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3

南冥文學의 現場 踏査記(11)

죽연정(2),
고독, 그리고 화해로서의 자연

정 우 락
(경북대 강사)

 

고독은 뛰어난 정신을 가진 사람의 운명이다.

-A. 쇼펜하우어-

 

대학생들 사이에 광범하게 유포되고 있는 이바구들은 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 중 최근 정치현실을 풍자하고 있는 것 둘만 소개하기로 한다. 하나는 천기(天氣)와 관련된 것이다. 즉 '김영삼이 정권을 잡고 있을 때는 비가 0.3mm밖에 오지 않더니, 김대중이 정권을 잡자 비가 대중없이 온다'는 것이 그것이다. 다른 하나는 지역감정에 관한 것이다. 전라도에서 서울로 올라온 세 사람이 지하철 안에서 그들 특유의 사투리로 떠들어댔다. 지하철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얼굴을 찌푸렸는데 그 중 경상도 사람이 참지 못하고 그들에게로 다가가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이기다 니끼라 이기가?” 이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한 전라도 사람들이 잠시 당황하고 있다가 눈을 끔뻑이며 그들끼리 말했다. “일본 놈 아이당가?” 경상도 사람이 한 사투리에 받침이 하나도 없어 꼭 일본말 같았기 때문이다. 이 두 이야기는 천기를 제대로 따르려면 과불급이 없는 중용의 도를 취해야 하나 우리의 정치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것과 지역감정에 기반한 경상도 사람의 불편한 심기를 잘 반영하고 있다.

어쨌든 요즈음 천기는 불순하고 망국적 지역감정은 보궐선거다 뭐다 하여 다시 일어나고 있다. 특히 동서간의 골 깊은 감정에 대해서 겉으로는 모두가 '큰일이다', '없어져야 한다'면서도 자기에게 유리하다 싶으면 오히려 이용하고 나아가 조장한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같은 복잡한 정치현실은 스승이 살았던 16세기라고 하여 예외는 아니었다. 가뭄이 끝없이 지속되다가 이어서 장마가 계속되고 그로 인해 다시 전염병이 떠돌아 마을의 열 집 중 아홉 집이 비는 그런 사태가 발생했다. 사정이 이같은 데도 불구하고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은 가렴주구에 여념이 없거나 무사안일에 빠져 있었으므로, 스승은 당대의 현실을 '백 년 된 큰 나무의 속은 벌레가 다 파먹고 진액도 다 말랐는데 망연히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또 언제 닥쳐올지를 알지 못하는' 사태라며 일갈하였다. 스승은 이같은 부조리한 현실에 출사를 거부하며 강호자연속에서의 처사적 삶을 전개하였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자연 속에서 깨끗한 지조를 지켜갔던 것이다. 그러나 스승은 현실적 부조리를 좌시할 수가 없었다. 이같은 대립적 의식구도 속에서 그의 삶은 한(恨)과 결부되면서 더욱 고독해져 갔다. 특히 고령 도진에 있는 제자 박윤(朴潤, 1517-1572)의 정자인 죽연정에서 이같은 고민을 강하게 토로하였다.「죽연정에서 진사 윤규의 운을 따서(竹淵亭次尹進士奎韻)」가 그것이다.

위의 두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주요 글감은 강(江)과 한이다. 문학에서 강의 상징적 의미는 자연의 창조와 시간의 흐름이다. 전자를 염두에 두면 비옥성, 토양의 경작에 필요한 물을 의미하며 후자를 염두에 두면 되돌아 갈 수 없는 시간의 경과, 곧 상실과 망각을 의미한다. 강이 흐르면서 비옥한 자연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며, 한 번 흘러가면 다시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스승은 강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한과 결부시키고 있으니 후자의 상징적 의미에 보다 밀착되어 있다. 앞의 작품에서는 강줄기 자체를 한으로 보았다. 그 많은 한이 거문고를 두드린다고 하여 풀릴 일은 아니었다. 뒤의 작품에서도 고령 우곡면에 있는 우저의 물과 한을 결부시키고 있다. 봄바람 속이라 하여 그 한이 풀릴 것 같지 않았다. 처사적 삶을 영위했던 스승은 여기서 고독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들 안개 속의 알 수 없는 마음', '가을물이 되어 돌아 가는 마음'은 모두 스승의 고독한 마음을 형상화 한 것이다. 스승이 서리를 맞으며 자는 모랫벌의 갈매기같이 고독하였으나 거기에 함몰되지 않았다. 고독으로 자신을 더욱 견고하게 담금질하여 나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고독 속에서 스승은 발견한 것이 있었다. 대나무의 불변성 바로 그것이다. 다음 작품을 그 예로 보자.

