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논단
南冥의 敎育에 있어서直觀主義的 傾向
史 載 明
(경상대
강사)
Ⅰ
남명의 교육사상은 『학기류편』에 있는 24개의 「학기도」를 통해서 구명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남명이 성리학을 탐구하면서 절실하고 긴요한 내용이라고 생각한 부분을 발췌하여 기록하고, 다시 圖로써 알기 쉽게 정리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학기류편』에 실려있는 理學의 내용이해를 촉진시키기 위해 諸說을 도식화하였으며, 그 중에는 圖를 자작한 것도 있고, 기존의 학설과 圖를 인용한 것도 있다.
남명은 도식을 활용함으로써 어문적 교수방법의 단점을 보완하는 하나의 독특한 교수법으로서 교수-학습에 시각적인 효과를 활용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도식이 교육현장에 직접적으로 활용된 사실은 17세기 서양의 교육사상 가운데서 감각적 실학주의 교육사상의 시각적 자료를 활용한 사실에서 그 근거를 찾을 수 있으며, 그 근거에 의해 직관교수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직관교수는 17세기의 철학적 경험론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서 체계화된 형태의 교수법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직관과 직관교수에 대한 개념을 교육학의 측면에서 살펴보면, “直觀은 일반적으로 사유의 작용 없이 대상을 직접 파악하는 작용, 또는 그 결과로 얻은 내용을 말한다. 그 분류는 보통 감각지각이라고 하는 외적인 감성적 직관과 어떤 이상적인 것을 파악하려는 내적인 초감성적 직관으로 구분된다. 교육에 있어서의 직관은 보통 감각적 지각을 통하여 외계 사물에 관한 구체적인 지식을 얻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直觀敎授는 교수법 상에서 직관이라는 말을 주로 감각기관을 통한 경험을 가리킨다. 즉, 자연이라든가 사회사상에 대한 지식을 습득시키는데 있어서 문자나 문장 또는 구술에 의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실제의 사상을 관찰시키고, 또 그것이 불가능할 경우에는 표본이나 그림 등을 이용하여 직접 관찰을 통해서 직접적이고 실증적인 경험을 존중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렇듯 직관교수는 ‘추상적인 개념이나 설명을 인위적으로 꾸며서 그린 그림을 가지고 학습자로 하여금 감각기관을 통해서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직접 사물을 보고 마음으로 그 사물을 대하는 것을 의미하는 인식활동으로서의 직관은 경험에서 얻어지는 외적 직관과 본질적 마음에서 비롯된 내적 직관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는 감각적인 직관 또는 감각기관을 가지고 하는 경험을 의미하고, 후자는 학습자로 하여금 道를 궁극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모든 분별을 초월할 수 있는 통찰을 얻게 하기 위해서는 직관적인 방법을 통해서 가능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의 경우에서 변하지 않고 그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닌 자연은 교사-학습자간의 의사소통 수단인 언어적인 매개물 없이 체득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포함한 삼라만상이 변화하는 가운데서 각자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길은 이 변화를 초월하고 있는 근본원리로서의 道를 직관적으로 통찰하는 것이다.
직관의 원리는 합자연성의 원리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직관은 감각적 지각이란 의미에서 개념이나 언어와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직관에서 출발하는 것이 인식을 발달시키는데 적절한 자연적 법칙인 것이다. 그래서 감각적 지각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것인 데 반하여, 개념은 그 감각적 지각에 정신적인 작용을 가하여서 생겨나는 것이며, 언어는 다시 그 개념의 부호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적 지각, 즉 직관이 인식의 자연적 기초이며 처음부터 감각 속에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오성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직관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며, 개념이나 언어에서 출발하는 것은 부자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직관의 원리라고 할 때 실물교수를 가리키는 J.H.Comenius(1590-1670)와 사물의 본질과 이 세상의 도덕적인 질서를 자신의 심안으로 예감하는 J.H. Pestalozzi (1746-1827)의 견해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직관적 방법은 남명의 경우에서 단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를 다음과 같이 관련지을 수 있다.
|
직관의 방법 |
Cemenius |
쉬운 것→어려운 것 |
Pestalozzi |
단순→복잡 |
남명 |
下學而上達 |
남명의 교육이 일상생활에 가까운 사물과 인간관계에서부터 처리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함을 종지로 한 것은 다음의 기록을 통해서 알 수 있다.
“曺先生으로 말하오면 더우기 아래에서부터 배워 올라가는 것을 주로 삼아서, 항상 말씀하기를 ‘學이라 하면 어버이를 섬기고 兄을 따르는 데 벗어나지 않는다. 만약 이를 힘쓰지 않는다면 바로 人事上에서 天理를 求하지 않는 것이니 끝내 소득이 없는 것이다'(『星湖僿說』 卷 四, 曺先生 則尤以下學爲主曰 爲學不出事親從兄 若不務此是不於人事上求天理 終無所得).”
