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恭敬과 阿附

金  時  晃
(慶北大 敎授)

恭敬은 어른에게 恭遜하며 삼가 禮를 표시하는 것이다. 祖父母나 父母 및 나이 많은 어른을 높이 받들고 위하며, 스스로 謙遜하여 자신을 낮추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형이나 윗사람 또는 어진 이를 공경하는 우리 나라에서 오래 오래 지켜 온 禮法이었다.

특히 敬은 우리 儒學에 있어서 學問과 生活 전반에 걸쳐, 가장 근본 되는 정신으로, 잠시라도 없어서는 안 되며, 우리 인간 생활과 떠날 수 없는 것으로 여겨 왔던 것이다. 敬을 바탕으로 하지 아니한 禮는 成立될 수도 없고, 存在할 수도 없는 것이다.

禮와 敬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天性에 바탕을 둔 것이다. 천성은 本性이라고도 하며, 원래 착한 것으로 認識되어 왔었다. 인간 정신의 올바른 자세로서, 義와 함께 오랜 세월 동안 聖賢 君子들에 의해, 끊임없는 生命力을 유지해 왔다.

阿附는 남의 歡心을 사거나 잘 보이기 위하여 비위를 맞추고 알랑거리는 것이다. 阿諂이라고도 하며,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을 '아양을 떤다' '아양을 부린다'고 한다. 이러한 말이나 행동에 대하여 善良한 사람들은 모두 비웃고, 아니꼽게 생각하며 싫어한다. 이와 같이 아니꼽게 생각하고 싫어하는 사람들은 大人 君子이거나, 아니면 적어도 正常的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다.

그러나 이것을 좋아하는 사람들 또한 없는 것이 아니다. 힘있는 사람으로 權力을 행사하려는 사람들은 이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남들이 다른 사람에게 아부하는 것은 역시 아니꼽게 여기겠지만, 남들이 자기에게 아부하는 것은 當然한 것으로 생각하며 좋아한다. 이러한 사람들을 小人輩라 하여, 천히 여기고 하찮게 생각한다.

나라가 망하고 사회가 어지러워짐에 따라, 禮와 敬은 점점 사라지고, 物理的인 힘만이 살아 남게 되었다. 禮敬의 정신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힘없는 존재가 되어, 세상에서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 보아도 빛을 보기 힘들었다.

반면, 힘이 있는 곳에는 阿附하는 사람이 몰리게 되어 있다. 보잘 것 없는 得이지만 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非正常的인 사회에서 權力과 富와 名譽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阿附가 必須 不可缺한 것이다.

代讀이란 것이 있다. 옛날 임금이 敎旨를 직접 전하지 못하고, 臣下를 시켜서 전하게 함으로써, 그 교지를 임금 대신 읽게 된 것이다. 上官이 부득이 행사에 참석하지 못하면, 어떤 필요한 글을 아래에서 代讀해야 할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전혀 그러한 경우가 아니고, 읽어야 할 사람이 엄연히 그 자리에 있는 데도, 아래에서 대신 읽어 주고 있는 것을 너무나 자주 대할 수 있다.

卒業狀, 賞狀, 表彰狀 등 각 기관에서 해당자에게 주는 문서는 대단히 다양하다. 이것은 주는 사람이 機關長이므로 기관장이 직접 읽고, 본인에게 주어야 한다. 그런데 司會者가 대신 읽어 주는 惡習이 언제부터인가 시작되어, 이젠 거의 常例化 되었다. 주는 사람인 기관장은 원본을 들고 우두커니 서 있고, 사회자는 副本을 가지고 읽는다.

주는 사람은 지나친 驕慢이고, 사회자는 阿附의 極致이다. 日帝의 軍國主義의 所産이란 說도 있고, 獨裁者의 權威主義나 軍事文化의 殘滓라는 견해도 있다. 이러한 것을 은근히 조장하는 높은 사람도 없어져야 하겠지만, 고칠 생각을 전혀 않는 小人輩가 빨리 사라져야 할 것이다.

酬酌(酬酢)이란 술을 勸하는 것이다. 이희승 편 『국어대사전』, 홍웅선·김민수 편 『새사전』 등에 酬酌을 '술잔을 주고 받음' 이라 풀이한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된다. 酬의 뜻은 勸한다는 것이지, 자기가 먹던 술잔을 남과 주고 받는다는 것이 아니다. 수작 '酬酌·酬酢'의 뜻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두 사람 이상이 술을 먹을 때는 사람마다 각자 자기의 술잔을 가지고 마시는 것이다. 주인이 손의 술잔에 술을 따루어 주고 勸하면서 같이 마신다. 마시고 나면 또 주인이 손의 술잔에 술을 따루어 勸하게 된다. 주인과 손이 서로 勸하는 것이 酬酌이다. 자기가 먹던 술잔을 상대에게 주고 거기에 술을 따루어 주는 것이 아니다. 술을 따르는 사람은 아래거나 酌婦일 경우도 있다. 술잔이 비면 따루어 준다. 添酌도 한다. 첨작은 祭祀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酬酌의 경우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술잔을 주고받는 風習이 언제 어디서 왔는가를 알기 어렵다. 中國人이나 日本人과 이야기를 해 보면 그들은 절대로 자기 나라의 風習이 아니라고 한다. 韓國의 좋지 못한 酒法으로 생각하고 있다. 요즘은 물론 그들도 한국인과 같이 술을 마실 때는 술잔을 주고 받는 행동을 즐겨 하는 이들도 가끔 볼 수 있는데, 이러한 酒法은 韓國人에게서 배운 것이라고 한다.

