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3
남명문학의 현장 답사기

왜 南冥文學의 現場은
調査되어야 하는가

鄭 羽 洛
(경북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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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해를 위한 M.H. 에브럼스의 `거울과 등불'에 관한 비유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저서 `The Mirror and Lamp'에서 시작된 이 말은 문학이 현실의 반영으로 보면 거울 구실을 하고, 표현의 주체인 작가가 지닌 창조적 상상력으로 보면 등불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전자는 바깥세계를 받아 문학으로 비춘다는 것이고, 후자는 작가의 개성을 바깥 세계에 밝힌다는 것이다. 거울과 등불은 서로 긴밀히 작용을 하면서 때로는 거울로 현실을 되비추기도 하고 때로는 등불이 되어 강한 개성적 의식을 현실에 발현시키기도 한다.

남명문학이라 하여 예외일 수는 없다. 특히 현실에 대하여 강한 관심을 보였던 그는 현실의 다양한 모습을 거울로 담아내는가 하면 그의 독특한 인식세계를 독자를 향해 등불로 던지기도 한다. 남명의 거울에 비치는 현실의 모습은 실로 다양하다. 백성들의 곤폐를 기반으로 한 군주를 향해 성립되는 비판과 강폭한 현실을 위해 지켜야 하는 선비의 지조로 그것은 강하게 표출되고 있다. 또한 남명의 등불은 성리학적 세계가 가져다주는 명징함이 선명한 빛과 맑은 물음이 이미지를 안고 우리를 향해 달려온다.

그간의 남명문학의 연구는 연구실 안에서 여러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 초창기에는 남명문학의 내용과 형식이 소개되었고, 이어 그 주제가 求道를 위한 문학 혹은 敎世를 위한 문학으로 축약되었으며, 최근에는 철학과 문학의 교집합부분이 구체적인 작품론적 검증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 문학을 하였지만 철학을 그만둘 수 없었고, 철학을 하였지만 문학적 표현을 빌리지 않을 수 없었던 남명의 고민이 이제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들 연구는 모두 기초자료인 『南冥集』과 기타 『朝鮮王朝實錄』 등 관계 자료들을 검토하면서 이루어진 것으로 학위논문 혹은 전문 학술지에 게제되어 널리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할 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즉 삶의 현장에서의 남명학 접근이라는 과제가 그것이다, 남명관련 자료를 바탕으로 한 연구실에서의 작업은 여전히 착실히 진행되어야 할 일이지만 남명문학이 창조되던 현장을 발굴하고 그것을 자료화하는 것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남명문학을 현장과 결부시키면서 보다 정확하게 이해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남명이 그의 눈으로 보고 그의 발로 밟았을 산과 강들을 오늘날 우리가 다시 보고 확인하면서 작품을 관찰할 때 남명의 뜻이 구체화 된다는 것이다. 둘째, 남명학의 저변학대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실에서의 건조하고 개념화된 언어들보다 생활주변에서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언어들로 남명의 정신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남명문학의 현장은 남명학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하나의 척도라는 사실이다.

마침 『남명학연구원보』가 창간될 예정이라 한다. 이 잡지는 적어도 이 같은 요구에 부응하리라 본다. 잡지의 성격상 기존의 논문집 형식이 아닌 보다 부드러운 언어들로 남명을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남명문학 관련 현장조사에 대한 보고 또한 이 지면을 통해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남명관련 유적이 더러 발굴되기도 했었지만 남명의 정신을 읽어내는 데 필수적인 요소였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러니까 더욱 중요한 것은 남명이 그의 작품에 소재화 한 사물이거나 아직까지 민중의 의식 속에 담겨있는 남명의식에 관한 현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2

남명의 정신을 읽을 수 있는 현장은 여러 곳에 남아 있다. 남명문학에 소재로 등장하고 있는 사물들은 거의 5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도처에 많이 남아 있다. 그 소재들이 남명의 문학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간단히 살펴보기로 한다. 대체로 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남명문학에 등장하는 자연물 혹은 인공물, 둘째, 남명이 일정한 계획하에 단행했던 族程, 셋째, 오늘날까지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구비설화가 그것이다. 첫번째의 것은 남명이 보았을 사물이 중심이 되었고, 두번째의 것은 남명이 의식 속에 남아 있는 남명의 모습이 중심이 되었다. 이 세 가지의 경우는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니는데 각각 살펴보기로 하자.

