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2

연구위원 세미나 보고

史  載  明
(경상대 강사)

 

행사일정

7월 2일(목)
12:00 : 도착, 점심식사 및 휴식
15:30 : 초청강연회
        1주제: 퇴계학연구원의 과거·현재·미래
              安炳周(퇴계학연구원장)
        2주제: 四色黨爭의 초기상황
             金鎬吉(북원연구소장)
18:00 : 저녁식사 및 휴식

7월 3일(금)
∼09:00 : 아침식사 및 휴식
09:00∼ : 남명학 발전을 위한 자유토론
12:00   : 점심식사
14:00   : 덕산 일대 남명선생 사적지 답사
18:00   : 저녁식사 및 휴식

7월 4일(토)
∼09:00 : 아침식사
09:00∼ : 지리산 일대 관광
16:00   : 폐회

 

7월 2일(목) 첫째 날 :

초청강연회 ① : 퇴계학연구원 안병주 원장의 「퇴계학연구원의 과거·현재·미래」라는 주제발표가 있었다.

먼저, 자신의 청·장년기의 학문적 배경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김태준의 『조선한문학사』를 통해서 사회사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선친으로부터 사서(四書)를 수학하였으며, 시경, 서경, 주역을 습득하기도 하였다. 성균관대 동양철학부, 일본의 京都 등에서 공부하기도 하였다. 일본에 1년간 체재하였을 때에 퇴계학연구원  이 일본에 들어오게 되자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학문적 측면은 당시 자신의 관점에서 진보주의적 사상을 선호하였기 때문에 퇴계학이 전부라고 생각할 정도로 퇴계학에 침잠하게 되었다. 퇴계는 관직을 좋아하지 않았고, 출세지향적 학문보다는 성리학적 학문의 방향으로 바꾼 인물이 바로 퇴계라고 하였다. 학문의 목적은 벼슬이 아니라고 하였다. 율곡은 개혁, 퇴계는 주체의 자격, 남명은 산림유라고 평할 수 있다.

그는 「사단법인 국제 퇴계학회 소개」, 「사단법인 퇴계학연구원 소개」, 그리고 「퇴계학연구의 회고와 전망(국내)」 등의 자료를 제시하기도 하였다.(구체적인 내용은 수록하지 않음) 남명학연구원과 퇴계학연구원은 향후 학문적 교류를 통해 서로의 서로의 장단점을 보완하자고 하였다. 최근, 서울대 이순형 교수의 원고로 말미암아 발생한 문제에 대해 책임의 일부를 인정하면서, 퇴계학연구원에서 간행한 책자의 내용 중에서 잘못된 부분의 수정과 이 내용을 담은 책자의 배포금지를 약속하였다.

토론에서는 김충렬 원장이 경상좌우도의 화합분위기 및 상호보완의 역할을 강조하는 변(辯)이 있었다.

초청강연회 ② : 북원연구소 김호길 소장의 「四色黨爭의 초기상황」이라는 주제발표가 있었는데, 그 요지는 당쟁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성암(省菴) 김효원(金孝元, 字 仁伯, 1542∼1590)은 사색(四色)의 어느 계열에서도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사색당쟁을 남, 노, 소의 3색전이라고 용어를 정의하기도 하였으며, 당쟁을 현대 용어로 정쟁(政爭)이라고 표현하였다. 인간의 성선설, 성악설도 당쟁과 관련된다고 하면서 4대 사화도 당쟁과 관련하여 강연하였으며, 그는 『연려실기술』, 『석담일기』, 『화담록』 에 근거하여 35가지 유래를 조사하여 시간상 그 일부만을 발표하였다.

토론에서는 당쟁의 정의 문제에 대한 여러 참가자들의 반론 및 변론이 있었는데, 박병련 교수는 經學的 構造, 政治思想的 側面에서의 復權問題, 省菴의 단초, 實學的 思想有無, 그리고 四色, 黨爭, 初期狀況設定 (用語規定)에 관한 질의를 하였다. 안병주 원장은 胥吏亡國論과 관련지어 의견을 개진하였다. 설석규 교수는 당파의 개인감정싸움의 성격 및 정책대결과 南冥의 現實認識에 관련하여 논의하였다. 그리고 기타 여러 가지 논의가 장시간에 걸쳐 진행되었다.

