歸去來辭

金 忠 烈
(本院 院長, 高麗大 大學院長)

내가 처음 고향을 등진 것은 열 여섯 사춘기 시절로, 타고난 운명이 한스러워 중이 될 심산으로 오대산 방한암스님을 찾아간 것이다. 그러나 한암스님이 한사코 받아들이질 않아, 한 달만에 그 원망스럽던 고향으로 발길을 다시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이 후 스무살 때 6.25전쟁이 발발했다. 처음에는 고향을 떠날 생각이 별반 없었으나, 집안 식구들의 안위 때문에 야밤 도주하듯 몰래 집을 빠져 나와야만 했다. 그로부터 46년 세월 동안 나는 失鄕民은 아니지만 異鄕民 처지로 살아왔다. 비록 어머님이 생존해 계실 때에는 사뭇 고향이 그립기도 했지만,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의 고향은 타향과 진배없이 되어 나의 가슴 속에서 점점 멀어져만 갔다.

타향살이 46년! 6년은 전쟁터에서, 12년은 대만, 3년 반은 대구, 1년 반은 미국 그리고 약 23년은 서울에서 보냈다. 역마살을 타고난 영문인지 많은 시간 많은 곳을 돌아다닌 편이다. 또한 틈틈이 동남아시아·미대륙·유럽·중국대륙 등 세상 곳곳을 거의 다 누볐으니, 때로는 고향을 떠나도 아주 멀리 멀리 떠났던 셈이다.

돌이켜 보건대, 20대엔 어쩌다 고향을 찾으면 집과 마을이 그렇게 초라해 보일 수가 없었고 산천 역시 어설프게만 다가와, 고향에 대한 정이 그리 솟질 않았었다. 30대가 되어서는 그나마 반겨 주던 옛 사람들은 가고 없고 새로 태어난 아이들은 생소하게만 느껴져, 고향은 아에 타향과 다를 바 없었다. 40대가 되면서 나는 이왕 고향을 등졌으니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 볼 요량으로 산수가 좋다는 이곳 저곳을 찾아다녀 보았지만, 살 만한 곳은 모두 옛 현인들이 이미 선점한 터라 마땅히 발붙일 수가 없었다. 50대가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다시 찾아드니, “우물에 침뱉고 가더니, 그 우물을 다시 찾아와 마시는”꼴이 되었다. 그래도 고향은 포근한 어머니 품인 양 말없이 나를 감싸안아 주었다.

다행히 풍수 좋은 산천의 한 갈피를 차지할 수 있었다.우선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나무를 심어 터전을 다지고 나서, 책을 간직할 가건물 서재를 지었다. 그리고 그 곳에 기거하면서 모든 것을 창업하듯이 길을 닦고, 우물을 파고, 전기 가설을 했다. 이렇게 해서 비록 고향이라고는 하지만 마치 외지 사람이 새롭게 고향을 일구는 것처럼, 새 둥지를 틀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작년에는 서재를 겸한 살림집을 장만하고 아울러 주위 환경을 단장하여 제법 그럴듯한 모양새를 띤 보금자리를 갖추게 되었다. 속담에 “제 눈에 안경이라”고는 하지만 나의 고향은 참으로 아름답고 곱다. 뒷켠에는 日傘峯(400m)이 좌우로 산자락을 드리우며 너그러이 부여안을 듯 친근하게 자리잡고 있고, 앞에는 그리 넓지 않은 들판 사이로 蟾江의 맑은 물이 활 모양으로 휘어져 동에서 서로 유유히 흐르고 있다. 풍수지리설로 말하자면 그야말로 背山臨水가 잘 짜여진 명당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강을 따라 500여 미터쯤 내려가 물줄기가 굽어도는 곳에 맞닿으면 유명한 翠屛山이 기암절벽의 신비로운 자태를 강물에 드리운 채 서쪽을 막아 주고 있다. 동남방이 트이고 서북방이 막혀 있으니 가히 천연요새로써 손색이 없다고 할만 하다.

강 건너 편에는 동쪽으로 麒麟山(建登山)이 평지에 우뚝 솟아 있고, 그 산자락이 나즈막이 강언덕을 이루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내 처소를 향해 큰 절을 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그 강언덕 저 너머로 嗚鳳山과 天馬山이 案山을 이루고, 멀리 동북쪽으로는 雉岳山이 서남쪽으로는 彌勒山이 빙 둘러 감싸고 있다. 그 옛날 지관이 이곳을 ‘觀音大坐形’이라 점쳤다고 하는데, 지금은 줄여서 그저 대좌리라 부른다.

이제 8월 말이면 정년 퇴직을 맞이하여 내가 개척한 이 보금자리로 돌아간다.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고 마음 설렌다. 어서 빨리 그 날이 왔으면 하고 손꼽아 기다려진다. 맘껏 욕심을 부려 앞으로 약 30여 년! 이 다시 찾은 보금자리에서 닭이 알을 품어 병아리를 부화하듯 나의 학문을 부화해 내고, 그야말로 옛 達人들이 생을 향유했듯이 나의 餘生을 마지막으로 陶冶할 것이다. 옛 자료를 들추다 우연히 처음 가출할 때의 심정이 짙게 베어 있는 시를 발견했다.

그래서 문득 이제 귀가할 때의 심정은 어떻게 담아 낼까 생각하다, 옛 詩의 韻을 그대로 따서 한 수 엮어 보았다. 꼭 50년 시간의 간격을 둔 정감이어서 좋은 대비가 될 것 같다. 여기에 두 수를 모두 적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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