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논단

南冥學의 特徵
-'76∼'95년간 남명학연구동향을 중심으로-

사 재 명
(경상대 강사)

한국에 있어서 남명학 연구에 대한 역사는 다른 분야에 비해서 약간 더딘 편이었다. 본래 조선 중기에 남명학은 퇴계학과 더불어 가장 중핵적이고 필수적인 것이었으나, 해방직후에 와서 남명학 연구는 ‘남명학 조명’이라는 명목하에 몇몇 소수의 연구분야에 국한되어 연구되어졌다. 따라서 남명학에 대한 기존 연구들은 선인들의 사상과 제도가 어떤 방법으로 어떤 목적을 구현하기 위하였는가에 대한 과거의 사실들을 찾아내는 데서 그쳤지만, 보다 더 큰 의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 남명학 연구의 현황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여 특징과 개선점을 찾아내는 데 있을 것이다.

본고는 남명학의 특징을 남명학 연구가 이루어진 영역별·연도별 연구동향을 개략하고, '76년부터 '95년까지 5년을 단위로 해서 연구편수를 영역별로 제시함으로써 제학자들의 견해를 통해 살펴 본 것이다. 고찰범위는 남명에 관해 현재까지 연구된 자료인 학위논문과 단행본 및 정기간행물에 게제된 연구물들에 한정되었다.

본고의 목적은 남명 조식에 관한 기존의 연구동향을 기술하고, 최근 활발해진 제영역에서의 연구 경향을 파악함으로서 추후연구를 위한 기본 방향을 시사해 보고자 한다. 어느 부분에 대해서는 불명확한 점이 없지는 않지만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측면과 내용적인 측면을 겸하려 하였다. 정리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빠진 것이나 잘못 이해하여 서술된 부분은 양해를 바란다.


지금까지 남명 조식에 관해 연구된 자료들을 토대로 해서 연구동향을 살펴보면 다음 <표1>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표1>연구영역별 및 연도별 현황

영역/연도

철학,학문,사상

문학

교육

역사

정치,사회

윤리

판본

76

1

 

 

 

 

 

 

1

77

 

 

 

 

 

 

 

 

78

3

 

 

1

 

 

 

4

79

 

 

 

 

1

 

 

1

80

1

 

 

 

 

 

 

1

81

 

 

1

 

 

 

 

1

82

1

 

 

2

 

 

 

3

83

1

3

 

2

 

1

 

7

84

2

3

 

3

 

 

1

9

85

 

 

 

 

1

 

 

1

86

1

1

1

 

 

 

1

4

87

 

 

 

 

 

 

2

2

88

9

3

1

1

1

 

1

17

89

1

1

2

 

 

 

 

4

90

2

1

2

1

 

 

2

8

91

8

1

2

2

 

1

 

14

92

9

1

2

1

 

 

3

16

93

1

1

 

1

 

 

1

4

94

4

1

 

 

 

 

 

5

95

7

1

2

1

 

 

1

12

51

17

13

15

4

2

12

114

 

남명학은 종래 여러 영역에서 구명되기 시작하였는데 현재까지 고찰된 연구자료를 통해서 볼 때 그 주제별 영역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①철학·학문·사상, ②문학, ③교육, ④역사, ⑤정치·사회, ⑥윤리, ⑦판본 등의 영역별로 연구되어 온 분야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남명 조식에 관한 연구동향을 7가지 영역으로 나누어 개략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철학·학문·사상영역에서 연구된 논문의 편수는 51편이 있으며, 그 중에서 사상에 관한 연구가 29편, 성리·학문에 관한 연구가 20편, 출처에 관한 연구가 1편, 그리고 위인에 관한 연구가 1편으로 나타났다.

