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원보를 읽고,
격정의 저류와 ‘살아남’

백  운  용
(경북대 대학원)

  1997년 더운 어느 여름날, 敬義라는 태극 속의 글을 바탕한 앰블렘과 崇德祠란 말 못할 엄숙함으로 표제된 하나의 글밭이 저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속에는 남명선생의 史傳과 남명학파와 관련하여 쓴 글, 남명문학의 현장 답사기 등이 차분한 가운데 조용히 靜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정좌의 의미는 조용한 潛心의 상태가 아니라 물이 끓기 직전의 그 고요였습니다. 이제 99도에서 1도만 더해지면 바야흐로 물이 끓어오려는 순간인 것입니다. 남명선생의 행적이 그 옛날 아득한 기억 속 빛바랜 잔영이 아니라 살아숨쉬는 거대한 입김으로 다가서는 순간이었습니다.

  글을 읽는다는 것은 공간의 이동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공간이란 자신이 살아 숨쉬는 터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이 세상에서 잠시 빌어쓰면서 차지하고 있는 한 공간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창 밖으로 비록 짙은 신록이 우거진 숲이라 할 수는 없지만 아담하니 떼지어 서 있는 나무들의 군락이 있고, 뻐꾸기의 아름다운 노래 소리는 아닐지라도 가끔은 찾아와서 울어주는 까치와 매미도 있는 곳입니다. 비오는 여름날, 그것도 소나기 내리치는 여름날이면 창 밖으로 푸른 빛은 사라지고 흰 烟霧의 춤사위가 너울거리는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 도시의 한복판에 살고 있는 우리이기에 이처럼 마음을 설레게 하는 장면은 가끔일 뿐이고 공사판의 소음과 자동차 소리, 확성기 소리가 귓전을 어지럽힐 때가 더 많습니다. 그러나 이 공간에서 저는 평화롭기도 하고 때문에 내면의 상념 속으로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공간에서만 머무를 수는 없습니다. 하루의 일과가 끝나면 다시 다른 무엇을 찾아 다른 공간으로 옮겨가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 이동하는 사이사이에는 지금까지 느끼고 가다듬어 왔던 것들이 산산이 부서지기도 하며, 안정이 깨어져 浮游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이렇게 한 공간은 안정을 다른 한 공간은 動搖를 제공하기에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함으로써 삶의 質과 의미는 달라질 수 있고, 그 공간이 제공하는 糧食은 해롭거나 또는 이로울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공간은 경험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경험적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삶의 경험 속에서 느낄 수 있고 호흡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글을 읽는 것도 이같은 공간의 ‘존재와 이동’과 같습니다. 다만 위의 것이 삶의 일상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경험적 공간이라면 글읽기는 그것이 내면에서 이루어지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으니 초경험적 공간이란 점에서 다를 뿐입니다. 그래서 안정과 이득을 주는 공간과 동요와 해악을 주는 공간이 경험적 세계에서처럼 함께 공존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원보는 안정과 이득을 주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생각할 꺼리를 준 초경험적 공간이었습니다.

  「남명선생이 그리워지는 시대」에서 그것은 드러납니다. 난마처럼 얽혀 있는 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이런 때에 과연 현자의 지위를 외람되이 차지하고서 허위의 우두머리가 되어야 하겠는가”하는 남명선생의 답은 신문 등 언론매체에서 연일 쏟아져나오는 九龍이니 七龍이니 하는 동요와 해악의 공간을 과감히 청량한 공간으로 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周道濟 교수와의 대담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남명선생이 ‘행동을 주장하고 또 의협심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나라를 사랑하고 시대를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남명선생의 정신은 단절 없이 이어지고 있는데, 그것을 보여 준 것이 「남명연원을 찾아서 - 망우당 곽재우」였습니다. 심혈을 토로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이었지만 “전하께서 신의 말씀을 받아들여 나라를 일으키고 국가를 보존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게 하신다면, 신이 비록 십 년 동안 닦은 양생의 공을 버리고 임금님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죽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라 했던 망우당의 상소에서 남명선생의 敬義에 입각한 행동주의는 하나의 열매로 맺어져 있음을 보았습니다.

