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3
남명문학의 현장 답사기(7)

鋪淵,
천 섬의 맑은 물로 마음을 씻은 자리

                                                  정  우  락
(경북대 강사)

  스승의 의식을 찾아 나서는 날의 아침은 언제나 가슴 설렌다. 스승의 눈으로 보았을 자연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의 질서정연한 논리 속에서 성리학적 이치를 발견하려 했던 스승, 스승은 그 이치를 ‘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연 속에는 인간의 비정한 역사 또한 존재한다. 정치가들이 구차한 명분을 내세워 논리를 배반하며 백성을 수탈하고 때로는 양민을 학살하기도 한다. 오늘은 좀 특별한 경험을 하기로 하고, 이 두 요소, 즉 논리와 반논리가 함께 깃들어 있는 거창군 신원면으로 답사지역을 선택했다.

  남대구 인터체인지를 빠져나가 88고속도로를 타고 광주방면으로 달렸다. 장마철이라 빗방울이 강하게 차창에 부딪혔고 산의 골짜기마다 안개가 저마다의 모습으로 피어 오르고 있었다. 가조를 지나 거창에서 내려 좌회전했다. 1089번 도로를 따라 월평리, 대단리, 진척리, 임불리, 양지리를 지나면 신원면 구사리가 나온다. 원래 신원면은 삼가군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栗院이 있었으므로 율원면이라 하다가 新旨面의 여러 동과 병합되면서 신지의 ‘신’과 율원의 ‘원’을 합하여 ‘신원’이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구사리는 7개 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특히 구사는 거창인 愼汝修가 여기에 옮겨 살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고 하며, 원래 ‘龜獅’로 표기하던 것이 ‘九士’로 바뀌었다 한다.

  이 마을에서 서남쪽으로 약 200m쯤 가면 가마솥처럼 가운데가 움푹파인 소(沼)가 나타난다. 그리하여 마을 사람들은 이 곳을 가매쏘라 불렀다. 비가 온 탓이라 물은 그리 맑지 않았고 물살은 드셌다. 호가 鋪岩이었던 신여수는 항상 이곳을 소요하였는데 그의 아들 鋪淵 愼文彬이 아버지가 거닐던 곳에 대를 쌓아 포연대라 이름하고 아래에 보이는 가매쏘를 포연이라 고쳐 불렀다. 스승이 이 곳을 찾은 것은 1549년, 그러니까 스승이 49세 되던 여름이었다. 문집에 의하면 이 해 8월 초에 우연히 紺岳山 아래서 놀았는데 이 때에 함양지방 문인이었던 林希茂와 朴承元이 듣고 달려와서 함께 목욕을 했다고 한다. 당시 스승은 목욕을 하고 느낀 바 있어 칠언절구 한 수를 남겼다. 「浴川」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스승이 청징한 마음 상태를 유지하여 천리를 보존하려는 굳은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1구에 보이는 ‘전신’은 바로 스승 자신의 몸이며 ‘사십 년’은 자신이 돌아본 생애의 사십 년 그것일 터이니 성찰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 성찰을 통해 스승은 1구의 ‘前累’와 3구에의 ‘塵土’로 표현된 인욕이 ‘五內’로 표현된 마음에 생기면 맑은 물로 거침없이 씻어 낸다고 했다. 이것에 대한 강한 의지를 스승은 2구와 4구에서처럼 ‘千斛’과 ‘複蔑?막?보였다. ‘천곡’은 많은 양의 물이며, ‘고복’은 배를 가른다는 것이니 인욕세척에 대한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여기서 물의 기능에 대하여 주목할 만하다. 스승은 2구에서 ‘淸淵’으로 인욕을 씻는다 했다. 물이 세척의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이로 보아 물은 본연지성을 본연지성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를 우리는 내적 수렴에 기반한 시라 할 것인데, 『남명집』에는 이같이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려는 것을 주제로 한 작품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다음의 「織女巖」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이해할 수 있다.

  위의 작품은 견우와 직녀에 대한 고사를 통해 인욕단절을 간접화한 것이다. 그리고 스승은 여기서 인욕의 발원지 또한 밝히고 있다. 4구에 보이는 인간 세상이 그것이다. 노래하려는 자연물이 ‘직녀암’이니 스승은 견우와 직녀의 고사를 먼저 생각했다. 그리고 천리가 깃든 본성과 인욕의 문제를 이 자연물을 통해 검토하면서 인욕의 발원지를 탐구하였다. 이를 위하여 스승은 바위라는 자연물이 인간 세상과 떨어져 있다는 데 착목한다. 바위가 재물과 명예에 대한 욕망 등 인간 세상에서 발생하는 온갖 욕망들로부터 단절되어 있는 공간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기반 하여 1구와 2구에서 보듯이 직녀가 짠 흰 베를 베틀에서 뽑아 내어 바로 견우의 등에서 말린다고 하였다. 이 때문에 3구에서처럼 잡된 다른 색깔인 푸른 색과 노란 색이 침범할 겨를이 없었다. ‘白’과 ‘靑黃’이라는 색조대비를 통해 후자를 배제하고 전자를 지킬 것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은 각각 천리가 깃든 본성과 인욕으로 견주어질 수 있을 것인데, 여기에서 ‘청’이나 ‘황’은 인간 세상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인욕을 상징한다 하겠다.

