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글터

남명학연구원 홈페이지 방문기

백  운  용
(경북대)

淸나라 장유병(張維屛)의 시이다. 봄이 왔는지도 모를 정도로 무딘 나에게도 과연 조물주는 봄을 준비해 두고 있었다. 그러나 봄인가 싶으면 비가 오고, 맑고 따뜻한가 싶으면 추위와 찬바람으로 우뢰 만큼 큰소리 조차 가려버리니 참으로 올 봄은 春來不似春이다. 그러나 봄이 오는 소리는 천둥 처럼 분명해서 아무리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나 보다. 눈오듯 날리는 벚꽃 사이에서, 양지바른 땅에서 고개를 내미는 새싹에게서 봄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힘을 내 뿜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내가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었을 뿐.

이 봄 내게로 온 한 손님이 있으니 "남명원보 제13호"였다. 조그마한 몸짓을 열자마자 거대한 발걸음으로 다가오는, 정다운 이름들이 녹아 있고, 칼바람 같은 정신이 살아 있는 곳. 여전히 원보는 작지만 거대한 무게를 느끼게 한다.

다만 작년 이맘 때 받아 보았던 얼굴이랑 오늘 내게 보여진 모양이 한결같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한결같은 것은 보통 좋은 미덕으로 여긴다. 늘 그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내는 사람, 어려운 시국 아래서도 자신의 자리에서 제 몫을 한결같이 해 내는 사람들. 이처럼 한결같은 무엇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고 기댈 안식처를 제공한다.

그러나 배움을 구하는 이들에게 한결같음은 그 자세만을 요구할 뿐이지, 같은 형식 속에서 반복되는 매너리즘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원보의 내용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똑같은 형식을 반복하는 가운데 변하지 않는 것의 부정적인 면을 지적할 뿐이다. 한결같은 포근함 속에 왠지 늘 그런 것 같은 허전함이 있다. 겨울이 갔는 데도 여전히 봄이 느껴지지 않는 것과 같지 않을까.

막상 펴는 순간. 이것도 기우임을 알았다. 작고 알찬 글들이 빼곡히 들어 앉아 저마다의 입심을 겨루고 있다. 이처럼 남명의 정신을 사랑하고 그것을 실천해 보려는 몸짓, 이것이 원보의 힘일 것이다.

원보의 마지막 장을 접는 순간 새로운 것을 발견했다. 전세계를 하나로 묶는다는 인터넷! 그 속에 남명학연구원이 집을 만들었다는 소식이다. "http://www.nammyung.org" 이것은 연구원의 인터넷 주소이다. 원보 맨 뒷장에 소개되어 있는데 복잡한 설명이라 잘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마침 내가 있는 곳에 LAN이 깔려 있어서 무조건 주소를 입력하고 enter 키를 누르고 기다렸다. 화면이 밝아지면서 남명선생에 대한 소개와 함께 다양한 볼거리가 소개되어 있었다. 공지사항, 연구원 소식, 회원 게시판, 사적지 안내, 연원가 탐구, 남명원보, 남명학연구논총, 기타 자료, E-Mail이 그것이다.

그럼 이제 여기저기 들어가 볼까. 공지사항란에는 남명학연구논총 논문 접수에 관한 사항과 회원가입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다음은 연구원 소식. 여기에는 13호 원보에 소개된 연구원 소식이 그대로 나와 있다. 그리고 회원 게시판. 여기는 방문하는 사람들이 방명록을 쓰거나 운영자에게 요구사항을 전하는 곳이다. 또 자신의 자료를 올려놓기도 한다. 쉽게 말해 메모를 남기는 곳이다. 김윤수님이 유일한 방문자로 나와 있었으며 명경대란 시를 올려 놓아 남명에 대한 참고가 되었다.

