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과보고◁◀

   社團法人                                         
「南冥學硏究院의 現住所」

(一) 발자취

  南冥學硏究院이 처음 設立된 것이 1986년,이것이 發展하여 社團法人 南冥學硏究院으로 發足한 것이 1994년, 南冥學 연구에 관한 조직적 활동은 벌써 10여 년 星霜을 겪은 셈입니다.

  그 이전 1977년 高麗大 敎授 金忠烈 博士께서 南冥선생의 學德을 처음 소개하여 비로소 德山의 昌寧 曺氏 門中과 서부경남의 識者들에게 남명선생에 대한 관심과 연구에 불을 지피게 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남명학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정력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남명선생의 인품과 학문을 江湖에 弘布하기 위하여 두 가지 課題가 提起 되었습니다.

  그 하나는 德川書院과 山天齋 및 墓域 일대를 國家文化財로 지정받는 일이요, 또 하나는 남명학의 대중화를 위하여 初等學校 敎科書에 남명선생에 관한 사항을 수록하는 일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일은 남명선생의 후손인 曺玉煥 釜山交通(株) 사장이 주동이 되어 당시의 文化公報部와 文敎部를 수십 차례 방문하여 천신만고 끝에 목표를 달성하였습니다.

  그 결과 1983년 1월 23일 史蹟 305號로써 國家文化財로 지정받았으며, 1990년에 초등학교 교과서에 「曺植」항목이 등재되었습니다.

  1986년 당시 嶺右學派 유지들이 주축이되어 자생적인 南冥學硏究院을 설립하였으며, 『南冥學硏究論叢』1,2輯을 발간하여 전국 학계에 남명학에 대한 인식을 크게 확산시켰습니다. 또한 8월 18일에 거행되는 德川書院의 南冥祭를 慶尙南道私立中高校 校長團이 주관하여 매년 1,000여 명 이상의 회객이 운집하여 그 위상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이 일은 당시의 朴鐘漢 校長과 故 崔載浩 校長의 선도적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므로 그 공적을 높이 찬양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國立 慶尙大學校內에도 부설 南冥學硏究所가 설립되어 1990년 연구발표회 개최, 연구논문집 간행 등을 지원하는 등 많은 성과를 이룩하여 국가차원으로서의 南冥學硏究所의 예명을 실감케 하였습니다.

  90년대에 들어 南冥學硏究院을 社團法人으로 발전 개편하여 보다 광범하고 적극적인 학술활동을 전개코자 하는 여망에 부응하여 1993년 發起人 總會를 거쳐(發起人 代表-故 慶尙大總長 李正漢), 1994년에 社團法人 南冥學硏究院의 설립허가를 얻어 전국 규모의 학술단체로서 역사적 제일보를 내 딛게 되었습니다.

(二) 업적

  社團法人 南冥學硏究院 발족 당시의 등록회원은 약 500명이었습니다. 여러 회원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로 사단법인 남명학연구원은 우선 학술연구에 있어서, 해를 거듭함에 따라  그 깊이와 넓이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어 왔다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다.

  『南冥學硏究論叢』은 第5輯의 연륜을 쌓았습니다. 우리 연구원과 동반자인 慶尙大學校 南冥學硏究所에서 출간한 논문집을 합하면 남명학 관련 논문이 약 100편에 이르렀고, 기타 개별적으로 발표된 것을 합하면 200편 이상의 논문이 발표되었습니다. 불과 10년 미만의 연구활동으로 이같은 업적을 올렸다는 것은 결코 경시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1995년(成均館講堂)과 1997년(서울 敎育文化會館)의 2회의 南冥學國際學術會議에는 중국, 일본, 독일, 미국, 대만 등의 석학들이 국내학자들과 더불어 훌륭한 논문을 발표하고 활발한 토론을 전개하여 남명학은 국제적으로도 적지않은 각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이 누적되어, 사회와 학계의 남명학에 대한 인식이 예상외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되어 가슴 뿌듯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들은 金忠烈 南冥學硏究院長의 남명학연구에 대한 신념의 발로이며 아울러 南冥學學術大賞을 받은 吳二煥 慶尙大 敎授를 위시한 참여 교수들의 진지한 노력의 성과로 명심하고 있습니다.
  또한 계간지인 「南冥院報」를 매회 5,000여부씩 현재 6호까지 발간하여 남명학연구의 현황을 널리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南冥曺植先生 史蹟資料集」인 『南冥先生의 자취를 따라』, 『南冥曺植先生 行狀 및 史蹟』 등의 책자도 출간하여 널리 배부함으로써 남명학의 대중화라는 차원에서 좋은 반향을 얻고 있습니다.

