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재를 다녀와서


김  영  주
(경북대 학생)

1999년 4월 1일, 제10회 학부 답사의 첫날 숙박지인 덕천서원으로 가기 전 길목에 있는 山天齋를 들렀다 가기로 했다. 일정에도 없던 일이었고 게다가 부슬비마저 내리는 날씨였다. 차에서 내려 도로를 가로질러 그다지 넓지 않은 잔디밭을 지나자, 昌寧 曺氏 청년회 사무소의 앞 마당이 보였다. 사무소 벽에는 청년회 사무소의 현판이 비스듬히 걸려있고, 앞마당에는 몇 살 되어보이지 않는 어린 묘목들과 노목들이 어색하게 뒤섞여 있었다. 게다가 산천재 입구의 문에는 굵은 자물쇠가 채워져 출입을 굳게 막고 있었다. 얼마를 기다리며 서 있자 후배놈 하나가 어디서 열쇠를 얻어와서야 겨우 산천재의 문을 열고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러나 온종일 일정에 쫓겨 피곤한 처지의 후배들에게는 이 뜻밖의 일정이 적쟎이 괴로운 눈치다. 내리는 비를 피하기 위해 삼삼오오 짝을 지어 제비같이 처마밑에 혹은 나무밑에서 비를 피하고 있다. "산천재라 할 때, '山天'의 당호는 『周易』 「大畜」괘의 '강건하고 독실하여 밖으로 빛을 드러내고, 날마다 德을 새롭게 한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 ……." 당호가 어디서 왔건, 南冥이 훌륭하건 어찌됐던, 잠시라도 빨리 이 춥고 비오는 저녁의 음침한 사당 같은 곳을 벗어나 오늘의 숙박지에서 쉬고 싶은데, 대학원생들과 교수님들은 사당의 현판을 보느라 정신이 없고, 남명의 문학이며 사상에 관해 설명만 하고 있다는 표정들이다.

갑자기 학부생 중의 한 녀석이 山天齋 벽에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킥킥댄다. 절간이나 사당에서 처럼 소도 나오고 동자도 나오고 신선도 나오는 그림이 그려져 있는게 우습다고 야단이다. 나머지 학부생도 너나없이 우르르 모여든다. 그리고는 전부 '어랍쇼! 왠 유학자 은거지에 이런 그림이?' 하는 표정들이다. 그제서야 궁금증이 생긴 모양이다. 교수님 중의 한 분이 차분히 남명의 사상이 儒學 일변에만 경도된 것이 아니라 老莊思想에 陽明學에도 연관이 있기에 이런 그림이 그려질 수 있었다고 설명을 하시자 고개들을 끄덕댄다. 그리고는 마루에 올라서서 교수님들을 따라 열심히 그림을 쳐다보더니 또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무엇인가 글씨 같은 것이 있다며 읽으려고 애쓴다. 눈썹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선을 따라 그려가며 읽으려고 애를 써도 희미하게 쓰여진 글씨가 좀체 읽히지 않는다. 답답한지 다시 교수님께 여쭌다. "이것은 '「題德山溪亭柱」라는 제목의 시로 내용은 請看千石鐘, 非大叩無聲, 爭似頭流山, 天鳴猶不鳴으로 남명 자신을 산과 동일시하면서, 부조리한 현실에 함부로 뜻을 굽히지 않는 자신의 '不動'의 강한 기상을 나타낸다 …….' 열심히 귀들을 쫑긋 세우고 듣고 있다. 설명이 끝나자 '아하!' 하는 표정으로 미처 듣지 못한 동기들을 붙들고 설명을 해 주느라 난리다. 어떤 녀석들은 아예 후배들을 이끌고 곁에 서 있는 안내판 쪽으로 이끌고 가서 설명을 하며 포옴을 잰다. 하지만, 그 현판에는 또 한 수의 시가 더 있었다.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또 다시 선배와 교수님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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