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기고

敬義의 현재적 의미는?

宋 準 湜
(진주 전문대 교수)

1

얼마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 아이가 우리집 가훈이 무엇인지 물어왔다. 무엇 때문에 그런지 물었더니 선생님이 집집마다 가훈을 조사해 오라는 숙제 때문이란다.

특별하게 가훈이라고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것도 없고, 내 대에 와서 만든 것도 없는 터라 이번이 기회다 싶어 가훈을 만들기로 했다. 여러 가지 안을 모든 가족들이 제기하고 그 중 가장 타당성이 있는 것으로 가훈을 정하기로 하였다. 몇 가지 안이 제기되기는 하였지만 막상 뚜렷한 것이 나오지 않아 내가 제기한 ‘敬·義’가 가훈으로 채택되었다. 나는 나름대로 南冥先生에 관한 일화와 선생의 학문상의 요체인 경·의의 의미를 설명하고 조사지에 커다랗게 “우리 집 가훈 : 경(敬)· 의(義)”라고 써 주었다.

다음 날, 딸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조사지를 신주단지 모시듯하며 학교에 갔다. 그날 저녁 딸 아이를 보니 아침의 의기양양한 모습과는 다르게 상당히 풀이 죽어 있었다. 왜냐고 그 이유를 물었더니 이유인 즉은 선생님이 각자의 가훈을 설명하고 자랑하라고 했는데 다른 친구들이 모두 자기 집 가훈을 설명하고 멋있게 자랑했는데 우리 집 가훈은 뜻이 어려워 그것을 제대로 설명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집 사람이 끼어 들었다. “다른 사람을 공경하고, 올바르게 살자”라고 설명했다면 간단하고 쉽게 이해했을 것을 내가 너무 현학적으로 설명해서 아이가 제대로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나를 원망했다. 나는 ‘敬·義’를 단순히 공경과 정의로 해석하는 아내의 입장에 어지간히 당혹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착잡했다.

2

중등학교 교과서(여기서는 1995년 3월 1일부터 시행해 온 6차 교육과정에 의해 편찬된 교재가 아니라, 그 이전의 5차 교육과정에 의해 편찬된 교과서를 논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 이유는 현재 일반인의 敬義觀에 영향을 준 것은 현행의 교과서가 아니라 이전의 교과서이기 때문이다)에서 우리 나라의 전통 윤리 중에서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성·경·오륜·신독·극기·수기 등을 들고 이들의 기본개념과 가치를 설명하고 있다.

먼저, 중학교 도덕 교과서의 ‘전통 도덕의 근본 정신’이라는 항목에서는, “우리의 도덕 정신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성(誠)과 경(敬)사상이 있다. 誠은 문자 그대로 말한 바(言)를 반드시 이루도록(成) 정성을 다하는 것이므로, 모든 행동의 근원이 되어왔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사람뿐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마치 자기 자신처럼 존중하여 왔다(敬). 이러한 우리의 도덕 정신은 사람 관계의 유형에 따라 바람직한 덕목으로 구체화되어 나타났다. 이것을 윤리라고 할 수 있는데, 五倫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오륜은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맺어 나가는 대표적인 인간 관계의 덕목을 다섯 가지로 집약해 놓은 것이다. 즉, 한 개인이 가정에서는 가족과 어떻게 더불어 살고 밖에서는 이웃과 어떻게 더불어 사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를 기본적으로 생각한 것이다. 오륜은 부모와 자식 사이, 임금과 신하 사이, 부부 사이, 어른과 아이 사이, 그리고 친구 사이에 지켜야할 사랑과 공경(親), 정의와 합리(義), 책임 이행과 상호 존중(別), 양보와 질서(序), 신의(信)의 덕목을 말한다. 이 중에서 오늘날 달라진 것은 임금과 신하 사이의 관계인데, 이것은 근본적으로는 국가와 국민 또는 공직자 사이의 윤리를 말하는 것으로, 아직도 중요한 인간 관계임에 틀림없다.”(한국교육개발원, 중학교 도덕2, 60-61면)고 하고 있다. 여기서는 결국 성과 경이 전통 도덕의 근본 정신이고 이를 근거로 하여 구체적으로 덕목화된 윤리가 오륜이라는 것이고 이들은 현대에 와서도 가치를 지니는 덕목으로 보고 있다. 위의 인용에서 볼 수 있듯이 誠은 誠實로 敬은 恭敬으로 義는 正義로 설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의 ‘한국 윤리의 전통’이란 항목에서는, “유교 윤리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誠·敬·愼獨·克己·修己 등의 사상을 강조하였다. ‘誠은 말한 바(言)를 반드시 이루도록 (誠)정성을 다하여 마음의 본체로서, 개인 행동의 근본이 되는 덕목이다. ‘경’이나 ‘신독’은 성실한 마음에 도달하기 위한 수양 방법으로서, 매사에 거짓이 없고 도리에 어긋남이 없도록 행동을 삼가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 윤리는 반드시 가족 생활, 사회 생활, 국가 생활에서의 실천윤리와 연결되어 孝, 敬愛, 禮,忠 사상으로 확대되었다.”(서울대학교 국민윤리 1종 도서 연구개발위원회, 고등학교 국민윤리, 92면)고 하며, 또한 “동양의 유학에서도 인간의 타고난 본성인 仁을 제대로 구현하기 위한 개인적 수양의 지침으로서 성과 경을 강조”위의 책 138면)한다는 언급이 있는데, 이는 유교윤리에 있어서 성과 경의 중요성과 이들의 개념을 설명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四端은 仁義禮智를 말하는 것인데 仁은 곤경에 처해 있는 사람을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 (惻隱之心)에서 나오고, 義는 의롭지 못한 일에 대하여 부끄러워하고 미워하는 마음(羞惡之心)에서 나오며, 禮는 남을 공경하고 사양하는 마음(辭讓之心)에서 나오며, 智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是非之心)에서 나온다.”(위의 책, 87면)고 하여 사단의 하나로서 義를 설명하고 있다.