어떤 이는 임금의 下賜酒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기도 한다. 임금이 臣下에게 술을 下賜하는 경우는 술과 술잔을 내려 주는 것이지, 임금이 먹던 술잔을 신하에게 건네주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慶州 鮑石亭의 떠도는 술잔의 例를 드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鮑石亭의 술잔은 먹던 잔이 아니고, 술을 뜨는 쪽박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술을 뜨는 표주박이 떠 돌 때, 표주박이 자기 앞에 오면 술을 떠서 상대방의 술잔에 따루어 주는 것이다.

勸酒는 상대에게 술을 마시기를 권하는 것이며, 자기도 술잔을 들면서 상대에게 권하기도 하는 것이다. 자기가 먹던 술잔을 재빨리 비우고 상대에게 주면서 술을 따루어 주는 것은 정과 사랑의 표시라기 보다는 힘있는 윗사람에게 阿附하는 마음이 더 강하다 할 수 있다.

힘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아래 술잔 받기를 좋아하는 것 같다. 진작 술잔을 바치지 않으면 윗사람에 대한 不敬으로 여겨, 괘씸하게 생각하는 이도 많다. 그러므로 아래 사람된 이는 재빨리 자기 술잔을 비우고 높은 이에게 잔을 바친다. 그래서 自慢과 阿附가 자연스럽게, 아니 당연하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祭祀지낸 뒤 飮福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初獻官을 비롯한 각 獻官들의 술잔을 앞앞이 가져다 놓고 술을 부어 드리는 것이지, 술잔 한 개를 가지고 돌려 가면서, 한 사람이 마신 뒤에 그 잔에 술을 따루어 주어 마시도록 하는 것은 아니다. 巡杯란 말도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사전에는 '술잔을 돌림'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巡杯는 酒巡 곧 술이 두루 도는 것이지, 술잔이 도는 것은 아니다. 巡의 뜻은 , 廻이며, 순행할 순, 돌며살필 순, 두루 순으로 되어 있다.

님이란 사람의 일컬음 밑에 붙여 높임을 나타내는 말이다. 원래는 사모하는 사람을 일컬었으며, 옛 말은 임이었다. 지금은 부모님, 선생님, 따님, 손님 등으로 쓰이고, 또 하느님, 달님, 해님과 같이 어떤 대상을 人格化 하여 높이거나 다정스럽게 일컬을 때도 붙여 쓴다. 西歐語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임은 없어지고, 님만 쓰이고 있다. 남을 높이거나 다정스럽게 부르는 것은 당연하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 높임에 절도가 없거나, 아무렇게나 쓰면 좋지 않다.

우리 말의 높임에는 '께' '께서'가 쓰인다. '공자께서' '세종대왕께서' '퇴계선생께서' '할아버지께서' 하는 것은 옳지만, '공자님이' '세종대왕님이' '임금님이' '할아버님이' '교수님이' '교수님 사모님이' '주부님이' '주부님들의 이색적인 모임' '아우님이' 하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더구나 '과장님방' '교장 선생님들의 모임' '기사님 식당'은 어색하다. '과장방(과장실)' '교장 모임(교장회)' '기사 식당' 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다. 사실인지 確認할 길은 없지만, 학생이 敎授에게 '선생님'이라 했다가 '내가 어디 中高等學校 선생이냐' 하며 叱咤를 당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

님이란 높임말이 아무렇게나 마구잡이로 쓰이는 原因을 살펴보면, 높임에 대한 우리말의 敎育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 비판 없이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習慣에 젖어 있다는 것, 남을 높인다는 認識보다는 오랫동안 있어 왔던 外勢와 權力者의 힘에 대한 아부 심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 등으로 분석할 수 있다.

'저의 나라' '저희 나라 문화' '저희 국산품' '저의 시' '저의 학교' 라는 말들을 最高 知性人들이 서슴없이 쓰고 있다. 우리 나라와 온 나라 사람들, 全 市民, 모든 敎師와 敎職員을 싸잡아 낮추어 버린 것이다. 힘있는 권력자 앞에 아부하던 습관이 아니라고 우길 수 있겠는가.

'애기곰' '애기 사슴' '우랑우탕 탄생' '아름다운 나비가 탄생' '위대한 작품이 탄생되었다' '살의가 탄생' '에이즈 아기 탄생 논란', 이러한 말들도 텔레비젼 방송이나 신문에서 자주 듣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방송인이나 신문 기자는 지식인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

'버스 기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더라' '야구 감독님들이 화를 내시더라' '사장님의 말씀이 계시겠습니다' '너 선생님 말이 안 들려' '저희 아버님께서' '정부의 각별하신 배려와' '커피를 마시는 분이 많으시더군요' 하는 말들도 마찬가지로 어디에서나 듣고 볼 수 있다.

지나친 공손은 예가 아니다(過恭非禮). 높여야 할 곳에 높이고, 낮추어야 할 곳에는 낮추어야 한다. 높여야 할 곳에 높이지 않으면 상대를 무시하는 것이니 非禮이고, 낮추어야 할 곳에 낮추지 않으면 상대를 侮辱하는 것이 된다. 恭敬과 阿附는 마음의 자세에 달려 있다. 공경할 대상에게는 반드시 공경해야 할 것이고, 자신의 행동이 아부인지 아닌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 明確히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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