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冥院報』에 드림

홍 승 헌
(원광대 한약학과 학생)

잘 정돈되고 깨끗한 방에 앉아 있으면 마음도 밝고 가벼워지게 마련이지만 주위가 복잡하고 어지러울 때는 마음도 왠지 심각해 진다. 언제부터인지 『價値』의 문제가 나의 삶에서 비중을 가지고 다가왔다. 역설적으로 나에게 있어 가치에 대한 혼란이 있음의 증상인지도 모를 일이다. 가치의 잣대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사람의 一生이 바뀌기도 하고 나라의 運命이 좌우되기도 한다고 배우고 들어왔다. 생각해 보면 가치란 것이 眞實을 기준으로 하여 거기에서 결코 멀리 떨어져서는 존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진실이 무엇인지 만천하에 드러나 있는 데도, 社會制度라는 ‘체’를 거쳐 나타나는 현상은 진실이 왜곡되어 있음을 왕왕 보게 되는 것이 오늘의 現實임을 부인할 수 없다. 政治판이라는 체에 의하여 걸러지면 ‘票’만이 가치로 남아 있고, 經濟라는 체에 의하여 걸러지면 ‘돈’이라는 가치만이 살아남는다. ‘科學的’이라는 용어로 대신 되는 西洋 物質文明의 가치는 모든 실체적 사실에 우선하며 오락에서 학문에 이르기까지 그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이런 와중에 나는 십 수년간 걸어오던 소위 尖端科學의 길을 마다하고 韓藥이란 것을 하겠다고 나섰다. 『南冥院報』라는 화려해 보이지는 않는 책자를 만나게 된 것도 내가 漢藥을 공부하겠다고 나서던 그 즈음의 일이다.

『남명원보』 제 3호의 첫 글에서는 日日新 又日新이라는 구절을 접하고 이어지는 글에서는 出處大義의 정신을 읽게 된다. 또한 ‘잣나무와 국화’의 物性을 발견하기도 한다. 뭔가 숨통을 트이게 하는 것들임에 틀림없다. 넉넉함이 베어 있고 여유가 생긴다. 30쪽이 미처 채워지지 않은 책자이지만 무게가 느껴진다. 프랑스를 오늘날의 프랑스답게 하고 日本을 오늘날의 일본답게 하는 것들이 과연 무엇일까. 콩코드와 같은 최첨단 비행기 제작 기술이나 도요다 자동차나 소니사 전자 제품만으로 이들 나라가 세계에서 지금의 위치에 설 수 있었을까. 프랑스에서는 영어로 된 대중가요, 소위 팝송이 젊은이들 사이에 지나치게 유행하자 국영방송의 음악 프로에서는 프랑스어로 된 대중가요 즉 샹송을 70%이상 반드시 방송하도록 하고 있다고 들은 바 있다. 일본은 수상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전 세계의 비난을 무릅쓰면서도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를 안치해 둔 신사에 대한 참배를 고집하고 있다. 이들 나라의 이러한 행태를 두고 칭찬하거나 지지를 보내고자 하는 마음은 전혀 없다. 나라나 民族의 文化的 國粹主義는 오히려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모르는 바 아니다. 다만 우리는 우리의 것을 지키고 우리의 것을 고집하기 위하여, 他國의 비난이나 國內에서의 상이한 이익 집단간의 반대나 갈등을 무릅쓰면서라도, 國家的 次元에서 어떠한 努力을 기울이고 있는지에 대해 疑問을 가지고 살펴보게 된다. 한 例로서 최근에 社會的으로 가장 큰 爭點이 되었고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漢醫藥계와 洋藥계간의 分爭에 대한 정부나 여야 정치 지도자들의 태도를 보면 이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은 매우 否定的이고 懷疑的일 수 밖에 없음을 발견한다. 이러한 시점에서 조선시대 實踐儒學의 거봉 南冥 선생에 대한 본격적 연구를 위하여 힘찬 행군을 하고있는 ‘남명학연구원’에 대하여 충심에서 우러나는 敬意를 표하게 된다. 우리의 것에 대한 나의 갈증은 매우 심하다. 『남명원보』는 적어도 나에게는 한 잔의 甘露水를 만난 것과 같은 반가움이다.

남명 선생에 대한 學問的 바탕을 지니지 못한 讀者의 立場에서 『남명원보』의 構成에 대해 몇 가지 意見을 감히 피력하자면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이미 우리의 것에 관심이 있고 그 價値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이미 어느 정도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본보를 구성하는 내용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이러한 것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특히 신세대라 불리는 젊은이 들에게, 우리의 것에 대한 자극을 주고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자 하는 目的도 겸하고 있다면 - 개인적으로는 마땅히 그러한 목적을 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되지만 - 그 구성에 있어서 다소의 變化가 있어야 할 것 같다. 머리를 염색하고 귀거리를 하고 다니는 청년들과 허벅지가 다 나오는 치마에 배꼽까지 드러내고 다니는 처녀들이 오늘날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다. 이들에게 朝鮮 중기의 漢詩 原文 - 번역이 있긴 하지만 - 을 들이댔을 때, 그것들이 과연 그들의 의식 속에 비집고 들어갈 여지가 있을까. 이런 현실에 대한 대책으로 논문이나 선생의 사상에 대한 고찰 등과는 별도로, 쉽고 재미있는 문장으로 남명선생의 일화나 생활에 임하는 자세 등을 소개하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連載物을 게제하는 것도 하나의 方法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요즘 눈만 뜨면 접하게 되는 컴퓨터 통신이나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통하여서도 젊은이들에게 손쉽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빈 바둑판에 어떤 형태로든 한 개의 바둑알을 둘 수는 있다. 그러나 그 바둑알이 제대로 氣를 펴지 못하고 橫死하고 마는가, 겨우 두 집내고 사는가, 아니면 거대한 勢力을 형성하여 그 판을 점령하는가는 바둑을 두는 사람이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다. 아무쪼록 『남명원보』가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있는 이‘판’에서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여, 우리의 固有한 精神世界를 回復하고 그것의 價値를 이땅에 바로 세우기 위한 큰 가르침을 전달하는 전령으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 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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