위의 인용문이 어쩌면 현재 일반인이 敬이나 義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敬義에 대한 태도나 가치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대목으로 볼 수 있는데, 어느 곳에서도 敬이나 義에 대한 정확한 개념 규정이 없어 그저 두리뭉실하게 설명하고 있어 이들 개념들을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이러한 자의적 해석은 문화적 풍토가 다른 서구에서 발생하여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단어의 개념들과 결합하여 사용됨으로써 개념의 원래적 의미가 왜곡된 채 사용되고 있다. 그러니 아내가 敬을 恭敬으로 義를 正義로 규정하여 해석하는 것은 아내에게도 아니 일반 보통 사람의 잘못도 아니라 아니라 하겠다.

3

南冥의 문인 寒岡 鄭逑는‘성인이 성인되고 현인이 현인되는 것이 하늘에 올라 공중에 매달리듯 높고 멀어 이상한 일이 아니고 실로 인간 이치의 당연한 것으로 남자는 밭 갈고 여자는 베짜듯 직분의 예사로운 일인데 단지 사람에 따라 스스로 살피지 않고 스스로 수양하지 않아 이렇게 되는 이치를 아는 자는 드물고 행하는 자는 더욱 드물다’(寒岡集 卷9 雜著 會立議)고 한탄하고 있다. 이는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수양하기만 하면 누구나 성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로 그것을 실현할 방도를 모르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이 모두 성현 되기를 어렵게 보아 스스로 포기한다는 말로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렇게 되는 방도가 무엇인가? 송대 이후의 성리학자들은 이 방도를 ‘경의’에서 찾고 있다. 여기에는 남명이나 퇴계, 한강도 예외는 아니다.

敬의 일반적 의미는 朱子에 의해 정리된 것을 이후의 학자들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朱子는 敬을 성현 되는 학문의 始終을 이루는 요체로 보아 선인들이 제시한 敬의 네가지 조목에다 자신의 견해를 추가하여 경을 설명하고 있다. 네 가지 조목이란 主一無適(마음을 하나에 집중하여 다른 곳에 가지 않는 것), 整齊嚴肅(외모를 가지런히 하고 엄숙히 하는 것), 常惺惺法(정신을 항상 맑고 또렷이 하여 깨어 있는 각성의 상태에 있는 것), 其心收斂不容一物(마음이 하나에 집중하여 다른 일을 하지 않아 잠시도 소란이 없이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다 그는 畏(몸과 마음을 수렴하여 가지런히 하고 순일하게 해서 방종하지 않는 것)와 愼獨(자기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는 것)등을 추가하여 경의 의미를 밝히고 있다. 남명이나 퇴계 역시 이러한 주자의 경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계승하여 사용하고 있다.

