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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南冥

오 희 정
(경북대 박사과정)

요즘 신문이나 텔레비젼을 보면 노스트라다무스가 1999년을 예언한 바로 그 형국으로 치닫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지만 미로를 헤매듯이 그저 황막할 따름이다. 얼마 전에는 모 재벌이 더 큰 부의 축적을 위해 그림로비를 시도했다고 해서 파문을 일으키더니 이번에는 고위공직자 부부에 의한 수뢰 비리가 또 터졌다. 부부는 닮는다는 말이 있거니와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이들로 해서 한국인인 것이 점점 부끄러워진다. 하루가 빤한 날이 없는 가운데 사는 우리들로서는 '또 역시'라는 냉소를 보낼 뿐이다.

우리 사회는 왜 이렇게 뇌물을 탐하는 것일까. 물건을 만들어 파는 것이 자본주의의 기본이라 하지만 제조회사가 생산공장을 짓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돈으로 땅 장사를 해서 힘들이지 않고 몇십 갑절의 자산을 늘인 것을 경제라고 친다면 사기도 경제가 된다.

마찬가지로 어느 공직자가 관직을 이용해서 돈을 부정하게 받았다면 말할 것도 없이 독직(瀆職)이 된다. 뿐만 아니라 그 아내나 아들이 금전을 받아도 역시 수뢰라는 범죄가 성립된다. 공직사회가 윤리를 망각한다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학교에서 배우고 실무를 통해 익혔을 텐데도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쉴새없이 이런 일이 터지는 것이다.

옛날 우리 사회의 교양은 유학이었다. 유학은 다섯 개의 덕목을 두고 五常이라 하지만 기원전의 <맹자>까지는 仁義禮智 四常만을 두었다고 한다. 여기에 '信'이라는 정직이 포함된 것은 漢代 이후이다. 한대는 경제사회가 보다 광역화되었기 때문에 상행위에 필요한 '信'이라는 모럴을 두었던 것이다.

이런 관념적인 유학의 영향으로 중국관리들은 지극히 비생산적일 수밖에 없었다. 청조말 한 영국 영사가 그 지역의 청국 지방 장관을 초청해서 테니스를 같이 치자고 했다. 그랬더니 청국고관은 하인에게 치게 하자면서 사양하더라는 것이다. 군자가 점잖지 않게 소인배처럼 풀쩍풀쩍 뛰어다닐 수 있느냐면서 유유히 아편을 피우더라는 것이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우리 나라의 관리도 예외는 아니다.

오늘의 문명은 유교사회 때와는 물론 다르다. 산업사회이고 기능사회이기 때문에 사람의 생활이 그만큼 물리적이고 기능적이다. 그래서 항상 문제가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瀆職이 용납될 수 없는 것은 정치가·관리·교육자들의 뇌물 비리는 사회의 활력을 사라지게 하기 때문이다. 공직자들이 관직을 더럽히고 교육자들이 몇 푼돈에 교육을 혼탁시킨다면 국민은 자기가 속해 있는 사회에 대한 소속감을 상실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때에 나에게 가장 선명하게 떠오르는 분이 있다면 남명선생이다. 선비로서 초연하게 사림에 묻혀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나라를 걱정했던 선생의 뜻을 기린다면 지금 우리 나라의 얼마나 많은 병폐를 퇴치할 수 있을 것인가?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신은 선비정신이 아닌가 한다. 그렇다면 선비는 과연 어떤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인가? 현대에 선비가 필요하다면 어떤 요건을 갖추어야 하는가?

옛날 우리 나라에서 양반들을 칭찬할 때 선비라고 흔히 불렀다. 따라서 선비는 신분이 양반이어야 하고 글공부를 했거나 벼슬의 경력이 있는 사람이어야 하고 세속적인 명예를 탐내지 않고 깨끗하게 세상을 마친 사람을 말한다.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깨끗하게 생을 보낸 사람이다. 또 한 가지 덧붙인다면 권력의 횡포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의 신조를 끝까지 지킨 사람도 선비의 귀감이라고 할 수 있다.

선비의 정신을 본받자고 해서 시대적 상황을 무시한 옛 그대로의 선비를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옛 선비에 비추어 우리가 귀감으로 삼아야 할 현대적 선비의 요건을 살피면 다음과 같다.

첫째, 글만 읽는다고 선비가 아니다.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불의를 고발하고 부정에 맞서는 행동을 보여야만 한다. 상소운동이나 의병항쟁이나 향촌의 교화를 위해서나 이런 현실인식이 있어야 한다. 요즘 공직자들이 특히 국민의 입장에서 불의를 고발하고 부정에 맞서는 행동을 보일 태도로 임한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둘째, 양반신분의 출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조가 있어야 한다. 利害에 따라 움직이거나 권세에 빌붙게 되면 선비의 본분도 잃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투철한 신념으로 초연하게 살아야 한다. 오늘날 정치판은 그야말로 자신의 利害에 따라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로 둔갑하는 세상이다. 선비와 같은 지조로 투철한 신념을 펼 수 있는 공직사회의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셋째, 안분의 삶을 누려야 한다. 분수넘은 것을 움켜 쥐려고도 하지 않고 바라보려고 하지도 않는다. 자기에게 주어진 몫을 해내며 충실히 삶을 누리는 것이다. 본분 외의 것은 비록 주어지더라도 사양해야 한다. 이러한 정신만 확고하다면 요즘 일어나고 있는 뇌물비리와 독직이라는 불미한 현상들은 사라질 것이다.

이런 선비는 국가의 원기요 사회발전의 동력이 된다. 오늘날은 너무 공리에 얽매이고 권세에 물들고 물질에 빠져 이런 선비의 기풍이 없어지고 있으니 나라의 원기가 없게 되는 것이 아닐까. 공직자나 백성이나 사람은 同質이다. 탄소가 화학 변화를 일으켜 금강석이 되듯 공인도 스스로 변해야 한다. 혁명적 의식의 변화없이는 부르짖고 있는 제2의 건국도 무엇도 한갖 언어의 수사에 불과하다. 공직자는 오만하지 말아야 하고 국민은 공직자에게 아첨하지 말아야 한다.

좋은 나라란 무수한 民意 위에 서 있는 국가를 말하며 독직을 악으로 여기는 이유는 '열심히 사는 자만이 그 대가를 얻는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선량한 국민의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간다는데 있다. 남명 선생과 같은 선비들의 뜻을 공직자 뿐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들도 가슴에 새긴다면어느 고위관리가 평범한 가정집에서 호젓하게 살고, 아내되는 사람도 있는 듯 없는 듯 눈에 띄지 않게 사는 고마운 풍경이 동화같은 이야기로 남겨지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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