  때문에 ‘어수선한 이 혼돈의 국면에서 부조리를 질타하는 목숨 살아 있는 남명선생을 뜨겁게 열망하는 것이며, 시류에 편승해서, 시류에 아부해서 질타하고 氣節을 위장하는 사이비 선비가 아니라 정결한 목을 百刃 위에 드러낸 상황에서도 우리의 부조리와 비리를 준엄하게 질타하는 남명선생을 목놓아 기다리는 것’(「남명선생을 기다림」)입니다.

  참으로 저에게는 ‘醉夢中의 餘魂를 일깨웠고 이미 뒤집어진 光瀾을 돌려 놓은(喚醒醉死餘魂 障廻狂p旣倒)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남명선생의 행적이 그 옛날 아득한 기억 속 빛바랜 잔영이 아니라 살아숨쉬는 거대한 입김으로 다가서는 순간이었으며, 이제 99도에서 1도만 더해지면 바야흐로 물이 끓어오려는 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원보에는 激情의 저류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명선생과 관련된 다각적인 면을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살아 있는 정신으로 구체화 시키려는 노력이 아울러 펼쳐지고 있었습니다.「남명학파 고문헌 소개 - 규암집」,「남명문학의 현장답사기 - 월담정」,「남명연원 사숙인물고 - 역양 문경호」,「남명학연구논총 제 5 집을 읽고」등이 주로 그러한 것이었는데, 특히「남명학연구논총 제 5 집을 읽고」는 비록 개괄적이기는 하나 남명학에 대한 연구 성과를 직시하게 해주는 지침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정치사상, 실학사상, 김창협 학파의 남명학 비판 그리고 남명집 판본 연구에 이르기까지 남명선생에 대한 연구가 다양한 방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으며, 남명선생을 오늘에 되살리려는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야심찬 노력과 아울러 남명선생에 대한 알뜰한 조망이 선생을 오늘에 확연한 師表로 되살리는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정신을 알고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것입니다. 행동주의라는 말을 썼듯이 체험은 실천으로 실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세계에 대한 치열한 고민만으로는 부족하며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남명선생에 대한 연구와 탐색은 이러한 방향으로 완성되어야 하리라 봅니다. 결국 이러한 작업이 쌓이고 쌓여 마지막 1도의 역할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끓어 오르는 격정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격정을 살려내어 동요와 해악의 공간을 안정과 이득의 공간으로 바꾸는 행동이, 부패의 냄새가 진동하는 세상을 상그러운 공기와 기운으로 채우는 행동이 남명선생의 살아남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남명선생의 혁명사상을 “혁명이 貪官汚吏를 타도하고 대규모의 정치개혁을 가리킨다면 남명은 확실히 이러한 사상을 가지고 있다.”고 본 周道濟 교수의 말에서처럼 변혁을 위한 확고한 의지의 소유와 실천이 오늘 우리의 현실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길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원보는 보잘 것 없어 보이기조차한 조그마한 외양과는 달리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무게로 우리 앞에 다가서는 것입니다. 때문에 이것의 초경험적 공간은 나를 살아있게 하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즐거움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혼탁한 경험 속의 공간을 청량한 공간으로 바꾸어 주는 淨化의 작용, 더불어 세상을 사는 지혜를 일깨워 주는 각성의 공간이 이 원보의 의미가 아닌가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신문 속의 얼굴과 글들은 세상을 암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 곁에 “남명원보”가 그 작은 몸을 펼칩니다. 어두움과 밝음의 대조,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맑음을 신문 속의 얼굴들은 왜 느끼지 못할까요. 그들에게도 남명선생의 정신이 필요합니다. 혼탁한 세상에서 처연히 물러나 세상의 밝음을 위해 정진한 스승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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