義의 일반적 의미는 옳고 그른 것을 판가름 하고 마땅히 해야 할 행동과 해서는 안될 일을 구분해 주는 기준으로서 인간의 인위적 측면을 조절하고 규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곧 의는 외면적 행동과의 관련 속에서 행동의 실천과 규제하는 기준으로서 기능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외면적 행동과의 관련에서 볼때 義의 방식을 취하는 경우와 理의 방식을 취하는 두 가지 경우가 있는데 어떤 방식을 취하느냐에 따라 君子가 되기도 하고 小人이 되기도 한다. 宋代 이후 성리학에서는 義利之辨의 문제가 학술상 주요한 논제가 되어왔다. 따라서 義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기를 규제하면서 義를 실천하는 것이 학자의 의무라고 여기게 되었다.

송대 이후 성리학자들은 ‘敬義’를 ‘敬以直內 義以方外’,‘居敬集義’,‘敬義夾持’,‘主敬行義’ 등으로 자신의 관점에 따라 달리 표현하고 여기에 새로운 의미를 부과하기도 하지만 ‘敬義’가 성현되는 학문의 요체임을 인정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敬義를 학문의 요체로서 표방하고 있지만 도덕적 수양이 중시되는 성리학적 체계 내에서는 義의 입지는 敬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축소될 수 밖에 없었다. ‘경은 가운데서 주인 노릇을 하고, 의는 밖에서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敬主乎中 義防乎外)는 朱子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義는 敬의 보조자의 역할로 인식된 것이 일반적 경향이라 하겠다. 퇴계의 경우도 敬義의 균형있는 공부를 강조하고 있으나, 결국은 敬을 위주로 하면 그 결실로서 義가 정밀하고 仁에 익숙하게 되는 것이라 하여 義보다 敬이 더 근본적이라는 주자의 입장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남명이 ‘敬義’를 보는 입장은 송대 이후 다른 성리학자에 비하여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는 義를 敬에 종속시켜 보지 않고 양자를 대등하게 보고 있다. ‘內明者敬 外斷者義’라고 새겨 놓은 칼을 지니고 다녔으며, 山天齋의 벽에 ‘敬義’라는 두 글자를 써서 붙이고 敬義 두 글자로 돌아간다고 설파하고 있는 것 등이 그 예라 하겠다. 어떻게 보면 남명은 義를 敬보다 우위에 두는 느낌마저 든다. 남명이 경을 강조한 것은 경은 의를 실천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남명의 敬義觀은 성리학이 가진 이론 지향적인 면을 실천 지향적인 면으로의 방향전환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4

앞서 인용한 고등학교 국민윤리 교과서에서는 “이황과 이이는 인간의 심성을 실천으로 연결시켜 도덕적인 인간과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을 학문의 궁극 목적으로 삼았다. 조선 시대의 성리학은 이황과 이이에 이르러 그 절정을 이루었으며, 그들은 중국 주자학의 단계에서 벗어나 우리 나라 특유의 독자적인 성리학을 체계화하였다.”(앞의 책, 88면)고 하면서 퇴계와 율곡의 한국 유학사상의 위상을 평가하고 있는데, 敬義의 실현이 성리학의 본령이라고 한다면, 여기에 남명을 추가하는 것이 그 논리나 내용에 있어서 그 정당성을 확인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또한 “특히, 이이는 ‘성(誠)’사상에 근거한 務實的 經世論,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등의 분야에서의 社會 更張論, 言路 擴充에 입각한 安民, 利民, 爲民 사상 등을 강조하였는데 이는 오늘날의 민주주의와도 그 이념을 같이하고 있다.”(같은 책, 88면)고 하면서 현재적 관점에서 율곡을 평가하고 있다. 여기서 율곡 대신 남명으로, 誠 사상 대신 敬義 사상으로 대체한다 해도 크게 무리가 없으리라 본다.

敬은 자기존중,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자각과 각성, 주의집중과 마음의 안정상태의 유지라는 측면에서 내재적 가치를 가진 개념으로현재적 의미가 있다면, 義는 이러한 내면적 가치를 보편 타당한 원리에 입각하여 실행한다는 측면에서의 행동적 가치를 지닌 개념으로 현재적 의미를 찾을 수 있겠다. 그리고 양자의 결합에 의한 인간의 행위는 이론과 실천의 괴리를 극복할 수 있고, 내용과 형식을 완벽하게 갖춘 이상적 인간의 형성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가치로 자리 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


 g_home2.gi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