먼저 작품에 나타난 자연물 혹은 인공물을 통해 남명을 이해하는 경우이다. 남명의 눈에 비친 객관 사물은 그의 독특한 의식의 여과작용에 의해 다양하게 작품화되고 있다. 樓亭, 寺利, 山, 巖石, 人工物, 江湖 등이 대체로 그것들이다. 이 중 누정을 소재로 하고 있는 것만 예로 들어보기로 한다.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합친 명칭으로 亭樓라고도 한다. 사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마루바닥을 지면에서 한층 높게 지은 다락식의 집으로 만들어져 있는데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마을 속의 살림집과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한 남성위주의 유람이나 휴식공간으로 가옥 외에 특별히 지은 건물이다. 그 이름은 다양한데 樓·亭·堂·臺·閣·軒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이 누정은 경관이 좋은 산이나 언덕 위에 세우기도 하고, 냇가나 강가등 강호를 끼고 세우기도 하며, 궁실의 후원 등 원림에 세우기도 하고, 변방이나 각지의 성터에 세우기도 한다. 이것은 각기 목적에 따라 다르지만 현재 보고된 바로는 전국적으로 885개소에 이 누정이 건립되어 있다고 한다. 누정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함께 하기 때문에 이곳을 찾은 시인묵객들은 그들의 작품세계를 이 누정을 통해 적극적으로 구가하였던 것이다. `觀水樓'나 `涵碧樓' 등 남명문학과 관련된 누정은 약 23개소 인데 42작품 5장르에 걸쳐 두루 나타나고 있다. 이는 모두 남명정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들이다. 이 중 경남 합천에 있는 `함벽루'와 관련한 작품인 「함벽루」를 감상해 보도록 하자.

이 시는 남명이 함벽루에 올라 아득히 펼쳐지는 강물을 바라보면서 그의 의식에 함의되어 있는 초월과 현실의 세계관이 없었다면 이 작품은 있을 수 없었고, 함벽루를 중심으로 한 수려한 경관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었던 작품이다. 장자는 「齊物論」에서 南郭子와 顔成子의 문답을 통하여 하늘이란 원래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말하는 것으로 모든 분별을 넘어서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이러한 일체의 존재가 있는 그대로 긍정될 때 일체의 존재와 하나가 되는 忘我之境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남명은 함벽루에서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아득한 물줄기와 그 너머의 모랫벌, 그리고 그와 맞닿아 있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이같은 장자적 세계를 그려보았던 것이다. 이 시에서 ‘잃음(喪)’과 ‘아님(非)’이란 망아지정에 다름 아니다. 그러나 4행에서 ‘高風’을 등장시켜 의식적인 초월적 세계에의 관심을 일시에 파괴시켜 버린다. 이로써 남명은 이미 배워오고 습관화된 유가의 높은 풍취에 의해 도가의 망아지경의 세계관이 깨어진다는 사실을 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남명은 「장자」를 거림낌없이 용사하고 있으면서도 부정적 현실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려 하거나, 항상 세속을 인정한다. 대단히 독특하고도 역동적인 세계관을 누정을 소재로 하여 표출시키고 있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일정기간 특정지역을 여행했던 기록을 통해 남명을 이해하는 경우이다. 이름난 아름다운 산수를 유람한 유람체험에 관한 기록은 조선조에 이르러 본격적으로 대두하게 된다. 『잡저기설류기사』(윤남현, 정신문화연구원, 1982) 색인에 의하면 조선조에 들어 遊山을 소재로 한 작품은 대략 560여편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는 거기에 합당한 사회·문화적 기반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욕을 의도적으로 물리치고, 험난한 경험을 통해 깨달음의 경지에 오르려고 한 수행자의 태도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즉 자연속에 내재된 ‘理之妙’를 산수를 통해 터득하려는 노력의 일환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玩物喪志’의 반대편에서 사물에 내재한 보편성을 탐구하자는 적극적 노력에 의해서 단행한 기행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한 것이다. 남명의 경우 『游頭流錄』을 통해 표출되고 있다. 여행기간은 1558년(명종13), 그가 57세 되던 해 음력 4월 10일부터 25일까지이니 모두 16일간이라 하겠다. 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李公亮과 李楨의 집에서 투숙하면서 잔치를 베풀기도 하고 와병과 큰 비로 며칠을 쉬기도 하지만 대체로 위와 같은 일정으로 남명의 지리산 여행은 이루어졌다. 천왕봉을 관통하는 일정으로 잡혀있지 않고 쌍계사 주변을 두루 여행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이 과정에서 남명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서술하기도 하고, 놓칠 수 없는 감동을 자연과 결부시켜 세밀히 묘사히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는 일체의 경지를 남명은 이 지리산 유산록에서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자료는 이것을 방증하기에 부족하다.

