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千石鐘 有感"

朴  丙  鍊
(韓國精神文化硏究院
韓國學大學院 敎授)

현대사회는 객관적 지식체계의 습득이 중요시되는 지식교육을 기반으로 지탱하는 사회이다. 그리고 우리 학계나 사회에서도 현대 선진국에서 논의되는 제반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하고 소리 높이는 峻論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현대 학문이 도입된 지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앵무새"는 양산되었는지 모르지만 千길의 절벽 위에서 자기 소리로 우는 붕새나 봉황새는 볼 수가 없었다. 그 결과 우리는 우리의 문제를 직시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생명력과 적실성을 갖는 문제 해결의 學的 體系를 정립하지 못하고 서구적 지성의 목소리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면서 스스로 그 울음소리를 닮으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니 여러 가지 개인적 사회적 차원의 반성적인 질문들이 머리를 스친다.

정치나 사회개혁에 있어서 제도와 법률적 측면의 접근이 유용한 수단의 하나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제도의 개혁이 가진 자들의 편의를 위해 형식화 될 때, 스스로의 이해관계를 조직적으로 표출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저 권세 부리는 사람들의 들러리 격인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 측면은 없는가?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힘없는 사람들의 고통을 "민주"라는 이름의 포장지로 위장하고 있는 한국적 현실은 아닌가? IMF라는 미증유의 경제적 난국을 초래한 것도 소위 우리 사회의 잘난 사람들이 저질러 놓은 사기와 협잡의 결과는 아닌가? 제도와 절차도 중요하지만 모든 문제의 근원적 歸結處는 결국 인간의 행태와 태도의 변화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이것은 정치·사회적 히러아키(階梯)에서 상층을 점한 엘리트(?)들의 내적 결단을 통한 성숙함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필요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웅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리고 그럴듯한 이론과 지식을 팔아 권세에 아부하거나 현실에서 동떨어진 현학적 논리로 국민을 기만하는데 종사함으로써 거짓에 기초하는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 이 땅의 소위 지성인들이 하는 일은 아닌가?

여기에서 南冥 老先生을 생각하면 自愧感이 가슴을 친다. 이 모든 정치·사회적 현상이 어찌 다른 사람들만의 탓이기야 하겠는가 ……天王峰처럼 높은 이상과 千石鐘처럼 웅대한 경륜을 품고서 세상의 혼탁한 물결에 대항하여 千의 절벽처럼 우뚝 섰던 그 기상을 담아 내는 "體驗的 理解"에는 도달하지도 못하고 때와 장소의 헤아림도 없이 피상적 지식을 읊어대면서 學者然하는 그런 위치에 安住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남명선생은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시면서 "千石鐘"을 생각하셨다(請看千石鐘). 천석종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료와 공력이 투입되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며, 또한 그 천석종이 완성되어도 조그마한 북채로는 제대로의 소리를 내게 할 수도 없다. 쉽게 만들어진 조그만 종들 이 종알거리는 소리들은 사람들의 귀만 아프게 하는 난삽한 잡음일 경우가 많지만, 천석종이 한 번 울면 그 울음은 산 넘고 강을 건너 깊은 계곡 어두운 곳까지 미친다.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고 포근하게 보듬어 주며, 착하고 正大한 마음을 일깨운다.

남명선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나 쳐도 소리내고 싶어 안달하는 조그만 종이 되려 하지 않으셨다. 천 년에 한 번 완성될까 말까하는 '千石鐘'과 같은 인격을 다듬기 위해 工程을 세워 노력하시기를 그치지 않은 분이셨다. 그리하여 '한 번의 울음'으로, 沮喪한 선비의 기풍을 붙들어 세우시고 나약하고 게으른 사람들이 누웠던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게 하는 '역사의 천석종'이 되셨던 것이다.

이에 다시 한 번 남명선생을 생각하며 스스로 돌아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인연이 있어 혈통 상의 所蒙한 은혜는 뚜렷한데, 학자의 길에 들어섰음에도 根基가 약하여 학문과 출처에서 만에 하나도 한 곳을 보이지 못하고 있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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