  스승이 목욕을 하면서 내적 정신적 세계를 확보하려했던 포연은 그후 성주인 養性軒 都希齡에 의해 주목받는다. 도희령은 스승이 강조한 경의의 요체를 파악하여 체득하고 「욕천」에 대한 차운시를 짓기도 했다. 이같은 도희령의 뜻을 기리기 위하여 1920년 그의 후손인 都宰均은 포연대 옆에 정자를 짓고 선조의 시에서 이름을 취하여 정자 이름을 ‘溯眞亭’이라 하였다. ‘소진’은 거슬러 올라가 인욕을 벗고 천리를 획득한다는 것이니 스승이 「욕천」에서 보인 내적 수렴에 의한 정신세계 바로 그것과 일치한다. 도재균은 그 자신의 정자 ‘臨淸亭’도 소진정 동쪽에 세웠다. 맑은 물가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이름 붙인 것이라 하겠다.

  소진정에 앉아서 나는 스승이 목욕을 하면서 천리의 세계를 확보하려고 했던 포연을 내려다 보며 오랫동안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거기서 자연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논리의 세계를 발견하였다. 인위로 설명되지 않는 그러한 세계를 자연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논리가 통한다는 것은 자연이 치밀한 조화로 이룩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스승이 자연을 통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이 이것인지도 모른다. 이 조화세계의 지향은 보다 적극적으로 합일의 경계를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과 소요, 혁명과 비겁 이것이 자연에게서는 성립되지 않는다. 소진정에서 이같은 생각이 나의 의식을 강타한 것은 어인 일일까? 그것은 양민학살사건이라는 민족사에서 가장 치욕적인 반논리적 사건이 바로 포연 주변에서 일어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구사리 포연에서 산천군 오부면 방면으로 조금 올라가면 과정리가 나온다. 1951년 2월, 당시 11사단 9연대 3대대가 거창군 신원면 일대에서 공비토벌작전을 벌였다. 그 때 주민들이 공비와 내통했다고 잘못 판단한 지휘관은 2월 10일, 이 지방의 청장년 136명을 내탄 골짜기에 몰아넣고 기관총으로 학살했다. 다음날 주민들을 신원국민학교로 피난하라고 명령을 내려 모이게 한 다음 군인가족, 경찰가족, 공무원가족을 가려내고 남은 주민 500여명을 박산 골짜기로 몰아넣고 약 2시간 가량 무차별 사격을 가하였다. 당시 부산에 피난 중이었던 국회에서 이 사건에 대한 논란이 벌어졌고 마침내 국회조사단을 현지에 파견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때의 계엄 사령관 김종원은 거창군 남상면과 신원면 사이의 계곡에 공비를 가장한 군인과 경찰을 매복시켜 조사단에게 총격을 가함으로써 조사를 무산시켰다. 전쟁으로 인한 민족사적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남자, 여자, 어린이의 무덤을 만들고 위령비를 세우기도 했으나 1961년 정부의 묘지 개장명령으로 봉분이 파헤쳐지고 위령비가 땅에 파묻혔다. 그후 봉분은 복구 되었으나 비석은 방치되다가 현지의 주민들이 비석을 파내어 비스듬이 묘소 앞에 세워두었다. 그리고 어느 비가 많이 왔던 해 박산 골짜기에서 당시 총알 맞은 흔적이 역력한 바위 하나가 굴러 떨어졌는데 주민들이 그것을 시냇가에 세워두기도 했다. 생각하기도 싫은 당시의 비극을 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포연에서 스승은 강하게 인욕을 씻으려 하였고, 그후 수 백년이 지나 인욕에 의해 판단력이 흐려진 인간들에 의해 무고한 양민이 학살되었다. 이 선명한 대비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자연의 논리와 인간의 반논리, 자연 속에서 천리의 찾으려 했던 스승의 높은 정신과 자연을 배반하며 총칼로 양민을 도륙한 저 새디스트의 민주주의, 나는 이 어마어마한 편차에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정신적 경계와 인간이 타락할 수 있는 가장 비열한 행위가 한 자리에서 이루졌다는 이 엄청난 모순 앞에서 나는 무색의 암흑을 체험한 것이다. 소진정 처마로 빗물이 가슴 저리게 떨어지고 있었다. 포연의 물은 자꾸 불어나고 있었고, 스승의 맑은 눈으로 보았을 산, 혹은 아우성과 매캐한 화약연기에 휩싸였을 그 산엔 처연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편집자주:
 이 답사를 거창 대성고등학교 양홍선 선생님이 도와주셨다. 자료를 구해서 제공해 주시기도 하고, 소낙비 속에서 스승이 목욕을 하였던 포연과 무고한 양민들이 묻힌 현장을 안내해 주시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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