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3

南冥文學의 現場 踏査記(9)

화림동 계곡(2),
개인 하늘 맑은 물에 인간사 다 떨치고

정  우  락
(경북대 강사)

스승은 66세 되던 봄에 안의 3동을 방문하였다. 안의 3동, 즉 화림동, 심진동, 원학동은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에 의해 칭송받아 왔으며 이곳을 탐방하고 남긴 기행문도 여럿 남아있다. 김수민(金壽民)의 「삼동유산기(三洞遊山記)」『明隱集』, 이동항(李東沆)의 「삼동산수기(三洞山水記)」『遲庵集』, 송심명(宋心明)의 「삼동기(三洞記)」『病窩集』, 최유윤(崔惟允)의 「삼동기(三洞記)」『夢關集』, 김기요(金基堯)의 「삼동기행(三洞記行)」『小塘集』은 그 대표적이다. 송심명은 화림동에 있는 월연암만을 유람하고 「월연암동유기(月淵岩同遊記)」를 남기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스승보다 후대의 인물들이지만 이로써 우리는 고인들의 3동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스승은 현 거창군 북상면 갈계리(일명 치내)에 있는 '갈계정사(葛溪精舍)'에 들렀다가 갈천(葛川) 임훈(林薰)과 함께 3동을 유람한다. 화림동의 산수를 더욱 사랑하여 세 마리의 시를 남기기도 하였다. 5언절구는 갈천의 차운시와 함께 남아 있는데 이는 지난 호에 이미 살펴본 바다. 여기서는 당시에 지은 「유안음옥산동(遊安陰玉山洞)」이라 이름 붙인 7언절구 두 마리를 중심으로 감상해 보자.

앞의 작품은 '세사(世事)'와 '산수(山水)'를 대비시키며 자연을 통한 낙도(樂道)의 세계를 노래한 것이다. 부정한 것은 '세사'이고 지향한 것은 '산수'이다. 1구에서 먼저 스승이 추구하는 세계를 노출시켰다. '산수'가 그것이다. 산은 '峰'으로 수는 역시 '水'로 표현하였다. 2구에서는 1구에서 보인 푸른 봉우리와 쪽빛같은 물은 의식적으로 탐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라 하였다. 그렇게 할 때 '다취다장(多取多藏)'의 풍요를 누릴 수 있다고 했다. 3구는 '세사'인 현실을 부정한 것이고, 4구는 '산수'를 통해 1구의 '봉수'와 결부시키면서 도를 즐기려는 마음을 보다 적극적으로 펼친 것이다.

이수광(李勍, 1563-1628)은 스승의 이 작품을 두고 그의 저서 『지봉유설(芝峰類說)』 「문장부(文章部)」에서 '어의갱고(語意更高)'로 평가하고 있다. 말의 뜻이 더욱 높다는 것인데, 스승의 지기였던 대곡(大谷) 성운(成運)이 '사람을 만나면 산의 일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산의 일도 자꾸 말하게 되면 또한 남의 뜻을 거스르게 되느니(逢人不喜談山事 山事談來亦 人)'라고 노래 한 것과 함께 이렇게 평가하였던 것이다. 스승과 대곡은 모두 세사를 의식하면서 산수에 대하여 언급하였다. 그러나 차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즉 스승이 자연 속에서 보다 거리낌 없는 삶의 태도를 보여주었다면, 대곡은 그렇더라도 이같은 삶의 태도로 일관하면 세상사람들의 뜻을 거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였다. 이수광은 바로 이같은 세사와 산수의 문맥 속에서 스승과 대곡문학에 니타난 '어의갱고'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뒤의 작품은 1구의 '무릉'과 4구의 '인세'를 대비시키면서 후자의 세계를 부정하고 전자의 세계를 강조한 것이다. '무릉'을 '삼월 봄바람' 혹은 '개인 하늘 빛'이 있는 '시냇물'과 결부시켜 한 번 놀 수 있는 곳이라 하고, '인세'를 한 번 놀기 어려운 곳이라 하였다. 스승이 놀고자 한 곳은 모두 자연으로 나타나고 있으니 도를 즐기는 것이 모두 자연을 통해 구체화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승이 환갑년에 지리산에 들어가면서 '頭流山 兩端水를 녜듯고 이쌕보니, 桃花 뒈 또은 물에 山影조옴 잠겨셰라. 아희야 武陵이 어넒뚝오 나꾼 옌가 존노라'고 노래한 소위 「두류산가(頭流山歌)」도 모두 자연을 통해 낙도의 세계를 지향하고자 함이었다.

