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대권은 백성의 손에 달려 있다

金  明  淳
(경산대 교수)

  대통령 선거일이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번에는 집권당의 후보 경선 때부터 선거 열기가 자못 고조되어 왔다. 특히 다양한 형태의 토론이 거듭 실시됨으로써 유권자가 후보자를 이해하고 지도자로서의 경륜과 자질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는 등 바람직한 변화를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지역감정 유발과 색깔론 시비, 밀실야합과 이합집산, 폭로전 등 구시대적 선거전 풍토가 여전히 재연되고 있으며, 권력을 놓고 벌이는 사생결단의 싸움은 갈수록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집권을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 후보자들과 그 추종세력의 행태를 지켜보면서 그 가운데서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국민들의 심정은 참으로 착잡하기만 하다.

  수십년 정치를 해온 이들이나 새로운 얼굴이나 한결같이 집권을 위해서는 못할 게 없다는 식이다. 개인이나 정당 정파간에 뚜렷한 이념과 정책에 바탕을 둔 전망의 제시보다는 유권자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고, 심지어는 과거의 독재자를 찬양하고 흉내내는 경우까지 있다. 오직 득표가 유일한 목표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정치에서 가장 먼저 할 것이 ‘명분을 바로잡는 것’이라 하였다. 명분을 잃고서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가겠다고 나선다는 말인가?

  원칙주의를 들고 나온 인물이 집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처럼 보인다. 어떤 이들은 초대 지방자치단체장 자리를 임기전에 거침없이 내버리고 대선 출마를 선언하였다. 시행이 유보된지 30여 년이 지난 뒤에야 어렵게 실시된 지방자치제도는 험난한 우리 정치사의 상징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흔히 민주주의의 꽃으로 일컬어지는 지방자치제의 성공적인 정착은 대선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의 거취는 해당 자치단체 주민에 대한 배신행위이며 결국 지방자치제의 발전에 부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더욱이 어떤 이는 당내 경선에 참여하고는 그 결과에 불복하고 정당을 나와 독자 출마를 선언하였다. 또 어떤 세력은 자기들이 민주적이라 자랑한 경선 절차와 결과를 무시하고 이른바 후보교체론, 중도낙마론 등을 버젓이 주장하면서 새로운 세력과의 연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패자가 승복하지 않는 경선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자기가 이긴 게임만 인정하겠다면 그런 게임 자체가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민주주의의 기본을 무시한 참으로 위험한 발상들이 아닐 수 없다.

  그런가 하면 성향이 전혀 다른 이질적 정당 사이에 내각제 개헌을 전제한 후보단일화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내각제 개헌 저지를 주장하던 이들이 집권을 위해서 내각제 개헌을 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들은 헌법체제를 바꾸는 중요한 논의를 공론화 과정 없이 밀실에서 나눠먹기식으로 거래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물론 여당에서도 연내개헌론이 제기되고 있다. 주권자인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요, 헌법을 권력투쟁에 이용하는 정략적 발상인 것이다.

  이번 대선에서도 이른바 “합종연횡론”이 국민들을 가장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후보자와 정당의 수권 능력을 당당히 겨루어 심판을 받기보다는 다양한 세력간의 연대를 통하여 집권 가능한 판을 짜맞추기에 골몰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대통합’,‘보수대연합’, ‘민주대연합’,‘대연대’,‘소연대’ 등 어지러운 구호 속에 여야를 넘나들며 성격이 다른 후보와 정당·정파끼리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전국시대의 합종연횡론자 소진과 장의는 세상과 백성을 구제하기 위함이 아니고 오로지 자신의 영화를 위해 술수를 부린 대표적 인물들이다. 한 선생 밑에서 배운 이들은 서로 적국의 재상이 되어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으로 제후를 조종하고 천하인민을 희롱하며 권세와 영화를 다투었다. 소진은 장의를 이용하여 자신의 권세를 유지하다 결국 간첩죄를 쓰고 수레에 몸이 묶여 찢기는 형벌을 받았다. 장의는 소진보다 권모술수가 더 하였지만 먼저 죽은 소진이 악평을 받도록 꾀하였다. 사마천은 「사기열전」에서 ‘이들은 진실로 위험한 인물’들이라고 평하였다. 명분과 원칙을 무시하고 권력을 놓고 흥정을 벌이면서 이합집산하는 무리도 매우 위험한 자들이라 하겠다.

  남명선생은 명망으로 조정에 천거된 사실을 두고서 ‘이름을 도둑질하였다’고 자책하시면서 ‘헛된 이름을 바쳐 몸을 파느니, 차라리 곡물을 바쳐 벼슬을 사겠다’고까지 말씀하셨다. 덕망이 부족한데도 명성을 얻어 벼슬하는 것은 이름을 도둑질하여 세상을 속이는 일이라 여기신 것이다. 선생이 선비의 출처의 문제에 대해 매우 엄격하셨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진 바다. 누구든 명분에 맞지 않는 출처를 비판하셨고 제자들에게는 출사를 법도에 맞게 할 것을 당부하셨다. 명분 없는 출처를 민족을 위한 결단이라 강변하는 이들과, 기준 없는 연대 추진으로 정치발전을 저해하고 국민의 정치불신을 조장하는 무리들을 선생은 결코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선생은 벼슬을 사양하면서 선조 임금에게 올린 사직하는 글에서 “지금 저의 나이는 예순에 가깝지만 학문은 성글고 어두우며, 문장은 과거시험에 겨우 뽑히기에도 부족하고, 행실은 물 뿌리고 비질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기에도 모자랍니다.”고 하셨다. 이 때 선생이 받은 벼슬은 현감 자리였다. 지금 대선 후보들은 저마다 스스로 나라를 떠맡을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선생은 이들에게 대뜸 ‘물 뿌리고 비질하는 일’부터 제대로 배우라고 꾸짖으실 것 같다. 후보자들은 자신을 돌아보고 허위와 위선에서 벗어나 민족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스스로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선생의 시대는 군주가 주권을 가진 봉건시대였다. 그러나 선생은 군주의 일방적 주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군주의 대권은 백성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하시고, 군주가 군주로서의 자격이 없고 군주노릇을 못할 때는 백성이 갈아치울 수 있다고 하셨다. 민주주의는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며 그 주권은 선거를 통하여 행사된다. 주권자가 성숙된 정치역량을 발휘할 때 구태의연한 정치풍토가 고쳐지고 정치인들이 국민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나라와 겨레의 살림과 운명을 맡길 만한 적임자를 기르고 골라 쓰는 일은 전적으로 국민의 몫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신성한 주권을 제대로 행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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