먼저 思想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철학에 있어서의 지경거의에 관한 연구」(姜聖元,1992), 「조선중기 사림파의 사회정치사상연구-남명 조식과 내암 정인홍을 중심으로-」(權仁浩,1990), 「남명의 경세사상에 관한 연구」(권인호,1992), 「조식의 철학사상」(金周漢,1978), 「조식의 학문과 사상-남명학 연구의 서설로서-」(金忠烈,1978), 「조식의 선비사상」(金忠烈,1984), 「남명학의 요체-경의-」(金忠烈,1992), 「시문을 통해 본 남명의 사상」(金忠烈,1992), 「남명사상의 후대에 미친 영향」(朴洪植,1991), 「조남명과 노장사상」(三浦國雄,1988,1995), 「남명 ‘경의’사상의 기저로서의 정좌수행」(孫炳旭,1992), 「남명의 의리사상」(吳錫源,1991), 「남명사상의 이해」(오이환,1990), 「남명학에 있어서 장자사상의 위치-하나의 시론적 고찰-」(吳進鐸,1991), 「남명의 철학사상」(李基東,1994), 「조남명의 정신구도」(李東歡,1991), 「남명의 한국사상사적 위치」(李東熙,1994), 「남명사상과 안연」(張源哲,1991), 「남명조식의 ‘신명사도’」(全炳允,1991), 「조남명의 선비정신 연구」(鄭仁愛,1988), 「남명의 사림정신」(趙南旭,1994), 「남명사상의 실학적 성격」(趙平來,1988), 「남명의 신명사도」(崔錫起,1994), 「남명의 성학과정과 학문정신」(崔錫起,1991), 「남명의 반궁체험과 지경거의사상의 연구」(崔丞灝,1983), 「남명철학의 이론적 근거에 관한 소고 -학기를 중심으로-」(崔海甲,1980), 「남명 조식의 정신세계」(韓相奎,1995), 「남명 조식의 학문과 사상」(許捲洙,1992) 등이 있다.

性理·學問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의 ‘학기도’에 관한 연구」(琴章泰,1992), 「퇴계와 남명의 위학체계」(琴章泰,1988), 「사림파의 전통에서 본 실천성리학과 예학」(金敬洙,1991,1992), 「남명학에 대한 부정적 관점과 그에 대한 재검토」(金敬洙,1995), 「서경덕과 조식의 학행」(金周漢,1976), 「남명학을 오해와 소외에서 바로 잡자」(金忠烈,1984,1988), 「남명성학도」(裵宗鎬,1978,1988), 「남명 조식의 학문경향과 현실인식」(申炳周,1989,1990), 「남명학연구의 의의」(오이환,1988), 「남명학연구의 입문」(李商元,1986), 「남명 성리철학 연구」(張立文,1995), 「남명 선생의 이학조예와 인격성취」(張永儁,1988), 「조남명의 이기론 변정-일제 이항과 관련하여-」(鄭炳連,1995), 「남명 조식의 실천유학 일고찰」(曺錞,1993), 「남명의 성리학설과 그 정신특징」(蔡仁厚,1992), 「교감 국역 남명집 해제-선생의 생애와 학문을 중심으로」(崔錫起,1995) 등이 있다.

출처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 조식의 현실인식과 출처사상 연구-시대적 인물에 투영된 퇴계 이황의 출처사상과 비교하여-」(權仁浩,1995)가 있다.

그리고 위인에 관한 연구로는 「생애를 통해서 본 남명의 위인」(金忠烈,1982)이 있다.

둘째로, 문학영역에서 연구된 논문의 편수는 17편이다. 그 중에서 사상에 관한 연구가 5편, 문학에 관한 연구가 12편 있다.

먼저 사상에 관한 연구로는 「조남명의 생애와 문학사상」(권정호,1984), 「남명의 사상과 문학연구」(全炳允,1986), 「남명문학의 경의사상 표출방법」(鄭羽洛,1992), 「천명문제와 관련한 남명의 현실주의적 세계관」(鄭羽洛,1993), 「남명시에 나타난 구세정신」(許捲洙,1988) 등이 있다.

그리고 문학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한시문학연구」(金麗石,1983,1983), 「퇴계와 남명의 문학관 소고」(金周漢,1984,1984), 「남명 조식의 부에 관한 연구」(金知燁,1991), 「남명 조식의 생애와 문학」(徐元燮·李鴻鎭,1983), 「남명 조식의 ‘민암부’연구」(楊熙喆,1989), 「남명 조식에 관한 야승의 연구」(李商元,1988), 「남명의 ‘민암부’연구」(李相弼,1990), 「두류산 유산기 연구」(李在翼,1988), 「남명의 ‘유두류록’에 나타난 기록성과 문학성」(鄭羽洛,1994), 「남명집을 읽은 소감」(湯一介,1995) 등이 있다.

셋째로, 교육영역에서 연구된 논문의 편수는 13편이다. 그 중에서 교육사상에 관한 연구가 10편, 비교연구가 1편, 철학이 1편, 그리고 도학사상이 1 편 있다.

교육사상에 관한 연구로는 「조식의 교육사상」(柳灌烈,1991), 「남명 조식의 교육사상에 관한 연구-『학기류편』의 ‘학기도’를 중심으로-」(史載明,1991,1992), 「남명 조식의 교육사상에 관한 연구」(李千圭,1989), 「남명 조식의 교육사상에 관한 연구」(鄭東根,1995), 「남명의 교학사상에 관한 소고」(崔海甲,1981), 『남명의 교학사상』(崔海甲,1988), 「조식의 교육사상연구」(韓相奎,1990), 『남명 조식의 교학사상』(韓相奎,1990,1992) 등이 있으며, 비교연구에 관한 연구로는 「퇴계와 남명의 교학사상에 관한 비교 연구」(李贊錫,1986)가 있다.