스승의 작품으로 널리 알려진 이 「두류산가」는 제자 이제신(李濟臣)의 작품으로 의심받기도 한다. 여기에 대한 반론 또한 만만치 않으니 이 분야의 보다 진전된 논의를 기대해 본다. 그러나 「두류산가」는 스승이 지은 「유안음옥산동」의 두 번째 작품, 즉 뒤의 작품과 의미상 상통하는 바가 적지 않다. '武陵'-'武陵', '녜듯고 이쌕보니'-'還', '또은 물'-'霽色中流'는 서로 결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창작된 시간적 배경이 복사꽃이 피는 봄날일 뿐만 아니라 그 주제가 자연을 통해 추구되는 낙도정신이라는 것도 유사하다. 이로 보아 지리산 아래의 양당수에서는 국문시가로, 안음의 옥산동(화림동)에서는 7언절구로 자신이 추구한 세계의 일단을 보여준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스승의 세사부정적 사고는 그의 작품 도처에 보인다. 다음 작품은 그 예로 충분하다.

위의 작품은 「제문견사송정(題聞見寺松亭)」이다. 여기에서 스승은 인간사와 관련된 '진사(塵事)'를 부정하면서 자연과 관련된 '풍로(風露)'를 강조하였다. 자신의 낙도정신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1구와 2구가 '구름', '노을', '해' 등을 제시하며 천상의 풍경을 그린 것이라면, 3구와 4구는 '석단', '소나무', '새' 등을 제시하며 지상의 풍경을 그린 것이다. 천상과 지상의 풍경 가운데 탈속한 '두 늙은이'가 있는데 이들을 내세워 스승은 자연과의 합일된 심경을 강하게 표출하고 있다. 1구에서 구름을 소매로 하고 노을을 갓으로 한 두 늙은이라 한데서 사정의 이러함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2구에서는 탈속한 늙은이들의 남은 세월을 제시하였다. 여기에서 우리는 늙음이 가져다주는 허무를 조금도 느낄 수 없다. 자연과 완전한 합일이 이루어져 인간적 허무가 개입될 여지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3구에서는 자신들이 서 있는 절로 다시 시각을 옮겨 속기 없는 석단을 제시하였다. 더욱이 4구에서는 '새도 울지 않는다'며 자신의 반세속적 심경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

물론 위에서 살핀 「유안음옥산동」이나 「제문견사송정」에 나타난 반속적 태도가 스승 작품의 주조일 수는 없다. 다른 많은 작품에서 현실세계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는 심정을 토로 하였을 뿐 아니라 현실의 다양한 부조리를 세밀하게 관찰하며 보다 구체적으로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승이 화림동을 탐방하며 자연을 통해 제시한 낙도정신은 오늘날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우리의 의식을 해방시켜 모든 세속적 욕망들을 풀어놓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덕유산에서 발원하여 비단의 냇물을 이루며 흐르는 화림동 계곡, 그는 지금 봄을 꿈꾸고 있다. 복사꽃이 떠내려 올 때가 되면 농주 한 말쯤 메고 이 계곡을 찾아 가 볼 일이다. 거기서 스승이 그러했던 것처럼 '세사'와 대비되는 '산수'를 말해 볼 일이다. 이로써 우리는 세속으로부터 의미 지워져 그로 인해 존재이유가 성립되는 비정상적 자아를 방기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들 의식 내부에서 변혁이 일어나 새로운 진리를 터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깨달음같은 관념까지 해방되어 해방을 그리는 심경도 일어나지 않는 저 무심한 공허, 혹은 달빛이여!

 

필자주:

    이 글은 「화림동 계곡(1), 돌의 맑은 이마에 흐르는 구름 한 자락」(『남명원보』8)에 대한 속편이다. 지난 호에 이미 남명과 갈천이 행한 안의 3동에 대한 여정이나 탐방동기 등을 언급하였기 때문에 생략하고 작품의 내질적 의미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곳을 탐방하여 남명의 정신적 경계를 더듬어 보고자 하는 분은 지난 호에 실린 화림동의 약도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사진은 남명이 찾아갔던 갈천의 갈계정사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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