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1)
남명학파 고문헌 소개(2)

『唐谷實紀』

金 敬 洙
(本院 事務局長)

1.저자 및 간행경과

이 책의 본 제목은 『唐谷鄭先生實紀』이니, 鄭希輔(1488∼1547)의 저술과 후인의 글을 합하여 편찬한 것이다. 엄밀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이 책은 南冥學과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다고 할 수 있다. 唐谷은 실제로 南冥보다 13년이나 년상이고, 두 사람 사이에 교유가 있었다는 기록을 현재로서는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곡의 門人인 玉溪 盧 은 남명과 깊은 친분이 있었던 종유인물이며, 禮學 및 易學에 밝았던 인물인 介菴 姜翼을 비롯하여 德溪 吳健·梅村 鄭復顯· 溪 林希茂·養性軒 都希齡 등 많은 인물들이 당곡의 門人인 동시에 남명의 문인이므로 그 관련성이 적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보다 큰 의미에서 보면, 같은 영남사람파의 계열에 속하면서 특히 강우학파의 영역에서 살았으므로 당시의 실정을 고려한다면, 이 후 강우지역이 거의 남명학파로 통일되었던 상황이므로 오히려 중요성이 두드러지는 인물이라고 할 수도 있다. 특히나 당곡은, 남명이 함양지방 儒學의 宗師라고 추앙한 一 鄭汝昌 이 후, 이 지역에서 성리학을 계승하고 교육한 대표적인 사람이므로 남명학파와의 관련성을 무시할 수 없다고 보여진다.

唐谷은, 정확한 기록은 확인할 수 없지만, 젊은 시절에 南海로부터 咸陽으로 이사하여 성리학을 연구하고 교육한 인물이다. 本貫은 晉陽이며, 그가 함양의 당곡으로 이사하고 난 후 그 지명을 따서 號로 삼았다. 그의 문하에서 수업한 두드러진 문인들을 열거해 보면, 盧玉溪·李靑蓮·梁九拙·姜介庵·吳德溪·蘇暘谷·鄭梅村·曺梅庵·林 溪·盧徒庵·都養性軒·梁竹庵·禹愚泉 등이 있다. 그의 死後에는 함양의 洲祠 및 남해의 雲谷書院에서 享祀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일 사항은 임진왜란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향후 약 17년간에 걸친 일기인 『孤臺日錄』을 남긴 孤臺 鄭慶雲이 바로 당곡의 손자라는 사실이다. 정경운은 來庵 鄭仁弘의 문인인데, 내암을 도와 임진왜란에 의병으로 직접 참여했으며 당시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긴 인물이다. 따라서 그 책은 현재 남아 있는 임진왜란 당시의 영남지방 의병활동에 관한 기록으로는 가장 믿을 수 있고, 비교적 상세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이 후 남명학파의 동향에 대해서도 자세한 정보들을 싣고 있으므로 대단히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고대일록』에 대해서는 다음에 언급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당곡실기』는 上下 2권 1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당곡은 대단히 많은 분량의 저술을 남겼음이 여러 기록들에서 확인된다. 이는 그가 六經註釋 8권을 남겼다는 기록도 있으며, 그 외에도 성리학에 대한 저술이 많았는데 모두가 임진왜란에 소실되어 수습하지 못했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는 기록도 있다. 그래서 나머지 중에서 수습할 수 있었던 단편적인 글들을 모아 책으로 간행한 것인데, 그 경과를 유추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책의 간행은 柳疇睦이 쓴 서문에 의하면, ‘崇禎紀元後四乙丑’이라고 되어 있고, 또한 奇正鎭이 쓴 발문에도 ‘乙丑榴夏’라고 되어 있어 1865년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는 그 보다 뒤에 발간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발문 뒤에 다시 몇 개의 발문이 있는데 한결같이 기축년에 간행했음을 표시하고 있고, 그 가운데 鄭煥周가 쓴 내용의 끝에 ‘崇禎五己丑淸和節’이라고 년도가 표시되어 있으니, 바로 1889년에 해당되는 해임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책의 간행 年記가 이와 같이 차이가 있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책 끝에 실린 11代孫 顯楙가 쓴 발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해 보면, 純祖 庚寅年부터 집안의 증조부인 農窩公 夢朝가 士林의 뜻을 모아 간행을 위한 작업을 시작하였으나 일을 마치지 못했는데, 그의 손자인 大翊이 조부의 뜻을 이어 마침내 간행하였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유주목의 서문과 기정진의 발문은 처음 일을 추진할 당시에 받아 둔 원고로 볼 수 있으며, 뒤에 추가된 발문들은 실제 책의 간행에 즈음하여 덧붙인 것으로 보면 무난하다고 하겠다.

2.내용과 특징

『당곡실기』의 편집체제는 맨 앞에 유주목의 서문이 있고, 상권에는 당곡이 직접 쓴 글들을 모았으며, 하권은 부록으로써 後人들이 당곡에 대해서 쓴 글들과 책의 간행에 즈음하여 쓴 발문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상권의 앞에는 詩 7首가 있어 그의 感性세계를 엿볼 수 있으며, 그 다음에 「九思賦」1편을 실었는데 이는 그의 수양록과 학문론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그 아래에는 성리학에 관한 여러 단편적인 저술들을 性理雜著라 하여 묶었는데, 이것은 그의 성리학에 대한 이해의 수준을 알아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당시 영남사림파에서 성리학을 수용하고 있었던 정도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되는 것이라고 보여진다. 초기 영남사림파의 특징이 대체적으로 『소학』과 『주자가례』에 의거한 도덕적 수양을 중시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 상황에서, 이와 같이 성리학의 핵심적인 논점들에 대한 저술들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고 하겠다.

그 내용들은 제목들만 보아도 알 수 있으므로 이들을 열거해 보이면 다음과 같다. 「論心性說」「論心性情之名」「格致性正說」「大學經一章血 」「仁包四德說」「仁含義禮智」「公而以人體之爲仁說」「泛應曲當用各不同說」「禮字說」「禮字義」「道字義」「智字義」「忠恕信字義」「四端七情」「論四端七情之發」「知屬氣行屬質說」등이다. 이는 당곡이 『대학』과 『중용』에 정심했다는 기록들에서 유추해 보아도 성리학의 핵심 논점들에 대해 상당한 조예를 가지고 있었음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고 하겠다.

그 다음은 易學圖象總論의 내용을 실었는데, 이는 조선조 선비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역학에 대한 이해를 저술한 것이다. 특징적인 것은 「包義仰觀俯察畵八卦圖」「則河圖以畵八卦圖」「伸圓圖爲橫圖」「五行生旺圖」등의 그림을 그린 것이다.

하권의 내용 중에 후인들의 당곡에 대한 기록으로는「事實大略」「墓誌銘」「墓碣銘」등이 있고, 輓章 2首와 祭文을 비롯하여 다른 곳에서 발췌한 「諸賢讚述」「題儒行錄」 및 「門人錄」, 그리고 당곡을 향사하고 있는 洲祠와 雲谷書院의 文件이 5편 실려 있다.

이상에서 개략적으로 소개한 『당곡실기』는 그 내용면에서 풍부하거나 자세하지는 않지만, 조선조 중기 영남사림파의 학문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충분히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보여진다. 뿐만 아니라, 당곡이 영남학파의 형성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서도 새롭게 조명해 볼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여지며, 이로써 남명학파와의 관련성도 유추해 볼 수 있는 단서가 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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