寒岡 鄭逑와 武屹九曲

李  奎  鎬
(경산대 한문학과 3년)

  9월초 올해 들어 두 번째로 한강 정구선생의 武屹九曲을 찾아 볼 수 있었다. 2월말 첫 번째 답사를 할 때에는 무흘구곡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던 터라 단지 유람하는 정도에 그쳤으나 이번 두 번째 답사는 미리 한강 선생의 생애와 무흘구곡에 대해 조사해보고 갔기 때문에 더욱 유익하고 남는 것이 많은 답사가 되었다.

  한강선생은 주지하다시피 21세 때 退溪門下에서 수학하였고, 24세 때는 南冥門下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 후에도 두 분 스승에게 왕래하면서 학문적으로는 퇴계의 치밀한 성리학적 학문관을 받아들였고, 정신적으로는 남명의 우뚝한 기상을 받아들여서 실천에 있어서는 특히 義를 중요시하였다. 이 두 스승의 장점을 잘 조화시켜 후에는 자신만의 독특한 경계를 획득하게 되었다.

  九谷歌系 詩歌들이 다 그러하듯이 무흘구곡도 大伽川을 거슬러 오르면서 경치 좋은 곳에 園林을 경영하고 每曲마다 七言絶句를 지어 주자의 무이구곡에 화답하는 형식으로 주위의 자연을 인간의 수양 세계로 이해하며 인간의 본성을 회복하고자 한 것이다.

  무흘구곡은 성주군 수륜면에서 시작하여 김천시 증산면에까지 걸쳐있다. 一曲은 檜淵書院 뒤편에 있는 鳳飛巖으로 깎아지른 절벽 아래로 대가천이 유유히 흐르고 있으며 깨끗한 물이 보는 이의 마음을 정화시켜 주기에 충분하며 선생은 이 곳을 본성회복의 시발점으로 삼았다. 二曲은 寒岡臺로 수륜면 갖말 뒷산 정상에 있으며 정상바위에 후대사람이 한강대라 크게 새겨 놓았고, 그 아래를 내려다보면 탁트인 전경이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씻어주는 듯하며 아래로 굽이쳐 흐르는 내는 신비스럽게 느껴진다. 三曲은 舞鶴亭으로 성주군 금수면 무학동에 있으며 바위의 형상이 배와 같아 船巖 혹은 舟巖이라고도 한다. 그 바위 봉우리에 축대가 있어 이를 무학정이라 부른다. 四曲은 立巖으로 금수면 영천리에 있으며 굽이쳐 흐르는 물 옆에 우뚝 솟은 바위가 있는데 이를 선바위(立巖)라고 한다. 五曲은 舍人巖으로 금수면 영천리에 있으며 바위는 수 년전 큰 홍수로 떠내려가 없고 바위의 터만 남아 있다. 이 바위는 捨印巖이라고도 하며 옛날 한 선비가 벼슬을 버리고 이 바위를 사랑하여 집을 짓고 살았기 때문에 이름지어졌다고 한다. 六曲부터 九曲까지는 행정구역상 김천시에 속한다. 六曲은 김천시 증산면 유성리의 玉流洞으로 愁送臺, 百川橋, 雲鶴臺가 있다. 특히 백천교와 무학정 사이의 평탄한 바위에 새겨 놓은 후대 사람들의 글들은 좋은 읽을 거리가 된다. 七曲은 滿月潭으로 증산면 평촌리에 있으며 그곳에서 조금 올라가면 武屹精舍가 있다. 이 건물은 허물어져 없어진 것을 후대에 지금의 자리에 다시 지어놓은 것이다. 八曲은 臥龍巖으로 증산면 평촌리에 있으며 굽이쳐 흐르는 물과 바위들이 秘境을 이루고 있으며 넓다란 바위에 새겨 놓은 와룡암이라는 글씨는 크고 웅장하여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아 몇 번이고 다시 가고픈 마음이 들게 한다. 九曲은 龍湫로 증산면 수도리에 있으며 떨어져 내리는 폭포가 웅장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을 주어 선생이 왜 이곳을 極處로 삼았는지 조금은 느낄 수 있게 한다.

  이상 一曲에서 九曲까지를 대략 기술하였다. 九曲歌系의 詩歌들은 因物起興이나 入道次第로 해석하고 있으며 무흘구곡 또한 그러할 것이나 중요한 것은 그곳을 답사하면서 선생의 자취와 업적을 다시 한 번 음미해 보면서 우리들이 진정으로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일 것이다. 그냥 지나치며 그저 경치가 좋아서 피서지로만 알아 놀고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겠는가? 과연 이곳이 그 옛날 위대한 선생의 유적지라는 것을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이러한 질문을 뭇사람들에게 던져본다. 끝으로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고 동서로 불신의 골이 깊은 昨今의 세태를 생각하니 慶尙左右道의 분별없이 두루 수학하여 잘 조화시킨 선생의 정신이 더욱 위대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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