위의 두 자료는 4월 20일 신응사 앞 계곡에 불어난 물을 매개로 하여 남명의 상상력이 번득이는 부분이다. 앞의 자료에서 남명은 두가지의 서술기법을 동원하고 있다. 객관적 묘사와 주관적 묘사가 그것이다. 전자는 자연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방법이며 후자는 전자에 한계를 느낄 때 관념적 용어를 사용하여 객관적 묘사를 확장하는 방법이다. ‘새로 온 비에 물이 많아져서 돌에 부딪혀 거품을 뿜고 물방울이 부서지니’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혹은’이하는 신선이 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 ‘요지’등을 이용한 것은 후자에 해당한다. 또한 남명은 객관적 혹은 주관적 자연묘사에서 오는 한계를 서정의 세계로 극복해보자는 의도에서 시를 지었다. 뒤의 인용시가 바로 그것이다. 1·2행에서 앞의 자연묘사를 그대로 이어 받아 흥을 일으키고, 3·4행에서 人事의 문제와 연결시켜 자신의 품회를 읊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연 속에 내재한 이념으로 인간을 이해하고자 했던 남명의 분명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남명의 「游頭流錄」을 주목하자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다음은 구비설화를 통해 남명을 이해하는 경우이다. ‘구비’란 ‘口傳心碑’가 줄어서 된 말이다. 어떤 사물에 대한 이야기가 말로써 전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내용을 마음에다 새긴 것처럼 절실하고 진실하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자 한 용어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마음의 비가 된 구비문학은 글로된 기록문학보다 어쩌면 더욱 중요한 가치가 있다. 구비문학은 다시 ‘유동문학’ ‘표박문학’ ‘적층문학’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구전되면서 거듭 창작되기 때문에 그렇게 붙여진 이름이다. 남명에 대한 구비자료는 그다지 많지 않다. 이미 조사된 것에 의하면 ‘조식과 상사 구렁이’, ‘퇴계보다 나은 남명의 도술’ 등 30여편이 있는데 이 중 ‘퇴계보다 나은 남명의 도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위의 설화는 경남 의령군 봉수면에서 채록한 것으로 지리산 주변에 있는 진양군, 함양군, 산청군 등지에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는 여기서 민중의 입을 통해 살아있는 남명을 만날 수 있다. 나무를 꺼꾸로 심었는데도 아직까지 살아 있다고 했으니 남명의 신기한 능력을 기본적으로 인정하였다. 그리고 숫틀장수인 그가 솥장수인 퇴계와 도술시합을 벌여 퇴계를 패퇴시키고 있으니 현실에서의 정치적열세를 설화를 통해 만회해 보려는 이 지역의 민중들의 의도 또한 스며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설화의 소재이다. 숫틀이나 솥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농경사회의 필수품으로 이것을 소재로 도술시합을 벌여 이겼다고 했으니 日用에서의 實踐을 강조하고 민중들과 더불어 호흡하려했던 남명학의 학문경향을 퇴계학과 비교하면서 선명히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로써 지역민들의 남명정신 이해도를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것이다.

이상에서 남명문학에 등장하는 누정, 유산록, 구비설화을 통해 남명의 정신을 읽을 수 있음을 알았다. 「함벽루」에서는 도가적 세계와 유가적 세계가 서로 충돌하면서 유가적 세계로 귀착되고 있는 남명의 의식을, 「유두유록」에서는 남명이 보여준 자연과 인간의 결합이라는 성리학적 세계관을, ‘퇴계보다 나은 남명의 도술’에서는 퇴계와의 대결의식을 통해 발현되는 남명의 실천적 학풍의 민중적 이해도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 세 갈래의 이해방법은 남명정신을 제대로 밝히기 위한 중요한 指南임은 재언을 요하지 않는다.