이것은 그가 下學하여 上達하는 학문적 태도를 취하였음을 보여준다. 즉, 아래로는 인사를 배우고 위로는 천리를 통하는 것에 학문하는 의의를 둔 것이다. 만약 이러한 하학적인 것을 하지 않고 지식을 위한 지식 만을 넓히려고 한다면 이것은 문자만 일삼는 공부일 뿐 수신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下學而上達'의 공부를 위해서 매일 같이 학습할 내용을 단계별로 정하고, 학습자에게 필요한 내용을 선별해서 교육하고, 쉬운 것에서부터 점점 더 어려운 것으로 진행하였으며, 하나의 법칙을 가르치기 전에 실례를 들어 학습자가 스스로 깨우치게 한 것이다.
Ⅱ
당시 조선시대의 교육상황이 지식위주의 암송교육과 교사중심의 교육으로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남명이 경험중심적이고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하였다는 사실은 직관교수론적 견해를 견지한 교육사상가로 볼 수 있는 2가지의 근거를 마련해 준다.
첫째, 감각적인 직관 또는 감각기관을 가지고 하는 경험을 들 수 있다. 남명의 직관교재라 할 수 있는 『학기류편』의 「학기도」는 선유의 언행을 모아 찬술한 책으로서 전 5권으로 되어 있으며, 공부하면서 긴요하고 절실한 부분을 발췌하여 기록하고, 그 내용을 24개의 圖로써 도표화한 것이다. 『학기류편』과 「학기도」에 나타나는 직관주의적 경향은 下學을 기반으로 해서 上達에 이르는 견해와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곳에 이르는 방법적인 원리로 고찰할 수 있다. 먼저 하학에서 상달에 이르는 견해를 살펴보면,
“배우는 자는 모름지기 밑에서부터 배워서 위로 통한다고 하는 말을 지킴이 이에 학문하는 요령이다(『學記類編』 卷 二, 學者 須守下學上達之語 乃學之要).”
“모름지기 이 내외의 도를 합쳐서 하늘과 사람을 한결같게 하고 위 아래를 가지런하게 해서 밑에서부터 배워서 위로 통한다(『學記類編』 卷 二, 須是合內外之道 一天人齊上下 下學而上達).”
“성인이 사람을 가르치면서 하학에 대한 일을 많이 말하고 상달에 대한 일을 적게 말했는데, 하학공부는 많이 함이 좋다. 단지 하학을 환하게 알고, 또 조심해서 반드시 일마다 환하게 알고 넘어가야 장래에 관통할 곳에 필요하게 된다. 하학을 환하게 알지 않고 다만 상달에 대한 일만 알면 할만한 일이 도무지 없어, 외롭고 메마를 듯하다(『學記類編』 卷 二, 聖賢敎人 多說下學事 少說上達事 說下學工夫要多也好 但只理會下學 又局促了 須事事理會過 將來也要知箇貫通處 不去理會下學 只理會上達 卽都無事 可做 恐孤單枯燥).”
“지금의 학자는 절근을 버리고 고원에 달리니 학문을 하는 것이 사친·경형·제장·자유에 있는 것인데, 이것에는 힘쓰지 않고 갑자기 성명의 심오한 것만 궁탐하니 이것은 인사는 하지 않고 천리만 구하는 것이니 마음에 실득이 없는 것이다. 마땅히 깊이 반성해야 될 것이다(成大谷撰 「墓碣銘」(幷書)(『南冥集』), 今之學者 捨切近 趨高遠不是小病 爲學 初不出事親敬兄悌長慈幼之間 如或不勉於此 而遽欲窮探性命之奧是不 於人事上求天理 終無實得).”
등이 있다.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에 이르는 방법적 원리를 살펴보면,
“학문을 하는 데에 반드시 차례가 있다. 까닭에 쇄소하고 응대하며 진퇴하는 것으로 부터 이상이 모두 차례이다. 가까운 데에 말미암아 먼 데에 미치고 거치른 데에서 정한 데에 이름이 학문하는 방법이다(『學記類編』 卷 二, 學必有序 故自灑掃應對進退而 往皆序也 由近以及遠 自粗以至精 學之方也).”
“사람의 한 몸이 사물을 응접함에 있어서, 의리가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사람이 비록 능히 다 알지는 못하나 요는 이미 알고 있는 바를 힘껏 행하는 데에 있다. 그리고 이르지 못한 곳은 힘껏 구하면 가까운 데에서부터 먼 데에 미치며, 조잡함을 말미 암아서 정순한 데에 들어 가게 되는데, 순순하게 차례가 있어서 날마다 볼 만한 효과가 있을 것이다(『學記類編』 卷 三, 人之一身應 事接物 無非義理之所在 人雖不能盡知 然要在 力行其所己知 而勉求其所未至 則自近及遠 由粗入精 循循有序 而日有可見之功矣).”
“반드시 마음을 먼저 밝혀서 수양할 바를 안 다음에 힘껏 행해서 지극함을 구할 것이다(『學記類編』 卷 二, 必先明諸心 知所養然後 力行以求至焉).”
