院報를 보면서, 그리고 「南冥先生」을 기다림

이 영 경
(경북대 강사)

아담한 분량으로 꾸며져 있는 『南冥院報』를 처음 보았을 때 저는 잔잔한 기쁨과도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南冥先生의 인품과 뜻이 지금 또 하나의 따스한 생명을 뿜어내고 있구나 하는 반가움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학술논문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또 다른 차원의 의미를 이 『南冥院報』에서 기대했기에 차분히 院報를 읽게 되었고, 곧 그 기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院報에는 南冥先生史傳으로는 「敬義堂重建上樑文」이, 南冥淵源 탐구로는 陶村 曺應仁과 寒岡 鄭逑에 관한 것이 있었고, 學派의 古文獻 紹介로서 「安分堂實紀」가 있었으며, 또한 南冥精神을 되새김한 기고문과 글터의 글 등이 김충열 원장의 時論과 어우러져 先生의 뜻을 새기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특히 南冥文學 現場 踏査記인 「斷俗寺政堂梅」는 저로 하여금 先生의 人品과 價値觀을 생생하게 체험케 하였습니다. 저는 이 세심한 답사기를 읽으면서 홀연 정당매 옆에 서서 先生이 드리운 역사의 그림자를 바라보는듯 한 소회에 젖게 되었습니다. 이 칠언절구에 담겨있는 先生의 엄격한 氣節은, 자연의 섭리조차 무너졌다고 갈파한 “化工正誤寒梅事”의 구절에서 극점에 이르고 있습니다. ‘雪裡不爭春’을 표상하는 氣節의 매화가 단속사의 정당매에 있어서는 姜淮白의 失節을 상징한다는 것은 강한 역설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역설은 「斷俗寺」라는 이름을 가진 곳을 先生이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는 데서도 나타납니다.

매화를 통해서, 「斷俗」寺라는 이름을 가진 절에서 先生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세속과 단절하려는 의지가 아니라 세속의 欺世盜名하는 탐욕스러운 지도층들의 不義를 단절하려는 단호한 의지의 천명이라고 생각됩니다. 先生은 己卯·乙巳·丁未士禍 등이 거쳐간 혼란스러운 정치 사회적 상황에 처하여 초야에 있었으나, 그것은 물론 세상을 잊고자 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로잡는 하나의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그 하나의 증좌가 곧 「단속사정당매」입니다. 즉 先生은 이 「단속사정당매」를 통해서 山林에 있으면서 세상을 맑게 하는 叔世儒의 소임을 하였던 것입니다.

先生은 晩年에 지리산 아래 山淸郡 德川의 絲綸洞 山天齋에서 講學하면서 「敬義」 두 글자를 벽에 붙여 두고 그것을 푯대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렇듯이 先生에게 敬은 修養論의 要諦였고, 義는 사회에서 도덕적 당당함을 견지케 한 준거였습니다. 우리가 오늘날 先生을 존숭하고 그리워 하는 것은 단지 산림에서 主敬하였다는 이유 때문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主敬이라는 엄격한 자기 도덕성을 바탕으로 의리 구현을 위해서 사회의 矛盾과 不條理을 거침없이 질타하는 용기와 당당함 때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先生은 55세때 明宗에게 올린 일명 「丹城疏」라고도 하는 上訴(「乙卯辭職疏」)에서 “전하의 國事는 이미 그릇되었고, 나라의 근본은 이미 무너졌으며, 하늘의 뜻은 이미 저 버렸으며, 백성들의 마음은 이미 떠났습니다”라고 지적한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封建的인 王權主義 社會에서 감히 직설적으로 왕의 失策과 능력의 한계를 지적한 이러한 慷慨한 氣節은 실로 선비의 생명이며, 우리 역사를 바르게 이끌어 가는 정신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明宗實錄』을 보면 사관들도 先生을 높이 평가하여 “(曺植이) 끝내 출사하지 않으니 그 뜻이 가상하다. 그러나 曺植은 결코 세상을 잊지 않았다. 陳疏抗義하여 時弊를 극론함에 있어 그 말이 간절하고 義가 올바르며 시대를 상심하고 亂을 우려하여 임금을 明新의 경지에 이르게 하고 風化를 王道의 극치에 두려 하였으니 憂國之誠이 지극하다”고 하였던 표현이 나타나 있습니다.

제가 『南冥院報』를 접하게 된 이즈음은 우리 경제의 어려움, 龍들의 대권 쟁투, 대통령 차남에 대한 한보청문회, 북한의 전 노동당 비서 황장엽의 망명,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 등으로 국민들의 심기가 크게 어지러운 때 입니다. 모든 국민들이 우려하고 분노하는 어수선한 이즈음, 큰 사람이 그리워집니다. 저는 비록 단속사의 정당매를 보지도 못했고, 山天齋가 남아 있는지 어떤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시대에 살아있을 南冥先生을 간절하게 대망하고 있습니다. 어수선한 이 혼돈의 국면에서 부조리를 질타하는 목숨 살아있는 南冥先生을 뜨겁게 열망하는 것입니다. 時流에 便乘해서, 時流에 아부해서 질타하고 氣節을 위장하는 사이비 선비가 아니라, 정결한 목을 白刃위에 드러낸 상황에서도 우리의 부조리와 비리를 준엄하게 질타하는 南冥先生을 목놓아 기다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絲綸洞에 살던 南冥先生은 지금 결코 다시 살아올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또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南冥先生이 다시 살아올 수 있는지를.

그렇습니다. 결국 南冥先生은 우리 속에 있는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南冥先生을 기다림」이라는 우리의 명제는 우리의 「南冥的 氣節가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南冥先生의 蘇生 與否는 우리에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南冥先生이 곧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전능한 해결사라는 것이 아니라, 「南冥的 精神」이 우리 시대의 생명력이 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 『南冥院報』가 우리 시대의 「南冥的 精神 回復」의 기치가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南冥院報』에 실린 많은 글들이 견실한 이유를 이렇게 새겼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저는 『南冥院報』가 참으로 기쁜 소식이며, 義로운 향내나는 先生의 큰 기침 소리라는 것을 압니다.

이러한 예사롭지 않은 정감을 갖게 되기에 저는 이 『南冥院報』에 좀 더 욕심을 내어 다음과 같은 기대를 몇가지 적어 보고자 합니다. 우선 南冥先生 자신의 著作이 지금보다 많이 실렸으면 합니다. 先生의 저작이 다소 부족하게 게재된 것은 아마 전체적으로 院報의 분량이 적은데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만, 그렇다면 분량을 다소 늘여서라도(院報의 분량이 적어 아쉬움을 느끼게 되는 것은 저만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先生의 글들을 매회 한편씩 일정 분량으로 요약하고 그 의미를 새기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또한 先生의 삶과 사상을 문학적인 필치를 가하여 대하소설의 형식으로 장기간 연재한다면 어떨까 합니다. 이는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지만 읽는 이들에게는 생동적인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좋은 院報를 접하게 된 점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南冥先生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귀한 만남을 가진 `97년 5월을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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