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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현들의 멋과 풍류/청산별곡
  <농민신문 1997. 5. 23.>

의병교육의 산실 남명의 산천재

강 대 욱
(향토사학가)

지리산자락이 동남으로 굽이 굽이 뻗어내려 산자수려한 경승지를 만든 곳이 경남 산청군 시천면 일원이다. 이곳은 역사의 한시대 도도한 학문의 연원을 이루었던 남명학의 시원한 물줄기, 덕천강이 굽이쳐 관류하고 있어 가히 명현의 고장임을 일깨우고 있다. 조선 중기 사림의 우뚝한 거봉, 남명 조식 선생이 이곳에 은거하여 구름처럼 몰려드는 제자를 가르친 곳이 산천재다. 산천재 뜨락은 비록 인적끊긴 정적이 감돌고 있으나 이곳에 서서 고개를 돌려 서북쪽을 바라보니 지호지척이건만 아득히 구름 속에 지리산 천왕봉의 웅자가 눈에 잡히고 그 곳에서 발원한 중산, 삼장으로 갈라져 흐르다가 합쳐지면서 덕천강을 이룬 분지에 시천면  일원의 질펀한 옥토가 펼쳐진다.

61세의 남명 선생이 한운야학을 벗하며 후학을 가르칠 때 이곳의 절묘한 자연을 그림처럼 표현한 시음이 들려온다.

지난 4월 4일 산악회 일원으로 아침 일찍 단독 주행으로 오전 중에 천왕봉 등반을 마치고 남명 선생의 12대 후손 조온환(60)씨의 안내로 산천재에 머문 순간이다. 선비는 자신의 능력과 정신으로 인격도야는 물론 세상과 인류에 대한 투철한 사명감으로 경(敬)과 의(義)를 중시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선생의 음성이 낭낭하게 정적을 가른다.

선생의 제자들이 하나같이 임진왜란을 당하여 우국애민의 사명을 통감하고 의병을 일으켜 국토를 사수하고 나라와 백성을 구출한 교육의 위력을 실감해 보는 역사의 현장이다. 항상 붉은 갑옷으로 무장한 의병을 이끌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종횡으로 왜적을 무찌른 곽재우 선생이야 말로 남명인맥의 상징이자 우국애민과 국난극복의 실천적 교육정신을 온몸으로 실천한 구국의병장의 화신이다.

임진왜란 때 영남의 곽재우, 정인홍, 김면 등 3대 의병장과 조종도를 비롯한 50여명의 의병장이 선생의 문하에서 일으나 남명문하생이 이끄는 의병이 정규군 이상으로 왜적을 무찌른 전공은 선비에게도 국난을 대비하여 무예와 병법을 가르쳤던 한 사람의 산림처사, 남명선생의 교육역량에 있었음을 말해주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화려한 관계진출의 영예를 스스로 포기하고 국왕의 부름을 끝내 고사, 자연에 뭍혀 후세를 교육하는 것으로 생애를 마감하면서도 명종임금의 부음을 듣고는

한점 티없이 살아온 자신의 전생애를 술회한 시에서 말해주듯 우뚝한 태산처럼 일생을 고고하게 살다간 선생의 멋과 풍류 그리고 학문의 빛이 장엄한 지리산 낙조에 묻혀 산천재를 감아도는 덕천강에 스러진다. 이기주의 기회주의, 물질주의로 만연된 오늘의 굴절된 세태를 보면서 문득문득 들려오는 선현들의 청산별곡, 그 소중한 노래에 귀를 기울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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