  이상과 같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南冥學硏究院의 앞날에는 극복해야 할 고비들이 한 없이 많습니다.

  다행히 금 1997년 4월 15일, 德川書院 春享때 初獻官으로 모셨던 전 서울大總長 및 國務總理를 역임한 李賢宰 現 大韓民國 學術院 院長님을 德川書院 院長으로 추대하게 되었습니다. 남명선생의 학덕선양은 물론 德川書院, 山天齋 일대의 國家文化財를 성역화하는 사업을 추진하는데 활기를 띠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德川書院은 壬辰·丁酉난 때 소실되거나 李朝末 훼철된 비운을 맞았으나, 1926년에 오늘의 모습으로 중건 되었습니다. 德川書院은 儒林總會에서 院長을 추대하고 院任(內·外任)에 의하여 운영되고 있으나 여러 가지 형편상 주요 행사나 役事들은 社團法人 南冥學硏究院과의 긴밀한 협조로 추진되고 있습니다.

(三) 향후 과제들

  社團法人 南冥學硏究院은 그동안 학술연구에 주력해 왔습니다. 전국 학계에 남명학에 관한 확고한 인식을 촉구하기 위하여 황무지에서 오늘의 좌표까지 발전해 왔습니다. 남명학에 관한 학술연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꾸준히 내실화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남명학의 대중화 사업도 병행 추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남명학의 핵심인 敬義思想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가장 요청되는 實踐倫理라고 생각됩니다. 즉 내면의 敬으로써 자기수양과 자기반성을 엄하게 하고 외면의 義로써 국민을 걱정하는 民本思想과 不義를 극복하는 正義感을 함양하는 것은 현시국에 절실한 實踐倫理 德目이기 때문입니다.

  南冥學硏究의 內實化와 南冥思想의 大衆化를 위한 당면과제로써 다음 몇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첫째로 山海淵源家를 위시한 주요 門人의 學德과 行狀을 재발굴·연구하고 그 후손들과의 유대를 조직화하여 힘의 결집에 노력하는 일입니다. 그 동안 德川書院 건립 후의 갈등,神道碑 건립에 따른 후유증, 門中內의 상호이해 부족 등 넘어야 할 고비들이 많으나 차원높은 忠恕의 아량으로 다시 뭉치는 시기를 앞당겨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동반연구단체인 慶尙大學校 南冥學硏究所와의 유대를 긴밀히 하여 남명학 연구를 상호보완하는 동시에 선진 退溪學會를 위시한 관련 타 學會와도 돈독한 관계를 조성하여 한국학의 수준향상에 기여하고 외국의 학술기관과의 교류도 넓혀 나가야 하겠습니다.

  1988년 南冥學國際學術會議를 처음으로 개최한 慶尙大學校에 1990년 南冥學硏究所가 정식 발족되어 社團法人 南冥學硏究院과 더불어 공식의 남명학 연구기관이 2개로 늘어났으니 긴밀한 상호협조로 남명학연구의 효율증대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 日本의 「大倉精神文化硏究所」와도 연구자료 교환을 진행하고 있으며 中國의 北京大學校와의 교류도 추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이미 부산에는 우리의 동반자인 南冥學釜山硏究院이 설립되어 자체적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으며, 이번에는 南冥學硏究院 鎭海支部가 발족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시·군단위의 지부결성을 적극 권장해 나가면서 자료 등 각종지원에 노력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동시에 韓國福祉情報通信協議會나 각 市·郡의 文化院 그리고 각지의 壬亂 倡義精神宣揚會 등 유관기관과의 자료교환 등 상호협조를 통하여 남명학연구의 지역적 확산 및 대중화에 노력하는 일입니다.

  넷째로 德川書院, 南冥墓所, 山天齋 일대의 현 國家文化財 域內의 약 28,000여 평의 지역을 聖域化하는데 힘을 모아야 하겠습니다.

