. 한편 일제는 그들의 식민통치를 합리화시키기 위하여 우리의 역사를 되도록 과소평가하여 자주성이 없는 역사임을 증명하고자 하였는데, 그들은 그 증거의 하나로서 조선후기의 당쟁을 부각시켜 그 당쟁의 원인을 유교와 결합된 우리 민족의 선천적 민족성의 하나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주장은 집요하여 그 영향은 심대하게 현재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접하게 되는, 민족을 파멸로 이끈 당파성, 그 실체로서의 당쟁, 당쟁을 불러일으킨 원인 제공자로서의 유교 곧 성리학을 지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유교를 과거의 부정적 유산으로 치부하기에 이른 것이다.

  나아가 해방이후 서양의 근대적 문물을 수용하고 그 수용의 기반을 넓히는 과정 속에서 유교는 근대적 가치를 부정하는 수구적 가치의 맹주로 자리 매김 되었다. 서양적 표준에 따라 별다른 이의 없이 유교적 가치관은 모조리 비판받게 되었다. 이러한 비판의 가운데 있는 것이 요즘 화제를 낳고 있는 책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가 아닌가 싶다. 이 책의 저자는 '한일합방을 부른 무기력한 정부와 위선적 지식인들, 6.25를 부른 우리 문화 속의 분열 본질, 그리고 IMF를 부르고만 자기 기만과 허세, 그것들은 도덕의 가면을 쓴 유교 문화 속의 원질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다.'라고 하여 지금까지의 국란의 원인을 유교에 돌리고 있다. 나아가 그는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남성'을 위한 도덕이었고. '어른'을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고,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다. 때문에 공자의 도덕을 딛고 선 유교 문화는 정치적 기만과 위선, '남성적 우월' '젊음과 창의성의 말살' 그리고 '주검 숭배가 낳은 우울함'으로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이방인의 문화는 조선 왕실의 통치 이데올로기가 되어 우리의 삶 속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것은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신분사회, 토론 부재를 낳은 가부장 의식, 위선을 부추기는 군자의 논리, 끼리끼리의 협잡을 부르는 혈연적 폐쇄성과 그로 인한 분열 본질, 여성 차별을 부른 남성 우월 의식, 스승의 권위 강조로 인한 창의성 말살 교육 따위의 문제점들을 오늘날까지 지속시키고 있다.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들 삶의 공간에 필요한 투명성과 평등, 번득이는 창의력, 맑은 생명들과 너무도 동떨어진 것들이다. 유교의 유효 기간은 이제 끝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유교의 본질에 근거한 주장이 아니라 유교를 피상적으로 인식하여 생긴 편견이거나 유교의 본질에 관한 무지에서 오는 오해라 할 수 있다.

  유교 특히 성리학은 존재일반의 원리를 구명하고 여기에 근거하여 인간 행위를 설명하는 이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존재일반의 원리를 구명하는 측면에서 본다면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측면을 배제할 수 없으나 이에 근거한 인간 행위를 설명하는 측면에서는 실천적인 성향을 가진다. 성리학의 여러 논의의 근원을 따진다면 본체론적 가정에 근거한 형이상학적 사유체계라고 할 수 있지만 결국 이러한 사유체계는 합리적으로 인간 행위의 근거를 설명하려는 가정에 불과하고 결국 최종적인 관심은 이에 근거한 실천적 행위의 체득(體得)과 이의 사회적 실현(社會的 實現)에 있었다.

  이렇게 본다면 성리학의 본질은 인간은 자신의 마음속의 이치를 통찰하여 자신의 존재가 우주의 이치와 일치됨을 자각하고 이에 따르는 수양을 쌓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수양의 공부를 통해 자신의 내부의 인욕을 없애고 本然의 性으로 돌아가면 존재일반의 원리와 합일하게 된다. 이런 경지에 도달한 이상적 인간을 유학에서는 '성인'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성리학의 본질은 인간이 지닌 모든 가능성을 철저한 수양을 통하여 실현하고 완성해서 '성인'의 경지에 이르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밖의 문제는 여기서 파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간은 존재일반의 이치를 체득하고 이를 인간의 당위로서 구현할 때, 안으로는 자기를 완성할 수 있고(內聖), 밖으로는 정치·사회적 본질의 실현(外王)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유교는 인간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과 자아실현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유교는 현재의 우리 사회의 문제인 인간소외와 자기정체성 상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교의 유효기간은 끝난 것이 아니라 미래에도 그 유효기간은 지속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유교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생긴 병폐, 예를 들면 유교문화의 보편주의에 사로잡혀 민족의식에 대한 자각없이 중국중심의 사대주의에 사로잡혔다든지, 가치의 지향이 보수적이어서 역사적 변화에 대한 적응력이 낮다든지, 지배층 중심의 신분윤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본래의 민본정신의 실천을 경시했다는 등의 내용은 유교의 본질에 기인했다기 보기는 어렵다. 이러한 병폐 때문에 유교의 유효기간이 지났다고 하는 것은 빈대 한 마리 잡기 위해 집을 태우는 것과 하등의 다를 것이 없다.

  미래를 위해 현재의 관점에서 유교가 좋다거나 나쁘다라고 규정짖는 것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어떠한 것이 유교의 본령인가를 이해하고, 어떠한 점 때문에 과거에는 의미가 있으며, 어떠한 것이 현재에 의미가 있는가를 파악하며, 어떻게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가를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우리 인간은 역사ㆍ문화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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