그리고 철학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철학과 교학사상』(崔海甲,1989)이 있다.

도학사상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 조식의 도학사상과 그 교육적 의의」(尹龍燮,1995)가 있다.

넷째로, 역사영역에서 연구된 논문의 편수는 15편이 있다. 그 중에서 출처에 관한 논문이 5편, 학파·학풍에 관한 논문이 6편, 행장·편년 및 위인이 3편, 그리고 역사인식에 관한 논문이 1편 있다.

출처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 조식의 학문과 출사관-퇴계 이황과의 비교를 중심으로-」(金允濟,1990,1991), 「남명 조식 연구-출처를 중심으로-」(김창욱,1991), 「남명의 출처관에 관한 소고(1,2)」(崔海甲,1982,1983) 등이 있다.

학파·학풍에 관한 연구로는 「강우학파의 형성과 인맥」(文暻鉉,1983), 「남명 조식의 학풍과 남명문인의 활동」(申炳周,1995), 「남명 조식과 남명학파」(李樹健,1982), 「남명학파 의병활동의 역사적 의의」(李樹健,1992), 「남명학과 남명학파 재조명」(이수건,1984), 「임진왜란과 남명조식제자의 의병활동」(鄭震英,1984) 등이 있다.

행장·편년 및 위인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선생 행장 및 사적」(南冥學硏究院,1988), 「남명선생편년(초역)」(崔海甲,1978), 「전국유생이 본 남명의 위인-請 疏軸-」(崔海甲,1984) 등이 있다.

그리고 역사인식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의 역사인식」(彭 林,1993)이 있다.

다섯째로, 정치·사회영역에서 연구된 논문의 편수는 4편이 있다. 그 중에서 정치사상에 관한 연구가 2편, 사회철학에 관한 연구가 1편, 정치관에 관한 연구가 1편 등이 있다.

정치사상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 조식의 정치사상에 대한 연구」(金孟守,1985), 「남명의 정치사상」(曺淮煥,1988) 등이 있다.

사회철학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사회철학의 연구」( 昆如,1988)가 있다.

정치관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의 위정관에 관한 소고-3소의 사상을 중심으로-」(崔海甲,1979)가 있다.

여섯째로, 윤리영역에서 연구된 논문의 편수는 2편이다. 그 중에서 사상에 관한 연구가 2편 있다.

사상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 조식의 윤리사상」(金成龍,1983), 「남명 조식의 윤리사상에 관한 연구」(曺校煥,1991) 등이 있다.

일곱째로, 판본영역에서 연구된 논문의 편수는 12편이다. 그 중에서 판본에 관한 연구가 9편, 해제에 관한 연구가 1편, 연원록에 관한 연구가 2편 있다.

판본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집』의 책판과 인본의 계통」(金侖壽,1992), 「『남명집』 책판 계통고」(金侖壽,1992), 「『남명집』판본고(1)」(吳二煥,1987), 「『남명집』판본고(2)」(吳二煥,1990), 「『남명집』 임술본의 훼판」(吳二煥,1993), 「『남명집』 이정본의 성립」(吳二煥,1995), 「『남명집』 이본검토-내용의 증책문제와 관련하여-」(李離和,1984), 「『남명집』 제본의 대비적 고찰(1)-초재간을 중심으로-」(全炳允,1986), 「『남명집』 제본의 대비적 고찰(2)-재삼간을 중심으로-」(全炳允,1987) 등이 있다.

해제에 관한 연구로는 「남명학자료총간 해제 서론-기간문헌의 소개를 겸하여-」(吳二煥,1988)가 있다.

그리고 연원록에 관한 연구로는 「『산해사우연원록』의 편찬」(吳二煥,1990,1992) 등이 있다.


그동안 남명 조식에 관한 연구를 5년간 영역별로 나누어 연구된 경우를 살펴보면, 먼저 '76∼'80년에는 철학·학문·사상영역이 남명학연구를 주도하여 갔다고 볼 수 있으며, '81∼'85년에는 역사와 문학 그리고 철학·학문·사상영역의 순으로 연구가 이루었으며, `86∼'90년에는 철학·학문·사상영역과 교육영역, 판본영역, 문학영역 등의 순으로 활기를 띠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가 '91∼'95년에 이르러서는 철학·학문·사상영역과 교육영역, 그리고 문학영역 등에서 많은 연구가 이루어 졌으며 기타 영역에서도 간헐적인 연구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렇듯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남명조식에 관한 연구는 '80년대를 거치면서 여러 영역에서 더욱 심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구경향을 5년 단위로 나누어서 연구편수를 영역별·연도별 연구편수로 살펴면 다음과 같다.