7월 3일(금) 둘째 날

오전에 남명학 발전을 위한 자유토론에서 연구원 사무국에서 김경수 국장의 보고 및 제안사항이 있었다.

① 향후 연구원 발전을 위한 출판부의 활성화에 대한 제언 : 참석자 모두 적극적으로 동의하였다.
② 출판부와 관련하여, 운영위원회에서 결의한 새로운 남명선생 문인자료집에 대해 설명이 있었다. : 책의 제목은 『신증 덕천사우연원록-문인편-』으로 하기로 하였으며, 차후에 계속적으로 수정, 보완하기로 하였다.
③ 남명학파와 관련된 도서의 연구원출판부 명의의 출판 경우 : 발행위원회를 구성하여 의결하기로 하였다.
④ 이순형 교수의 원고 문제에 관한 권인호 교수의 해명서를 『신동아』 7월호에 게제하기로 하였으나 무산된 이유 : 신동아측의 일방적 파기.
⑤ 7월 4일 답사코스에 대한 논의 : 주최측에서 결정하도록 위임하였다.

자유토론에서 김경수 국장이 『신증 덕천사우연원록』의 해제, 목차, 내용, 별록, 부록 및 문인록에서 삭제해야 인물, 그리고 문인록에 첨가해야 할 인물에 대해 언급하였고, 후손현황, 문인록의 누락자 근거, 문인록의 게제 순서 등을 설명하였다.

김충렬 원장은 향후 기축옥사와 관련된 인물들에 대한 정학한 자료의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하였으며, 연구논총 편집위원회 구성의 필요성 및 도서 판매의 필요성을 언급하였다. 박병련 교수는 남명선생 문인의 계열별 사숙인물자료 모음을 수록하여 기록할 것을 건의하였다. 오이환 교수는 '남명학연구원 부속 남명출판부'의 명칭 변경을 제의하였다.

남명학발전을 위한 논의에서 권순찬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연구분야에 대한 실적의 꾸준한 증가를 위한 지원, 남명선생의 문인록 등을 통한 연원가의 확보, 남명선생 사적지 성역화사업에 대한 설명, 남명원보의 발간에 대한 연원가의 협력사항 등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자유토론에서 오이환 교수는 연구원의 사업 중에서 연구위원 확대에 따른 연구실적물의 증가에 대해 언급하면서, 연구논총을 1년에 2회 발행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토의결과 영인자료를 별책으로 간행하기로 하면서, 연구논문의 편수를 늘이자는 방향으로 결정하였다.

조회환 교수는 중·고등학생 및 일반인을 위한 남명선생 전기자료의 발행을 제안하였다.

권인호 교수는 2001년에 남명선생 탄신 500주년을 맞이하게 되고 기념행사를 제안하여, 이를 위한 준비 기구를 구성하기로 결정하였다.

정우락 교수는 소규모의 학술발표회를 통해 연구의 내실을 기할 것을 제안하였으며(예: 대강의실, 서원 활용 등을 통해 2∼3개월에 1회씩), 그에 따른 구체적인 기획 예를 들면, 문인, 사숙인 및 특정 주제연구 등을 언급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김충렬 원장은 예산책정에 따라 학술회의를 지역별로 개최할 것에 대해 제안하였다.(예: 대학시설 이용) 문인에 대한 주제발표를 통해 연구원 중심의 결속력 강화, 이에 따른 각 연원가측의 지원에 대한 제안을 하였고, 현대의 살아있는 연구를 기대해야 할 것이라고 하였다.

덕산 일원 남명선생 사적지 답사는 덕천서원을 출발하여 산천재, 신도비, 여재실, 묘소, 그리고 세심정 등에 대한 유래 및 역사적 상황에 대해서 오이환 교수의 설명으로 이루어 졌다.

나머지 시간에는 세심정에 모여 방담(放談)를 나누었다.

7월 4일(토) 마지막 날은 아침식사 후 지리산 일대 문화유적지 등을 답사한 후 폐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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