다음 코스는 사적지 안내. 산청 덕산에 덕천서원, 세심정, 산천재, 여재실, 묘소, 덕문정 등이 있다고 하고 덕산에 대해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또 김해에는 산해정이 있다고 하고 합천에는 뇌룡정, 생가터가 있다고 하고서 김해와 합천에 대해서만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덕천서원이나 뇌룡정 등 다른 곳에 대한 안내가 없어 아쉬웠다. 연원가 탐구라는 곳에는 덕천사우연원록에 근거한 종유·문인·사숙인에 대한 일목요연한 표가 있어서 남명을 중심으로 한 연원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또 남명원보라는 항목에서는 13호는 물론 지난 호 남명원보를 다시 볼 수 있다. 또한 그것을 복사해 올 수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남명학연구논총이라는 곳에는 남명학연구논총 제1집부터 제5집까지는 목차를 실어 놓았고, 제6집은 내용을 내 컴퓨터로 옮겨 올 수 있게 만들어 놓아 연구논총을 받아보지 못한 사람들도 玉稿를 볼 수 있게 하였다. 기타자료는 아직 아무 것도 올라와 있지 않았다.

이렇게 만드는 데 대단한 노력과 상당한 정성을 쏟았을 것이라 여겨진다. 또한 거대한 인터넷의 세계에 드디어 남명학연구원의 존재를 알렸으니 연구원도 세계 속의 한 부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이기는 하지만 이처럼 의의가 큰 만큼 또한 아쉬움도 컸다. 보다 알찬 홈페이지 만들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에서 몇 마디 제안해 본다.

먼저 남명학연구원의 홈페이지이기 때문에 당연히 연구 자료가 우선 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연구원 홈페이지는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 그런데 남명 연구의 기본자료라 할 수 있는 남명집이나 유적과 관련된 자료, 사진 등은 없거나 자세하지 않아 남명에 대한 밀도 있는 이해에는 부족하였다. 이러한 점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찾아오는 사람들이 적었다. 개설한 지 한 달이 지난 상황에서 방문자 수가 몇 백 명밖에 되지 않는 것은 한 번 왔던 사람들을 다시 찾아오게 할 다양한 자료를 준비해 두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남명을 소개하는 홈페이지는 많다. 많은 홈페이지 가운데 남명학연구원만이 가지는 특색을 보여 줄 수 있는 것은 결국 그동안 집적된 남명에 대한 연구요, 또 남명에 대한 자료들일 것이다. 남명과 관련된 사적과 자료 등을 보완하고 내실을 기함으로써 남명을 알리고, 다음으로 관련 문헌자료를 하나씩 올려 나간다면 남명학의 중심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관련 싸이트를 연결해 둔다면 남명학연구원 홈페이지는 남명에 관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될 수 있다.

집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아늑한 공간 속에서 편안함을 즐기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찾아오는 손님을 맞는 정성을 보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연구원 홈페이지는 이런 점에 소홀한 것 같다.

조그마한 글씨가 한 공간에 너무 많이 모여 있어서 우선 눈에 부담을 주며, 어두운 배경색을 사용하여 칙칙한 느낌을 준다. 깔끔한 편집은 집을 꾸미는 기본이다. 이런 점에도 신경을 써서 남명에 관심이 많거나 또 알려고 하는 사람들을 친근하게 맞이한다면 지금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이용할 것이다.

찾는 이가 드문 또 다른 이유는 아마 홈페이지에 대한 홍보 부족인 듯하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알리고 또 필요하다면 인터넷에 대한 교육을 연구원 차원에서 실시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세계는 바야흐로 지구촌이라는 이름 아래에 하나로 묶여가고 있다.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이 인터넷이며 우리의 현실은 이를 무시하고 살 수 없는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남명학도 한국이라는 지구촌의 한 부분에서 수행되는 작업이 아니라 이젠 전세계인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왕 시작한 것이니 남명학연구원이 그 중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원보를 읽는 사람 모두와 남명에 애착이 있는 모든 사람들이 조금씩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준다면 세계 속의 남명학도 요원한 일이 아니다.

이 봄, 천둥소리를 들으러 가기 위해 사월 중 하루는 비워 두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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