먼저 '76∼'80년에는 총 7편으로 철학·학문·사상영역에서 5편, 역사영역에서 1편, 정치·사회영역에서 1편 등으로 나타났다.

'81∼'85년에는 총 21편으로 역사영역에서 7편, 문학영역에서 6편, 철학·학문·사상영역에서 4편, 교육영역에서 1편, 정치·사회영역에서 1편, 윤리영역에서 1편, 그리고 판본영역에서 1편 등으로 나타났다.

'86∼'90년에는 총 35편으로 철학·학문·사상영역에서 13편, 교육영역에서 6편, 판본영역에서 6편, 문학영역에서 6편, 정치·사회영역에서 2편, 그리고 역사영역에서 2편 등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91∼'95년에는 총 51편으로 철학·학문·사상영역에서 29편, 교육영역에서 6편, 문학영역에서 5편, 판본영역에서 5편, 역사영역에서 5편, 그리고 윤리영역에서 1편 등으로 나타났다.

이상과 같은 연구동향을 토대로 남명학의 특징을 영역별로 몇몇 학자들의 견해를 제시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철학·학문·사상영역에서는 남명학의 특징에 대하여 경과 의를 중심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었다. 다음과 같은 학자들의 견해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 金忠烈(1982,1988)은 남명이 성리학 특징은 理論之學이 아니라 實踐之學이라고 보았으며 남명학의 요체를 ‘敬義’로 본 것은 후학들이 선생의 학문을 논평해서 나온 말이 아니고, 남명 스스로가 60이후 자기 학문을 정리하고, 일생 동안 修得한 것을 집약한 것이며, 이는 제자들을 통해서 꼭 후세에 길이 전해져서 사람들이 信行해야 한다고 믿은 자기 나름의 교리였다고 보았다. 李商元(1986)은 남명학의 특징을 가장 잘 형용한 것으로 문목공 정구의 제문을 인용하면서, 남명학은 남명이 평생 大本으로 삼고 심지어 운명할 때까지도 제자들에게 당부한 ‘敬과 義’ 두 字로 集約된다고 하였다. 따라서 철학·학문·사상영역에서의 남명학의 특징은 경과 의를 통해서 구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吳二煥(1988)은 남명의 敬이 惺惺子로 대표될 수 있다면, 그의 義는 佩劒에 의해 대표된다고 볼 수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권인호(1990)는 당시 사회경제와 정치제도의 모순구조로 인하여 나타나게 되는 조선후기 실학사상기에 앞서 그사상적 단초를 열어준 진보적 정치철학자로 남명을 평가하고 있다.

문학영역에서는 남명학의 특징을 실천궁행, 은일처사로서의 남명, 그리고 거경집의 등으로 보았던 것이다. 다음과 같은 학자들의 견해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 徐元燮·李鴻鎭(1983)은 詩를 통해서 남명이 유가의 본질적인 측면 즉 실천궁행의 이상을 몸소 체득하고 실천한 인물이라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金麗石(1983)은 초야에 묻혀 일평생을 교육에 몸차친 은일처사로서의 남명을 탐구함으로써 인간 본연의 참모습을 그의 문학세계에서 穿鑿하고자한 것이다. 全炳允(1986)은 남명은 ‘敬’을 바탕으로 정신유학을 확립하고, ‘義’를 바탕으로 실천유학을 정립했으며, 이같은 ‘居敬集義’는 남명사상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집의는 임진왜란 때 남명의 문하에서 수 많은 의병장을 배출하게 될 중심사상이 되었다고 보았다. 鄭羽洛(1992)은 작가의 삶과 독서경향이라는 문학 외적 사실에서 논의의 단초를 마련하여 문학사상의 통로를 거쳐 형상화된 작품자체의 의미와 작가 의식을 밝히는 데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金周漢(1984,1984)은 남명은 詩가 자신의 驕傲之罪를 더해 주는 ‘尤物’로 봤기에 더욱 철저하게 경계하여 ‘詩荒戒’를 잊지 않았던 것이고, 文章에는 左柳의 古文을 익혀서 奇古한 風格을 담았던 것이다. 따라서 世體는 좋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았다.

