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冥先生史傳(8)


山海亭重建上樑文

許       薰
(1836 - 1907)
飜譯 李 昌 浩
(晋 山 書 塾)

  엎드려 생각건대, 道는 백세토록 스승이 되리니 일찍이 壁立의 높은 풍범 우르렀고, 자리는 三公과도 바꾸지 않으리니 비로소 舊地에 정자 이룸을 보겠다.

  처마와 기둥은 어찌 한갖 보기에 아름다울 뿐이겠는가, 강과 산에서 참으로 즐긴 바를 징험할 수 있겠다. 오직 우리 南冥夫子께선, 실로 이 間世의 호걸이다.

  江湖같은 기품에다 雪月같은 襟懷이니 資質은 무리에서 빼어나며 동류에서 특출했고, 左柳같은 문장에다 伊顔같은 志學이니 用工은 얕은 데서 말미암아 깊은 곳에 이르렀다. 三關의 도적을 제압하고 九竅의 사욕을 막았으니 용맹 떨친 五丁壯士요, 四字의 부절을 매달고 百勿의 기치를 세웠으니 위엄 펼친 太乙眞君이로다. 이에 方寸의 안에다 汗馬의 고을 이루었고, 또한 沖莫한 가운데 힘써 生龍을 포박했다. 하물며 힘겨운 篤行을 다한 나머지, 博約 두 가지의 지극한 妙理를 겸함에랴! 멀리 孔孟 程張 朱子의 실마리를 이었으니 도맥은 스스로 전함이 있고, 아울러 律算 射御 兵甲의 부류를 궁구했으니 聰明은 미치지 않은 곳이 없다.

  천하의 변화를 통달하여 일국의 제도를 이룰 수 있었으니 編邦에 다시 없는 재능을 품었고, 百里의 운명을 맡겨서 육척의 고아를 의탁할 만 하였으니 지성은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선생과 같이 하여 교화를 한 뜻에 이르러선, 자기를 미루어 남들을 위한 정성이 깊었다. 때때로 태만한 학자들을 경계하여 惺惺한 방울을 보였었고, 마침내 투명한 공부를 복돋아 歷歷한 銀花를 입증했다. 언제나 스스로 분발함을 지녔으니 花柳場을 뚫고 나와 백번 달군 쇳덩이 같았고, 성리의 빈 얘기 부끄러이 여겼으니 보석가게 구경함은 一尾魚를 사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다. 이에 그 논의가 활달했고, 의용(儀容)이 깨끗했다.  사물을 끌어 와 널리 비유하여 아득히 다함이 없었으니 마치 하해(河海)를 뒤집는 듯 하였고, 공경을 지니어 엄숙히 앉아서 정연히 피로함이 없었으니 흡사 형상(形像)을 조각한 듯 하였다.

  빛나는 안광(眼光)은 하늘의 별과 같고, 찬란한 자태(姿態)는 봉우리의 옥과 같았다.

 드디어 명성이 퍼지고, 종유(從遊)가 사방에 깔렸다.

  평소 강마(講磨)한 벗으로는 동고(東皐) 규암(圭菴) 청송(聽松) 대곡(大谷) 갈천(葛川) 송계(松溪) 황강(黃江) 삼족당(三足堂) 같은 분이였고, 문하에 출입한 사람은 덕계(德溪) 수우(守愚) 동강(東岡) 한강(寒岡) 도구(陶丘) 낙천(洛川) 망우(忘憂) 각재(覺齋) 같은 이였다.

  대개 역량과 규모의 굉박(宏博)함은 당시에 실로 짝할 이 드물었고, 아! 의리와 강론의 절실함에 벗들이 모두 스승이라 일컬었다.

  과연 학의 울음 멀리 들리니, 임금 부름 누차 이르렀다.

  주부(主簿) 현감(縣監) 상서(尙瑞) 전첨(典籤)의 제수는 이윤(伊尹) 태공(太公)의 초빙과 부합했고, 명선(明善) 성신(誠身) 궁리(窮理) 진학(進學)의 펼침은 가의(賈誼) 육지(陸贄)의 주소(奏疏)보다 나았다.

  사정전 인견하던 날에는 와룡선생의 경솔한 출처를 탄식했고, 고반(考槃)에 은둔한 자취는 의양남자(衣羊男子)의 초연한 이상을 따랐다. 은자(隱者)는 공이 적다고 누가 말했나 능히 하여금 박부(薄夫)를 돈독히 하고 유부를 자립케 하고 완부(頑夫)를 청렴케 하였으며, 아서라 세사를 모두 그만 두리니 더욱 힘써 도의를 굽히지 않고 지조을 꺽지 않고 일신을 욕되어 아니했다. 비로소 토동(兎洞)의 본집에서, 신어산(神魚山) 남쪽으로 옮겼다. 덕을 쌓고 학문을 가르쳐 명덕을 이었으니 그 뜻을 편액에서 보겠으며, 산을 베고 바다에 임하여 승경(勝景)을 갖췄으니 시원함이 창문에 연이었다.