등이 있다.
둘째, 학습자로 하여금 道를 궁극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하고 모든 분별을 초월할 수 있는 통찰을 얻기 위해서는 직관적인 방법을 통해서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노장적 관점에 근거한 직관주의적 경향으로서 다음의 표현을 통해서 잘 나타난다.
“능히 道를 체득하지 못하면서 능히 사려없는 자는 없다. 그런 까닭에 앉아서 잊으려고 함이 도리어 이 앉아서 달리는 것이니, 잊으려고 하는 마음이 이 사려이다(『學記類編』 卷 三, 未有不能體道 而能無思者 故坐忘却是坐馳 有忘之心是思).”
“사람의 마음은 허령하나, 말라죽은 나무와 싸늘하게 식은 재처럼 아무 일도 생각하지 않는 이치는 없다. 요는 사려할만한 곳에 정밀하게 함이 마땅하다(『學記類編』 卷 三, 人心虛靈 無槁木死灰不思之理 要當精於可思慮處).”
즉, 道의 체득과 실현을 위해 사용한 방법으로서 앉아서 잊으려고 하는 ‘坐忘'을 활용한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렇듯 남명은 교수-학습에서 구체에서 추상으로,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의 교설을 진행시켰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남명집』과 『학기류편』을 통해 볼 때, 가장 추상적인 道의 달성을 지향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설명하는 과정에서는 가장 구체적이고 쉬운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추상적이고 어려운 道에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함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자연현상·식물계·동물계·인체·불구자·제왕·현인들 등에 관한 아주 일상적이고 알기 쉬운 각종 구체적인 사례들을 들어 사물들의 형성과정과 사례들의 발생과 진행과정, 그리고 우리의 삶 자체에서 당면하는 사소한 일로부터 복잡한 일까지를 망라하여, 이들을 절대적 진리인 道에로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주관보다는 객관적 입장에서 형이상의 道와 형이하의 현상계를 자연스럽게 연결·통합하고 있는 것이다.
남명은 사리를 깨달아서 아는 대로 먼저 할 것과 뒤에 할 것 그리고 천천히 할 것과 급히 할 것 등의 차례를 정하고 있으니 그 근본을 세우고 순서대로 해 나갈 것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그는 일상생활의 가까운 곳에서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하여 점진적으로 먼 곳의 관념론적 학문을 익히되 하학위주의 기초를 튼튼히 하면 상달의 공부에 이롭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物을 연구해서 깨달음이 지극하면 그칠 바를 알게 될 것(『學記類編』 卷 三, 物格知至 則知所止矣)”이라고 하였던 것이다.
이와 같이 남명의 교육은 감각이나 이성을 통한 인식적 측면이나 지적인 측면을 강조한다. 이는 당시 형식주의적이고 언어주의적인 교수에 반대하여 감각기관을 통한 교육을 강조하는 직관주의적인 입장을 취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교수내용을 그림이나 도표로써 제작하여 학습자가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는 점은 교육장면에서 직관교수를 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것이다.
Ⅲ
교수-학습에서 학습자로 하여금 학습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남명은 그림을 통한 구체적 학습자료의 활용을 강조하였다.
비록 직관교수라는 용어가 조선시대에 사용되지는 않았지만 그림이나 도식를 이용한 교재를 활용하였다는 근거가 서지학상으로 많이 보이며, 단지 이러한 사실이 정리되고 체계화되어 있지 않음으로 인해서 한국 고유의 교육사상이라고 할 수 있는 실물교수가 서양의 방법과 원리를 빌어 쓴 결과로 밖에 인식되지 않는 문제점이 있었다.
남명의 직관주의적 경향은 학습자로 하여금 가장 구체적이고 쉬운 것으로부터 출발하여 추상적이고 어려운 것으로 나아가게 하며, 道의 세계를 직관하거나 통찰함으로서 도달할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의 교육적 상황이 지식을 위주로 한 암송중심의 교육과 교사중심의 교육이 주종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수-학습에서 어문주의를 지양하고 직관교수를 하였다는 점과 ‘坐忘'을 통한 경험중심적이고 학습자 중심의 교육을 하였다는 사실은 직관주의적 경향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직관주의적 경향은 서양교육사에서 J. A. Comenius(1592-1670)의 『世界圖繪』(Orbis Sensualism Pictus, 1657)보다도 무려 1세기 반이나 앞서 있으며, 아울러 교수-학습의 활동에서 감각적 기관을 통한 직관교수를 하였다는 사실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직관교수사상을 지녔던 교육사상가로 평가할 수 있다.
이와 같이 교육사상에 대한 논의를 통해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서양에서 코메니우스의 『세계도회』가 교과서에 삽화를 넣고 교수한 최초의 직관교수교재라고 한다면, 조선시대에도 이러한 직관교재를 사용하여 교수-학습의 현장에서 직접적으로 활용한 견해가 적지 않게 발견된다는 점을 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