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文明的 現實과 事理

柳 基 龍
(경북대 교수, 국문학)

극도로 발달한 문명적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삶의 시작에서부터 모든 현실에 이르기까지가 그 문명적 산물 속에다 그대로 방출되어진 존재로 보일 뿐이다. 생활 현실에서 얼마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어디서든 쉽게 실감할 수 있는 것들이 그러한 문명적 환경이라 할 수 있다.

가령 언제든지 가까이에서 느껴질 수 있는 것은 바로 거대한 동력의 힘으로 속도감 있게 작동되어 나타난 상품들의 범람이 그러할 뿐 아니라, 생활환경의 어느 곳에서든 전자 매체의 가공할만한 활용양상들도 그러하며, 끝없이 확산되어가는 욕망의 충족을 위한 지식 정보의 교체 또한 그러하리라 본다.

이 때문에 생활 현실에서 만나는 과다한 문명적 위력 속에서는 한 인격체로서의 주체적 사고과정이나 이성적인 작용까지도 거의 마비 당하게 되는 혼란까지도 일으키게 할 때도 있다. 뿐 아니라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폭주해 오는 문명적 현실 속의 인간은 그같은 혼란에 경악할 뿐 아니라 감각적인 착란이나 가치적 불균형에서 고뇌를 실감하게도 된다. 때로는 기존의 생활규범이나 질서에 대해서도 회의감을 느끼게 하여 인간 자신을 스스로 이 집단 속에서의 소외자의 존재로 자인하게 만들기도 하고 있다.

우리 주위에선 그 때문에 한 인격의 주체로서 지녀야 할 신념도, 판단력까지도 잊어버린 채 그같은 환경 속에서 무작정 그 관행에 좆아서 살아가고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특히 그 환경의 유행적 관행 속으로 자신도 휘말려 들면서 그 같은 착각 속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이나, 사이버 문명의 제품들이 작동하는 바람 속에 자신을 매몰시키게 되는 일도 그러하리라 본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이러한 오늘에 이르기까지에는 수많은 인류의 예지자들이 노력해 온 결과의 집적물들이기에 그 사이에는 많은 위인과 선각자들이 헌신해 왔던 값진 노력들이 있었음에도 이에 대한 무관심 내지는 망각증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도 없지 않다. 뿐 아니라, 그들이야말로 고마운 지혜와 피땀어린 노력들을 남겨주고 있는데도 오늘의 우리는 그것을 잊고 있는데서 오는 역기능 또한 적은 것이라곤 할 수 없게 된다.

새로운 지식과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져오는 현실의 우리로서는 현실적 가치 기준의 다원화현상과 함께 무제한으로 확장하는 욕망의 충족을 성취하려다 보면 자연 그같은 망각이나 혼란이 아니면 도피, 거부감, 무신념의 늪 속으로 침몰하고 마는 것도 부득이한 현실이라고 변명하지 못할 일은 아니리라.

그렇다면, 이제 우리의 시야가 보다 원거리를 전망하려 하거나, 자신의 존재 의미와 생활의 철학 같은 낱말은 연상도 못한 채 시간에만 쫒긴다면, 보다 더 큰 혼란 속으로 빠지면서 망각이라는 과오를 범하게 되는 경우도 없지는 않으리라

어제의 사실이 오늘의 삶에서 무의미하다고 단정지우기에는 뭔가의 여지가 있게 된다. 우리는 지금 길이 없는 산길을 걷다가 불각중에 자신의 길을 잃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산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그 당혹감에서 구세주처럼 고마운 건 바로 자신이 걸어왔던 길을 확인하는 일이다. 오늘의 이 당혹감에서도 그것은 과거의 흔적이요 그 확인이라 할 수 있다.

조선조 이래 개화기로 오면서 우리의 몇몇 선배들에게서 평가를 받아오던 격물치지(格物致知)란 말이 다시 떠오른다. 물론 이 말은 명나라의 왕양명(王陽明)에게서 그 의미를 한층 빛나게 했던 사실임은 양지(良知)에서부터 그 진리를 격상시켰던 것이라고 짐작된다. 양지란 곧 인간이 천생으로부터 타고난 앎이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갖추고 있는 것이여서 모든 사물이나 현실에까지도 그 깊은 이치를 궁리하게 되는 지혜라고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조선조의 시대적 갈등이나 개화기의 혼란 속에서도 이같은 양지에다 그 근거를 두면서 그 현실적 문제들을 극복해 가려 했던 우리의 선각자들도 있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점이 클 것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양지에 의거하여 현실적 사물의 이치를 깊이 있게 성찰하려는 옳은 앎이란 곧바로 행동으로써 완성하게 한다는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경지로 이르기까지에는 시간을 두고서 사리(事理)에 따라서 깊은 사색은 물론이요, 현실적 관찰과 사고 그리고 예리한 분석과 판단 등의 과정이 요구됨은 필수적인 과정인 것이다. 이점은 바로 저 남명(南冥) 선생의 경우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선생은 당시의 양명학자였던 친구분에게 보낸 편지 <답경안령수부서(答慶安令守夫書)>에서도 '오직 공에게 바라고 싶은 것은 이미 그대가 공부하던 곳으로부터 바뀌어짐이 없기를 바란다'고 격려하였다. 이같은 격려는 그 당대의 양명학자가 집착하던 양지의 요체에 따른 궁리를 굳게 당부했던 것으로 새겨볼 수 있다. 뿐 아니라 오늘 우리의 현실이라는 문명적 상황에서의 혼란과 불균형의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리의 교훈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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