  출렁이는 장강은 참으로 남국의 바탕이요, 점점의 遠山은 흩어져 북두의 모양일세.

  아! 우리들 성령을 도우시어, 이 곳의 丘壑을 즐기셨다.

  빈 뜰에서 손님을 떠나 보내니 오직 바다 학이 절로 찾아오고,오솔길에 고사리 캐어 돌아오니 저 많은 녹봉이 무슨 소용 있겠는가!

  서책을 물들인 煙嵐의 기운은 이내 제일봉 면전을 치장했고, 지팡이 소요한 수죽의 경내에서 문득 30년 세월을 머물렀다.

  아! 少微星 마침내 빛을 잃고, 태산이 드디어 무너졌다. 그 자리에 나아가 院宇를 세워서는 絃誦하는 장소로 삼았고, 이 정자와 더불어 유림이 함께 지키며 갱羹牆의 추모를 부쳤다.

  오히려 풍운의 잔재가 남아 있어 多士들이 감격하였고, 비록 병화의 혹독함을 겪었으나 후현들이 수리하였다.

  안타깝게도 邦禁이 너무나 엄하여, 別構가 아울러 훼철되었다.

  나무꾼들 노래하며 머뭇거리니 낙조가 쓸쓸하고, 나그네는 손질하며 방황하니 寒雲이 침침했다. 맑은 향내 이미 끊어져 猿鳥마져 슬퍼하니 어찌 견디랴, 지난 자취 누가 증거하리 松桂에게 물어도 대답이 없다.

  다행히 땅의 왕기를 회복하고, 사람의 계획은 아울러 어질구나.

  등라 얽힌 폐허를 쓸어 내 남긴 자취 찾아보니 어제 같이 선연하고, 의관 차린 선비들 모아서 드디어 자리 잡아 중건을 도모했다.

  虎營장군이 공문을 보내 잃은 땅을 되찾았고, 熊幡太守가 장부를 살펴 소요 경비를 마련했다.

  이에 백성들이 달려오니 삼태기 운집했고, 목수가 지휘하니 도끼질 날렵하다.

  큰 것은 들보 삼고 작은 것은 문지방이니 어찌 반드시 천만간의 넓은 집을 본받으랴,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엔 서늘하니 우리들 이삼인은 넉넉히 앉을 수 있다네.

  그러므로 장차 의관 선비 부르고, 음식 차려 잔치하리! 땅에 솟은 높은 봉우리 돌아보니 훌륭한 모습이 연상되고, 하늘 닿은 넓은 물을 굽어보니 호탕한 마음이 상상된다.

  마땅히 때마다 힘써서 당시에 성찰한 묘지를 생각하고, 감히 놀며 세월을 보내랴 전인이 가르친 고심을 체득하라! 그러면 어진 자취 없어지지 않을 게고, 고을 풍속 두터이 변하리!

  사람마다 秋霜烈日의 기상을 우러러 늠름히 지킬 바를 알 것이고, 집집마다 尊王黜覇의 방도를 얘기하며 나아가면 큰 사업 이룩하리!

  오르기를 거듭하면 태산의 정상에 도달하리니 그 문을 얻지 못했다고 이르지 말고, 물방울이 모여서 창해의 깊음이 이루니 이 방에 들얻와 처함을 알리라!

  이에 쌍 들보 올림을 인하여, 여섯 兒郞偉 노래를 부른다.

  어기여차 들보를 동 쪽으로 던지니, 蒜峯이 물결 속에 떴다가 가라앉네. 완연히 검은 말이 물에서 나오 듯, 등에는 河圖와 九宮을 짊어졌다.

  어기여차 들보를 들보를 남 쪽으로 던지니, 뾰쪽한 신선 바위 연못에 비친다. 시험삼아 한 곡조 긴 피리 불어보라, 선학이 짙푸른 람기 중에 날아드리!

  어기여차 들보를 서 쪽으로 던지니, 우뚝한 방장산 구름에 가렸구나. 정령은 여기에도 저기에도 있으니, 바람 말로 왕래하며 해매지 아니하네.

  어기여차 들보를 북 쪽으로 던지니, 높이 솟은 봉우리 북극을 받쳤구나. 돌아봄에 만물이 모두 아래 있으니, 상쾌히도 이 몸은 높은 곳에 올랐다.

  어기여차 들보를 위로 던지니, 푸르고 푸른 하늘 드넓게 펼쳐졌다. 은거해도 세상 근심 마음 정녕 유장하니, 밤중에 배회하며 오래도록 쳐다본다.

  어기여차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강물은 끊임없이 밤낮으로 흐른다. 사람들 마땅히 경으로써 근원 삼아, 한 이치로 모름지기 저물을 쳐다보라!

  엎드려 바라건데 상량한 뒤로는, 암산 더욱 그윽하고 초목 더욱 광채나리!

  먼지 절로 사라져 바람과 달은 무한한 경치를 받칠 것이고, 신령 함께 수호하여 기와와 서까래는 불후의 아름다움 있으리! 길이 지켜 보전함은, 지금부터 시작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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