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儒敎란 무엇인가
-儒敎 文化圈의 歷史와 社會-

加 地 伸 行
(日本 大阪大學 敎授 )

1. 序

儒敎란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고 하자. 상대가 지식인, 비지식인을 불문하고 유교란 윤리도덕의 가르침이라고 답할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유교는 종교인가?’라는 질문을 하면 확실히 이러한 답이 나올 것이다. 즉 「유교는 종교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죽음(死)을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교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이다. 즉「죽음을 논하지 않는다. 그리고 현실생활에 있어서 윤리도덕을 설하는 것이 유교이다」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널리 보급되어 있고 유교를 탄생시킨 중국인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 더구나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물론 유교를 탄생시킨 중국인의 대부분이 그렇게 생각한다. 더구나 유교의 영향을 받은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물론 유교를 개념이나 지식으로서 이해하고 있는 西歐人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조상숭배 - 만일 조상숭배의 정신이나 그 祭祀를 유교에서 제거해 버리면 유교 체제는 붕괴되고 존재의의는 상실되고 만다. 그만큼 조상숭배는 유교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다.

유교에 있어서 조상숭배가 근원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초를 두고, 죽음과의 관계나 윤리도덕과의 관계를 논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철학 연구자의 거의 100%가 처음부터 「유교는 처음부터 죽음을 설하지 않는 것, 윤리도덕을 설하는 것」이란 것으로 믿고 조상숭배가 죽음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음에도 전혀 유교와 죽음과의 관계를 생각지 않고 오늘에 이르렀다.

이 삼자를 생각할 때 물론 (3)이 최우선이다.왜냐하면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면 (3)에서 당연히 (2)가 도출되어야 한다.

그런데 보통의 중국철학 연구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 (3)을 인정한다.이는 그들이나 나도 같은 생각이다. 그러나 그 다음이 다르다. 즉 조상숭배는 제사라는 의식으로 표현된다. 그 의식은 단지 형식이지 내용은 없다. 왜냐하면 죽음을 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참으로 비논리적인 생각이다. 그들은 (1) 즉 「유교는 죽음을 설하지 않는다」라는 선입견, 고정관념을 절대로 고집한다.

나의 견해, 즉 (3)에서 (2)로의 진행방향은 (3)의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 따른 논리적 결과이다. 보통 중국철학 연구자들의 견해 즉, (3)에서 (1)로의 진행방향은 실은 먼저 (1)이 있고 그 (1)을 (3)에 어떻게 적용시키는가에 노력을 하고, 그 다음 다시 역행시켜 (3)에서 (1)로 진행시키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즉, 그들의 생각은 (1) 「유교는 죽음을 설하지 않는다」라는 신념뿐이고 객관적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맹목적이다.

나는 그들과 같은 선입견을 갖지 않고 사실을 토대로 삼아 「유교란 무엇인가」를 논하여볼까 한다.

(一) 유교의 중요성

우선 ‘유교의 중요성’을 논하여 볼까한다. 먼저 종교란 무엇인가 그 정의를 내려보자.

구미제국은 산업혁명 이래 소위 선진국으로서 현대에 이르렀다. 그리고 마침 구미제국이 기독교 문화권이였기 때문에 구미문화의 근대에 있어서 세계적 보급은 동시에 기독교 문화의 보급이기도 하였다.

일본에 있어서는 명치유신 이후 구미제국의 문화가 대량으로 유입되고 그것들이 대학 등 고등 교육기관에서 강의되었다. 즉 대학 등 고등 교육기관에 있어서 구미제국 문화나 학술의 소개가 중심이 되어 그 경향은 오늘에 있어서 그대로 계속되고 있다.

종교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명치시대의 대학에 있어서의 종교학은 구미의 기독교의 소개, 다시 말해서 기독교 신학을 핵으로 하는 종교학의 소개였다. 그 결과 종교의 개념이란 ‘영원한 절대자에 대하여 구제를 기원하는 절대적 신앙’이라는 것이다. 즉, 기독교와 같이 유일신을 인정하고 그러한 최고 절대자를 신앙하는 것이 종교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예컨데 기독교를 비롯한 유일신만을 신으로 하는 입장에서의 정의에 불과하다. 동북아시아(중국,한국,일본)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다신교를 인정하는 감각이고 유일신이란 감각은 없다.

기독교 신자에 있어서 신은 유일한 것이므로 그 신을 두려워하나. 동아시아인들은 다신교적이므로 자기가 믿는 신 이외의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가 믿는 신이라도 효험이 없다고 알면 간단히 그 신을 버리고 다른 신을 믿기도 한다.

그러한 동아시아인의 감각을 때로는 기독교신자들은 조소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거만한 태도이고 동북아시아인의 마음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사실 명치유신 이래 기독교가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일본의 기독교 신자는 전 종교인구의 2%에도 미치지 못하고 결코 늘지 않는다.

기독교 신자는 신(그들의 유일신)을 두려워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인은 자기가 믿는 신을 포함하여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면 동아시아인은 무엇을 가장 무서워하는가? 그것은 죽음이다.

왜 죽음을 무서워하는가? 동아시아인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현세만 믿는다. 기독교가 말하는 천국(혹은 지옥), 불교가 말하는 극락과 같은 것은 안 믿는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은 즐거운 곳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경우, 아담과 이브의 죄 이래 인간은 원죄를 짊어지고 신으로부터의 벌로서 남자는 노동을, 여자는 출산의 고통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이로서는 이 세상이 즐겁다는 생각이 나오지 않는다.

불교의 경우도,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고생이다. 그러기에 기독교나 불교는 그 고생을 구해주는 신이나 불타를 원하며, 그 결과 신이나 불타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 세상은 즐거운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동아시아인에 있어서 고민이란 이 세상에서 떠나는 것이다. 즉 죽음이다. 더구나 기독교 신자와 같이 신에 불려간 것도 아니고 불교도와 같이 윤회전생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단 고생의 세계)도 아니다. 동북아시아인에게 밀어닥치는 것은 무서운 죽음뿐이다. 그러므로 1분이라도 1초라도 오래도록 이 세상에 살고 싶다고 원한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은 반드시 닥쳐온다. 인간은 이를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사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라고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납득할 만한 답을 기대하여마지 않는다. 그래서 그 설명이 납득되었을 때 사람들은 그것을 믿는다. 즉 종교가 성립되는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하다. 동북아시아인에 있어서 종교란 죽음 및 사후의 설명자를 말한다. 이것은 내가 주장하는 종교의 정의이다.

그리고 동북아시아인에 대하여 이 죽음 및 사후의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는데 성공한 것이 유교이며 후에 도교도 이점에 대하여 성공했다. 즉 유교는 동북아시아인이 대하여 종교로서 성공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교는 동북아시아인의 마음 속 깊이 살았으나 기독교(중동아시아에서 발생)나 불교(남아시아에서 발생)등 타지역의 종교는 동북아시아에 있어서 아무리 노력하여도 종교로서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즉시 반론이 나올 것이다. 불교는 동북아시아에서 정착하고 있지 않는가라고. 그러나 그것은 틀린 견해이다. 동북아시아의 불교 - 중국, 한국, 일본에 있어서의 불교의 실태는 인도에서 발생한 불교와 양상을 달리하고 있다. 즉, 동북아시아의 불교는 유교의 조상숭배를 받아들여 소위 유교적 색채를 띤 불교인 것이다. 인도에서 발생한 유교의 본래 모습과는 상이한 것이다.

- 5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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