3

연구자들의 고뇌에 찬 노력으로 남명학이 그 심도를 더해가는 오늘날 문학분야에 대한 연구는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남명의 상상력이 그의 학문전체에서 어떤 기능을 하는가를 탐색하여 진실을 해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같은 연구는 연구실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지나치게 전문적이라는 지적은 면하지 못할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남명에 관한 글들이 요청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이것에 대한 해답은 일차적으로 우리 생활환경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야 하겠는데, 생각나는대로 셋을 들어보았다. 자연물과 인공물, 유산록에서의 여정, 구비설화가 그것이었는데 이것은 남명이해를 위해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들이었다. 따라서 여기에 대한 발굴 조사가 뒤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위에서 언급했던 사안들을 요약하면서 그 조사방안을 마련해 보도록 하자.

첫째, 남명문학에 나타난 자연물과 인공물에 대한 조사이다. 『남명집』을 통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누정 20여개소, 사찰 10여개소, 산악 30여개소가 된다. 이 외에도 수많은 지역과 자연물 등이 등장한다. 이들 하나 하나는 남명이 그의 눈으로 보고 그의 독특한 사상적 여과과정을 거치면서 작품화된 것이다. 자연물과 인공물에 대한 중요성은 여기서 비로소 마련된다 하겠는데 많은 것이 소실되기도 하였지만 그 사실여부를 밝혀 남명문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더욱 넓혀가야 할 것이다.

둘째, 남명의 「유두류록」에 나타난 남명의 여정에 대한 조사이다. 그동안 지형이 많이 변화되기도 하였지만 남명이 걸어간 실제적 길을 순서대로 밟아보는 일이다. 순서에 따라 지도를 만들고 남명문학 현장의 분포도를 작성할 수도 있을것이다. 이 작업이 완료된다면 남명의 정신적 후예들은 남명이 밟았던 길을 순례하면서 우리의 가슴에 더욱 선명하게 남명을 각인시킬 수 있을 것이다. 길 주위에 펼쳐지는 아름다운 산수를 바라보면서 남명이 생각했던 자연과 인간의 문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남명관련 구비설화에 대한 조사이다. 정신문화연구원에서 몇 편을 조사해 놓은 것을 포함해서 현재 30여편이 고작이다. 남명의 상사구렁이, 남명의 세 가지 소원, 솟을랑재와 남명 등을 통해 민중들은 참으로 자유롭게 남명을 인식하고 있다. 도가의 고매한 스승이 되기도 하고, 칼날같은 정신으로 서리를 머금고 있기도 하며, 때로는 아름다운 여인과 말을 타고 산천을 달리기도 한다. 이들 자료는 모두 남명정신의 이면에 있는 고뇌의 일단을 민중의식과 결부시키면서 해명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전파매체의 횡포로 인해 설화는 이제 위기를 맞이 하였다. 앞으로는 더욱 구러할 추세이다. 그러니 村老들이 조금이라도 살아계실 때 이 조사는 더욱 유리할 것이다.

이 세 가지의 방향의 조사는 우리의 문화속에 살아 있는 남명을 만나기 위해서 긴요하다. 연구자가 개별적으로 진행할 수도 있고 어떤 단체의 사업으로 보다 면밀히 추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명학의 대중적 전파를 위해 요청되는 이 조사는 남명정신 이해를 위한 하나의 전기일 수도 있다. 『남명학연구원보』는 마땅히 그 지면을 할애하여 전문 논문집에 싣기 곤란한 글들을 정기적으로 실어 대중들의 의식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 자연환경과 인문환경이 심각하게 훼손된 오늘날 남명이 사유한 진리의 세계는 절대적인 유의미한 요소로 작용하기에 족하다. 훼손된 환경을 정화하기 위하여 때로는 거울로 반추되기도 하고, 때로는 등불로 던져지기도 하는 그 선명한 세계에 대한 탐구를 그만둘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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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획 시리즈 난에는 남명 문학에 나타나는 현장을 답사하여 현재 남아있는 현장과 작품의 내용을 비추어 보는 답사보고서 형식의 글을 연속적으로 실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구전되어 내려오는 남명에 얽힌 설화들도 조사하여 실을 것이며, 이렇게 하여 축차적으로 그 성과들을 모아 남명 이해를 위한 또 하나의 지평을 개척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 - 편집자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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