위의 두 작품도 죽연정에서 지은 것으로 현재 고령의 죽연정에  게판(揭板)되어 있다. 먼저 죽연 박윤의 풍류가 영남에서도 손꼽힌다면서 칭찬하였다. 죽연의 풍류를 진(晋)나라 시대의 귀족인 왕씨와 사씨의 풍류에 비겼던 것이다. 풍류라면 흔히 술·노래·춤 등의 관능적 향락을 의미하나 스승은 대나무의 변치 않는 절개와 결부시키고 있어 흥미롭다. 여기서 우리는 스승의 '들 안개 속의 마음'이나 '가을물 같은 마음', 즉  고독한 마음이 이 대나무처럼 견고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리저리 변하지 않는  온전한 덕을 지닌 대나무 말이다. 앞의 작품에서 죽연이 대나무를 특히 사랑하여 이로써 정자의 이름을 지었다며 칭찬한 것이나, 뒤의 작품에서 초당(草堂)에 높이 스치는 푸른 대나무를 제시한 것을 보면 스승은 죽연의 고독 역시 자신의 것과 닮아 대나무같이 견고한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스승의 고독은 물 뿌리고 쓸며 응대한다는 소위 쇄소응대지절(灑掃應對之節)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었다. 이는 스승의 고독이 절대화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또한 현실적 삶에로 고독이 열려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의 작품 2행에서 죽연의 훌륭한 아들을 내세우고, 뒤의 작품 3행과 4행에서 우애 있는 형제, 그리고 혼정신성(昏定晨省)으로 어버이를 잘 모시는 화목한 집안 풍경을 그린 것에서 사정의 이러함은 간취된다. 그러니까 고독만이 외부의 횡포로부터 자신을 가장 잘 보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예찬하지 않았고, 고독한 만큼 자신을 자신답게 한다고 강변하지도 않았다. 이처럼 스승의 고독은 생활 속에서 아름다운 것이며 죽연같은 제자와의 따뜻한 정의(情意) 속에서 그 빛을 발산하였던 것이다. 여기서 나아가 다음과 같이 자연과의 화해를 통해 스승 자신의 고독을 풀어나가기도 하였다.

앞의 작품은「죽연정증윤진사규(竹淵亭贈尹進士奎)」이고 뒤의 작품은 「죽연정차문로운 (竹淵亭次文老韻)」 이니 모두 죽연정에서 지은 것이다. 이들 작품에서 보듯이 스승은 자연과의 화해를 통해 자신의 고독을 극복하고 있다. 특히 월오(月塢) 윤규(尹奎, 1500-1560)와 죽연의 반속적 태도에 자연과의 화해를 결부시키면서 이같은 마음을 표출시켰다. 앞의 작품 수련에서 보이는 문로(文老)는 월오의 자이다. 월오는 파평인으로 남긴 문집이 전해지지는 않지만 시적 재능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앞의 작품 수련에서 스승도 증명하고 있거니와 곽수구(郭壽龜)가 지은 「월오윤선생묘갈 (月塢尹先生墓碣)」 에도 특기하고 있는 사실이다. 특히 월오는 천성이 자연을 좋아하고 몸은 관복을 싫어하여 벼슬살이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함련은 이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미련에서는 명리의 마당에서 모든 묵은 빚을 던져 버렸다고 하였다. '관복', '벼슬살이', '명리' 등은 모두 세속적 가치라 할 터인데 이것을 부정하면서 '자연'을 제시하였다. 자연이 세속과의 대척적 거리에 있으면서 고독을 화해시키는 그 무엇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뒤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가야산에서 발원하여 도진 앞을 흐르는 회천(會川)이 다시 낙동강으로 흘러드니 수련과 같이 표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강에서 번뜩이는 은어와 들판에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를 두루 제시하여 그 곳에서 늙어 가는 모습을 결곱게 제시하였다. 특히 미련에서 자연 속에서 세속을 떠나 이익에 깨끗해져 있는 모습을 표출시키고 있어 우리가 앞서 살핀 강과 관련되어 있는 한(恨), 그 속에서 견고해지는 고독을 전혀 느낄 수 없다. 이는 자연과 화해함으로써 스승의 고독이 극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즈음 우리는 고독하다. IMF체제하에서 정리해고 혹은 퇴출을 당하여 소극적으로 거리를 떠돌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농성을 하며 저항하기도 한다. 이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정부에서는 대책을 세운다며 야단이지만 까다로운 조건에다 구제의 범위가 너무 좁아 백성들은 죽음으로부터 유혹 받기도 한다. 그야말로 스승께서 갈파하신 '위로는 만일의 경우에 위태로움을 부지할 수 없고, 아래로는 조그마한 일에도 백성을 비호할 수 없는' 위급한 때가 아닌 그 무엇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절망한다. 그러나 항산(恒産)을 잃어버렸다고 하여 항심(恒心)조차 잃어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항심을 찾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이번 기회에 자신의 고독을 오히려 견고히 하여 저 심연(心淵)으로부터 응결되는 힘을 감지하는 것도 자못 의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스승이 자연과의 화해를 통해 고독을 극복하였듯이 자기 나름의 원리로 고독을 극복해 나갈 일이다.

 

  필자주: 1695년(숙종21)년 박윤과 윤규를 비롯하여 박택(朴澤), 박정번(朴廷), 최여설(崔汝楔) 등 오현을 향사하였던 문연서원(文淵書院)이 고령군 우곡면 월보동에 건립되었으나 1868년(고종5)에 훼철되었다. 죽연정 가는 길과 박윤에 대해서는 지난 호(『남명원보』 제10호)를 참고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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