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선생사전(2)
南冥 曺植先生 儀容에 관한 小考
金 忠 烈
(本院 院長,高麗大 大學院長)
一.
옛 사람들의 人物形容은 주로 도덕적 평가에 치우쳐 있어서, 繪畵的 描寫가 거의 없고 그 인물에서 풍기는 風範과 意象을 찬미하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리하여 얼굴 바탕·이목구비의 생김새·몸매 등을 구체적으로 적어 놓은 글이 거의 없다.
이는 南冥 曺植先生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다만 선생의 衣着과 佩帶에 있어 당시 일반 선비들과는 다르게 방울과 칼을 차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용모는 상상해서 그릴 수밖에 없겠지만, 儀態만은 방울과 칼을 그려 넣어 특징있게 해야 할 것이다.
二.
남명선생의 儀容에 관한 문헌상의 기록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器宇高 , 容貌粹然, 端嚴方正, 剛毅精敏, 冠頂帶腰, 肩背 直, 威儀容止, 自有準則”(키가 훤칠하고 얼굴이 깨끗하다. 몸가짐이 단정하고 의지가 굳고 민첩하다. 머리에 冠을 쓰고, 허리에 띠를 둘렀으며 앉은 자세는 허리를 곧게 펴고 어깨를 늘어뜨리지 않고 올려 세우고 있다. 위엄있는 행동은 스스로 법도에 맞았다.)- 이상 成大谷이 지은 墓碣에서 -
2.“虛明灑落, 玉潔氷淸, 泰山秋風, 俯壓偸風”(마음은 늘 한 점 티끌도 없이 옥같이 맑고 얼음같이 투명했으며, 기개는 태산 같이 우뚝하고 추풍처럼 냉철하여 세상의 俗氣를 壓倒한다.) - 吳德溪의 祭文에서 -
3.“先生器宇淸高, 兩目炯耀. 望之非其塵世間人物”(선생의 체격은 깨끗하고 높으셨으며, 두 눈은 맑게 빛나 바라보면 속세 사람이 아니었다)- 南冥先生別集 卷二 言行總錄에서 -
4.“常佩金鈴而喚醒,號曰惺惺子”(늘 금방울을 차고 다니면서 그 소리로 경각심을 일깨우곤 하니 이를 惺惺子라 불렀다)- 燃藜室記述 卷十一 138쪽에서 -
5.“先生常佩寶刀 李相國陽元爲本道監司, 來謁先生, 因指之曰 ; 此劍得無重乎? 先生曰 ; 何重之有, 吾念相公腰下金帶爲重也. 李謝曰 ; 材薄任重, 恐未堪也”(선생은 늘 보검을 차셨다. 李陽元이 慶尙監司가 되어 선생을 拜謁함에, 그 검을 보고 ‘무겁지 않으십니까?’라고 물으니, 선생께서는 ‘뭐가 무거울 것이 있겠는가? 내 생각에는 그대의 허리에 찬 돈 주머니가 무거울 것 같은데…’라고 하시니, 監司는 사죄하며 ‘재주가 없이 무거운 책임을 맡아 잘 해낼지 걱정입니다’라고 하였다) - 南冥先生別集 卷二 言行總錄에서 -
6.“先生愛佩刀, 銘曰 ; 內明者敬, 外斷者義”(선생은 보검 차시는 것을 좋아했다.그 검에 銘을 ‘안으로 마음을 밝게 하는 것은 敬이요, 밖으로 是非를 決斷하는 것은 義’라고 새겨 놓으셨다) - 상동 -
三.
추측되는 南冥先生의 儀容 이상의 몇 가지 기록을 통해, 선생은 키가 훤칠하게 크시고, 그 몸체는 뚱뚱하지 않고 날씬한 편이시며, 얼굴 바탕은 약간 갸름하면서 콧날이 우뚝하시고 눈썹이 일직선에 끝이 약간 치켜 올라갔고, 섶이 많지 않으나 희고 길며 빳빳하여 힘이 있으심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눈은 鳳眼에 瞳子가 형형히 빛나셨다. 꽉 다운 입모습은 端正하며, 귀는 길고 다소곳하였으며, 수염은 숱은 그리 많지 않으나 상당히 길게 드리웠고 잘 정돈되어 있었던 것으로 想像된다.
무엇보다도 얼굴에서 풍기는 기개가 늠름하고 威嚴을 갖추어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을 준다. 흔히 선생을 形容하여 ‘泰山喬岳, 秋霜烈日 ’이라고 하니 온화한 印像보다는 예리하고 근엄한 氣風과 脫俗하고 粹然한 質感을 주는 인상이었던 것같다.
晦齋先生이 慶尙監司로 갔을 때, 한 번 만나자고 편지를 보내자, “벼슬을 그만두거든 서로 뿔관을 쓰고 만나도 늦지 않는다”고 한 것을 보면, 뿔관을 즐겨 쓴 듯하고, 그리고 방울은 가슴 앞 도포끈을 맨 곳에 차고, 칼은 왼쪽 옆구리에 바르게 찬 것으로 생각된다. 宋나라 학자 李延平도 방울을 찬 일이 있고, 孔子를 비롯해서 옛 선비들은 劍을 찬 예가 많이 있다. 南冥先生은 典古에 該博하고 도 禮儀에 밝았던 분이므로 결코 古人들의 衣着이나 佩帶法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