  이 사업은 원래 德川書院의 소관업무이지만 서원의 형편상 우리 南冥學硏究院에 실무를 추진하는 의뢰가 있었기에 공동목표 달성을 위하여 최대의 협조 노력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 사업은 국가예산으로 추진될 것이며, 이미 역내 소재의 民家보상업무가 마무리 단계에 있으며,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할 예정입니다. 이 역내의 기존 시설물들을 보수 복원할 것이며 민족정신을 창달하는 敎育院을 위시하여 紀念館 碑林등도 조성하여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들어서면 옷깃을 여미는 莊嚴한 분위기가 피부에 와닫는 성역을 꾸며야 하겠습니다. 嶺右學의 정수를 모으고 민족정기의 산실을 조성하는 일입니다.

  이상 몇 가지 과제들과 總會 및 理事會의 결의사항을 적기에 처리하기 위하여 연구원내에 運營委員會를 설치하여 집단사고로 보다 효율적인 업무추진을 도모하겠습니다.

  다음에 社團法人 南冥學硏究院의 財政문제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드리고 여러 회원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합니다.

  社團法人 南冥學硏究院 설립 이전의 10여 년동안 德川書院의 國家文化財 지정, 남명학연구활동의 지원, 慶尙大 南冥學硏究所 지원등에 南冥의 후손인 德山 曺氏門中에서 적지않은 재정적 협찬이 있었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曺玉煥, 曺在華, 曺鳳祚 제씨의 물심양면의 성의를 잊을 수 없습니다.

  南冥學硏究院이 社團法人으로 발족한 것이 1994년입니다. 1997년 3월 현재까지 약 2년 반이 경과되었습니다. 그 동안 집행된 예산합계는 약 43,700만원 입니다.(94년 2,700만원, 95년 18,800만원, 96년 15,200만원, 97년 7,000만원) 그 중 82%인 36,000만원을 本硏究院 副理事長인 曺玉煥 釜山交通 社長이 특별 찬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별도로 현재 적립되어 있는 기금 24,000만원 중 2억원도 曺副理事長께서 출연하였습니다. 물론 위의 특별찬조 외에도 법인 이전의 제반 경비도 曺玉煥 副理事長의 개인 찬조가 대부분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財源의 의존도가 너무나 편중되어 있고 지나친 과중부담입니다. 앞으로 本硏究院의 활동이 확대됨에 따라 재정규모도 더욱 팽창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므로 運營委員會나 理事會에서 심각히 논의하여 재정의존도의 편중화를 지양하고 基金의 확충방안을 적극모색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조선 후기의 儒林은 畿湖學派와 嶺南學派로 구분합니다. 畿湖學派는 栗谷 李珥의 학통을 이었고 慶尙道 儒林은 退溪 李滉과 南冥 曺植의 학문을 계승한 양대學脈이 이어져 왔는데, 흔히 南冥學脈을 嶺右學派라고도 합니다. 退溪學會는 막대한 조직규모와 연구업적을 자랑하고 있으며, 그 구심점인 安東의 陶山書院도 막대한 국가예산, 지방비로써 단장,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하면 남명학파가 본격적 학술연구에 착수한 것은 10여 년에 불과하고 德川書院 일대의 유적은 이제 겨우 복원 정비의 시발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 동안 각계의 꾸준한 노력에 힘입어 이제 社團法人 南冥學硏究院은 지방 학술단체로서 당당한 좌표를 차지하고 국내외의 관심과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南冥學硏究院 會員의 사명과 책임이 한층 더 무거워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현재 南冥學硏究院의 회원수는 약 800명에 달합니다. 嶺右學派의 시초인 南冥先生의 敬義精神이 현대적 실천윤리에 있어서 가장 핵심임을 공감하여 참여해 주셨습니다. 특히 국가 위기에 처하여 살신성인한 의병장을 많이 배출케 한 남명선생의 節義思想을 숭앙하여 동참해 주셨습니다.

  어두웠던 터널을 벗어나 희망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自愧와 下視의 서러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德川書院은 李賢宰 院長을 추대하여 면목을 일신할 것이고, 硏究院은 金忠烈 博士를 중심으로 한 재기 넘치는 연구진과 출중한 운영위원과  이사진을 갖추고 있어 양양한 전도를 자신있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긍심, 자신감 그리고 주인의식을 가지고 남명학의 심화와 남명사상의 확산을 위하여 온 힘을 모아주실 것을 간곡히 당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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