교육영역에서는 남명학의 특징을 실천교육가, 교육이념으로서의 敬과 義 등으로 파악하였던 것이다. 학자들의 견해는 다음과 같다. 崔海甲(1981)은 남명은 교육자로서 述而不作, 勿著書, 著書則多言, 多言則害義의 실천가이며, 교육철학의 사변적,규범적,통합적 기능을 종합하고 반신궁행한 踐履的 敎育思想家라고 보았다. 李贊錫(1986)은 남명의 敎育要義를 敬義之學으로 보았다. 그리고 韓相奎(1990)는 남명의 교육사상의 중심이 되는 敬과 義의 이념과 그로 인해 도출된 교육방법론을 규명하였다.

역사영역에서는 남명학의 특징을 역사적인 측면에서 경과 의에 대한 개념과 다양한 학문경향이 초점을 부각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학자들의 견해를 통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李樹健(1982)은 조식의 사상이나 학문을 성리학적 체계속에서 천착하지 않고, 주로 역사적인 측면에서 조식과 남명학파의 실체를 파악하려 하였다. 金允濟(1990,1991)는 남명학의 특징을 실천성의 근거가 되는 敬義에 대한 개념으로 보았다. 그리고 申炳周(1990,1995)는 남명의 학문에서 크게 특징적으로 지적되는 것을 성리학자로서 敬義의 학문을 중시한 측면과 老莊學 등에 깊이 관심을 기울이는 측면으로 보았으며, 남명이 다양한 학문에 관심을 가지면서 주자성리학만을 고집하지 않았던 학문경향과 실천성을 강조한 학풍과 정치관이 문인들에게 전승된 것으로 보았다.

정치·사회영역에서는 남명학의 특징을 군주의 수양, 관리의 착취금지, 민생고의 해결 등으로 보았다. 다음의 연구가 이를 지지하고 있다. 즉 曺淮煥(1988)은 남명의 정치사상을 賢君專制主義, 良士參政, 그리고 自主·人權思想 등으로 파악하였다. 즉 국왕에게 권위를 유지하고 권한을 행사하며 백성에게 자비심을 가지고 부탁하는 극진한 충고를 남명의 정치철학으로 보았던 것이다. 金孟守(1985)는 남명의 정치사상을 국가관, 언론중시, 실질숭상, 그리고 출처관 등으로 파악하였다.

윤리영역에서는 남명학의 특징을 경과 의, 그리고 의리론을 중심으로 보았다. 이것을 뒷받침하는 자료로서 曺校煥(1991)은 남명의 사상은 성리학의 기반 위에서 理를 본체로로서의 태극으로 파악하는 가운데 敬을 기본으로 하는 明善·誠信을 학문과 수양의 요체로 제시하면서 한편으로는 노장사상 등 제자백가사상을 섭렵하였으며, 경과 함께 의를 존숭하여 난세에는 출사하지 않는다는 사상으로 오직 학문연마에만 전념한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金成龍(1983)은 남명의 윤리사상을 개인윤리, 사회윤리, 교육 등으로 나누면서 남명의 주자학적 의리론을 윤리사상으로 보았다.

판본영역에서는 남명학의 특징을 남명집의 변개과정 규명으로 보았던 것이다. 먼저 吳二煥(1987,1995)은 남명학의 올바른 접근을 위해서 관계자료들에 대한 면밀한 문헌비판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한국의 여러 문집 가운데서도 후대의 改變이 심한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에 속하는 『남명집』을 중심으로 하여 그러한 변개의 배경 및 과정을 규명함으로써 그것이 지니는 사상사적 의미를 음미하는데 관심을 두었다. 그리고 金侖壽(1992)는 『남명집』을 인쇄하기 위하여 여러 시대에 걸쳐 조성한 각 冊板의 명칭을 붙여 계통짓고, 그 특징등을 식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상과 같이 남명 조식에 관한 연구동향을 통해서 본 남명학의 특징을 종합해 보면, 남명의 철학·학문·사상적 특징은 경과 의를 중심으로 파악되었다. 문학적으로는 실천궁행, 은일처사로서의 남명, 그리고 거경집의 등과 관련되었고, 교육사상에 있어서는 실천적이고 실용주의적인 교육사상가, 그리고 교육이념으로서의 敬과 義 등으로 고찰되었다.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경과 의에 대한 개념과 학파의 형성, 그리고 다양한 학문경향에 연구의 중점이 두어졌고, 정치·사회적으로는 군주의 수양, 관리의 착취금지, 민생고의 해결 등으로 나타났다. 윤리적으로는 경과 의, 그리고 의리론을 중심으로 고찰되었으며, 판본에 대해서는 『남명집』의 변개과정 규명으로 파악되었던 것으로 볼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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